전두환 정권 시절 국민학교(초등학교)를 다녔다. 6월이면 반공 글짓기 대회가 열렸다. 한번은 선생님이 소재까지 정해줬다. 한국전쟁 때 희생된 친인척이나 아는 사람을 찾아 쓰라고 했다. “없는데 어떻게 써요?” “엄마 아빠나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물어서 먼 친척이라도 써!” 아버지한테 물으니 큰아버지가 전쟁 때 돌아가셨다고 했다. 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물어도,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선생님한테 혼나긴 싫고, 꾀를 냈다. ‘소설’을 썼다. 큰아버지를 반공 투사로 만들었다. 친구 몇 명은 글짓기를 하지 않아 혼났다. 선생님은 내 글을 ‘최우수작’으로 뽑아 직접 소리 내어 읽어주었다. “봐라. 이렇게 공산당에 맞서 돌아가신 훌륭한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
진짜 왜 돌아가셨는지 궁금해 할머니한테도 물었다. 할머니도 입을 닫았다. 머리가 좀 커진 뒤에야 알았다. 큰아버지는 ‘면장 하겠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시골에서 제법 똑똑했다고 한다. 전쟁 통에 이웃의 신고로 ‘빨갱이 사냥’에 희생당했다.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그 이웃과 같은 동네에서 살았다. ‘큰아버지’는 집안에서 금기어였다. 연좌제 때문이었다. 전쟁이 남긴 상처는 그렇게 깊었다.
전쟁은 과거 완료형이 아니다. 밥 우드워드가 쓴 〈공포:백악관의 트럼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초 주한 미군 가족들을 한국에서 철수시키겠다는 내용의 트윗을 쓰려고 했다. 불발로 그쳤지만, 썼다면 북한은 미국의 폭격 메시지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2018년 시작과 함께 남과 북은 평화의 시대를 열었다. 이번 정상회담으로 완전한 평화의 시대가 본격 시작되었다. 9월 평양 공동선언, 그리고 부속합의서로 채택된 군사합의서는 사실상 종전선언과 다름없다. 외신은 ‘Era of No War(전쟁 없는 시대)’라고 타전했다. 다시 말하지만 선언으로 그쳐선 안 된다. “완전히 새로운 길인 만큼 여러 가지 도전과 난관”에도 우린 뒤돌아 갈 수 없다. 담대한 발걸음을 한 발짝씩 내디뎌야 한다.
〈시사IN〉은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에서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까지 6주 연속 한반도 이슈를 커버스토리로 보도했다. 역사적인 순간이고 그만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역사의 현장과 그 의미를 담기 위해 마감을 늦췄다.
2박3일간 텔레비전 화면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으라면 문 대통령의 능라도 5·1 경기장 연설이다. “우리 민족은 평화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합니다.” 하늘에 있는 아버지와 할머니, 얼굴도 본 적 없는 큰아버지도 이 장면을 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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