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색다른 여름휴가 여행지를 소개한다. 인도의 라다크, 남태평양의 사모아, 탄자니아의 초원과 잔지바르 섬은 쉽게 갈 수 없는 곳이기는 하다. 시간이 꽤 필요하고 비용이 제법 드는 곳이다. 하지만 이번 여름이 아니라도 언젠가 한 번쯤 가볼 만한 곳이다.

색다른 여행가들이 이 색다른 여행지를 소개한다. 라다크를 안내하는 여행 작가 환타(〈시사IN〉 ‘소소한 아시아’ 필자)는 여행지를 속속들이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여행가다. ‘귀로 떠나는 세계여행’을 표방한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의 진행자, 최고의 여행 입담꾼 탁재형 PD가 남태평양 사모아의 수평선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전한다. 아프리카 전문 여행사 ‘디스이즈아프리카’를 운영하는 젊은 여행가 박다애씨는 우리를 킬리만자로로 안내한다.


ⓒ전명윤 제공인도의 최북단 라다크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쓴 〈오래된 미래〉의 배경이 된 곳이다.


비현실적인 인도 땅에 발 디딘 행복

환타 (여행 작가)

인도가 산악인에게 에베레스트 같은 존재이던 시절이 있었다. 세계 일주를 다 마치고 마지막에 가봐야 할 나라라는 미사여구로 포장된 게 십몇 년 전이다. 이렇다 보니 인도에도 오지인 듯 오지가 아닌 듯한 곳이 몇 군데 있다. 그중에 하나가 인도의 최북단 라다크 지방이다. 아마 〈시사IN〉 독자라면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책 〈오래된 미래〉를 읽어봤을지 모르겠는데, 그 책의 무대가 바로 라다크다. 지리적으로 문화적으로 고립된 탓에 보존할 수 있었던 전통, 그 덕에 라다크는 한때 천국처럼 묘사됐다.

처음 라다크 땅을 디뎠을 때가 20여 년 전이다. 하루 네 시간 정도 전기가 들어오면 참 다행이라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어두워서 별을 간직했던 ‘레(Leh)’의 하늘은 이제 인더스 강가에 놓인 자그마한 수력발전소 하나 덕에 밝아졌다. 요즘은 조금 비싸다 싶은 호텔 외벽에는 LED 램프가 장식되어 있다. 전기를 적게 먹는 LED는 도시인에게야 전기세 절약의 좋은 아이템이지만, 이런 벽지로 가면 경쟁적으로 화려함을 과시하기 위한 소품으로 전락한다.  

ⓒ전명윤 제공라다크의 도시 ‘레(Leh)’는 3만명이 사는 작은 지역이다. 위는 레 시내를 전망할 수 있는 남걀 체모 곰파.
수십 년 전, 그들의 소박함을 보면서 외지인들은 자신들이 놓쳤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것을 연상해냈다. 막상 그 사람들은 우리네 도시와 같은 모습을 천국이라고 상상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각자의 경험과 환경의 교차점에서 우리는 잠시 만났다 다시 헤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라다크에서는 항상 구시렁거리는 여행자들을 만날 수 있다. 예전에 이곳은 이렇지 않았고, 인심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는 이야기들은 어쩌면 이곳에서 만나는 최악의 공해일지도 모른다. 변했다는 것도 비교 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처음 온 이들에게 라다크는 여전히 따듯하다. 무엇보다 일단 천신만고 끝에 여기까지 온 여행자들은 라다크에 발을 디뎠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행복하다. 미세먼지에 시달린 도시의 사람들에게, 라다크의 투명한 대기와 그저 새파란 하늘, 하늘 아래 일필휘지처럼 뻗어간 산맥의 곡선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충분히 비현실적이다.

라다크에서 가장 큰 도시는 ‘레’인데, 3만명 남짓이 사는 작은 지역이다. 길게 뻗은 히말라야의 산길을 따라, 버스에 몸을 싣고 24시간, 가장 빠른 지프를 타고 16시간 정도는 족히 달려야 도착할 수 있다. 산허리를 깎아 만든 1.5차선 차도가 만만할 리 없다. 한국의 대관령, 한계령, 혹은 문경새재의 모든 옛 도로를 다 합쳐놓는다 해도 비교 불가한 바닥으로 내리꽂히는 절벽은 설산의 웅장함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휴대전화 신호는 잡히지 않고, 그 사이를 비집고 겨우 잡아낸 GPS 신호는 현재 달리는 도로 고도가 4000~5000m를 넘나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명윤 제공라다크에는 파란 하늘과 예쁜 웃음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 아래는 라다크 노인들.
비록 교통편은 연결되어 있지만 도시인의 관점에서는 이 정도만 해도 오지다. 옅은 대기와 빛이 만난 하늘은 시원하다 못해 서늘하다 할 정도의 청색을, 고작 셀카 한 장 집중해서 찍었을 뿐인데 숨이 가빠오고, 어느새 혈색도 새파래진다. 이곳에 있다 보면 여행자들은 세상의 끝에 대해 이야기한다. 농가를 개조한 숙소에서 아침마다 내어주는 인도산 싸구려 비스킷과 함께 홍차 한 주전자를 놓고 여행자들은 각자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이 가본, 혹은 자신이 앞으로 갈 그곳이 진짜 세상의 끝이라며 침을 튀긴다. 누군가는 해남의 땅끝 마을을 거쳐, 누군가는 포르투갈의 로카 곶을 거쳐, 하나둘 이곳으로 모여든다. 하나쯤 진짜 있을지 모르는 세상의 끝에 대한 묘한 기대와 환상을 품은 사람들이다.   

여기까지 온 여행자들에게 힘 빠지는 소리를 하자면, ‘레’는 라다크에서 가장 큰 도시일 뿐이다. 아직 많이 밟지 않은 대지가 ‘레’를 시작으로 다시 한번 이어진다. 끝이라 믿고 여기까지 왔겠지만, 거기 서서 보면 지평선 너머 끝없이 이어지는 새로운 길이 있음을 알게 된다. 알 수 없는 그 너머에는 더 파란 하늘과 더 예쁜 웃음을 지닌 사람이 있다. 저길 가기 위해 우리는 하루쯤, 1년쯤, 10년쯤 더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바다 건너 만난 천국 남태평양의 섬 섬 섬

탁재형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전명진 제공동쪽 섬 우폴루 남단에 위치한 토 수아 오션 트렌치. 용암이 흘러나간 자리에 거대한 L자형 튜브가 생겨 천연 해수 풀장이 만들어졌다.
3500여 년 전부터 세계지도에 편입되었다. 이곳은 인간이라는 모험심 강한 종(種)의 역사에서도, 새로이 등장한 영역이다. 그만큼 인간의 항해술이 발달할 시간이 필요했고, 한 민족의 모험심 총량이 민족 전체를 망망대해로 몰아넣을 만한 임계점을 넘겨야 했다. 익숙한 고향을 떠나 먼 곳으로 이주해야만 하는 역사적 사건 역시 필요했을 것이다. 그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진 끝에, 아시아를 뛰쳐나와 해류와 바람을 거슬러 항해한 이들이 있었다. 바로 폴리네시아 사람들이다.  

사모아는 이들이 가장 먼저 정착한 땅이다. 최근의 유전학적 연구는 사모아를 남태평양 정복의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로 지목한다. 아시아에서 파푸아뉴기니를 거쳐 사모아에 도착한 이들은 차츰차츰 폴리네시아 전역으로 자신들의 영토를 넓혀나갔다. 그때 이야기가 디즈니 애니메이션 〈모아나〉에 잘 드러나 있다. 이들은 해류의 온도와 별의 높이를 GPS 삼아 타히티에서 하와이, 뉴질랜드에서 이스터 섬까지를 자신들의 거주지로 만들었다. 사모아는 이렇듯 강인하고 긍지 높은 바닷사람들에게 마음의 고향이다.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은 자신들이 ‘하와이키’라고 하는 섬에서 왔다고 믿었다. 사모아 언어에서 하바이키(Havaiki)는 서쪽을 뜻한다. 여기서 서쪽이라 함은, 지리적인 의미도 있겠지만 ‘조상들의 땅’이라는 뜻이 더 강하다. 폴리네시아 사람들은 죽으면 영혼이 해가 지는 서쪽의 섬으로 가, 바다에서 뛰어올라 하늘로 향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모아에서 가장 큰 섬의 이름은 사바이(Savai’i)다. 이 섬은 물론 가장 서쪽에 있다.

ⓒ전명진 제공사모아 사바이 섬의 알로파아가 블로홀은 파도가 치면 20m 높이의 물기둥이 솟아오른다.
사모아의 자연은 영혼의 고향을 떠올리게 만들 만큼, 영적(靈的)인 감성으로 충만하다. 일단 섬 전체가,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일출을 맞이할 수 있는 곳이다. 날짜변경선 바로 서쪽에 위치하기에, 그 어느 곳보다도 시간이 빠르다. 불과 160㎞ 동쪽에 위치한 미국령 사모아는 그런 이유로 이곳보다 시간대가 하루 늦다. 비행기로 이동하면 불과 한 시간 남짓한 사이에 하루를 두 번 보낼 수 있다는 의미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이 1년에 한 번뿐인 것이 아쉽다고? 여기에 당신이 찾던 장소가 있다!

또한 지구상에서 가장 격렬한 지각운동인 화산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지형이 대부분이어서, 낯설기 그지없는 풍광을 자아낸다. 개중에는 한 번 봐서는 결코 현실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한 것들도 많다. 동쪽 섬 우폴루의 남단에 위치한 ‘토 수아 오션 트렌치(To Sua Ocean Trench)’가 그런 곳이다. 주변보다 흐르는 속도가 빨랐던 용암이 흘러나간 자리에, 거대한 L자형 튜브가 만들어진 이곳은 천연 해수 풀로 유명하다. 하늘에서 보면 깊이 50m 정도의 구멍 밑바닥에 물이 가득 채워져 있는 형국이다. 아직도 지하로는 바다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 떠 있으면 물살의 오르내림이 느껴진다. 올려다본 새파란 남국의 하늘은, 주변 시야가 동그랗게 잘려 나가 더욱 아늑하고 오붓하다. 연인과 함께라면 하늘 아래 둘만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하다.

서쪽 섬 사바이에 존재하는 알로파아가 블로홀(Alofaaga Blowholes) 역시 화산활동이 빚어낸 걸작이다. 파도가 해안절벽을 때리면, 그 압력에 의해 바위 구멍에서 20m 높이의 물기둥이 솟아오른다. 화산지형에서 만날 수 있는 간헐천과는 또 다른 박력을 느낄 수 있다. 매번 다른 높이의 물기둥을 뿜어 올리기에, 어느 파도에 최고의 풍경을 보게 될지 기다리는 맛도 쏠쏠하다.

애니메이션 〈모아나〉로 폴리네시아 문화에 대해 예습을 하고 간 여행자라면, 사모아 컬처럴 빌리지를 꼭 방문해보길 권한다. 영화 속에서 스쳐 지나갔던 식생활과 전통 공예, 노래와 춤을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다. 300년 전 이곳을 처음 방문했던 유럽인들과 동일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아바(Ava)’라고 불리는 의식은 부족 지도자들의 토의를 거쳐 외부인을 친구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여준다. 많이 마시면 취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카바 나무뿌리 즙을 돌려 마시며, 마을 사람들과 방문자들은 적이 아님을 확인한다. 환대의 음식은 불에 달군 돌 위에 각종 재료를 놓고, 코코넛 잎으로 덮어 조리하는 우무(Umu)다. 우무는 완성하는 데 두 시간이 넘게 걸리는 대표적인 슬로푸드다. 코코넛밀크로 양념을 한 바닷가재 향을 완벽히 보존하는 데 이것보다 더 적합한 조리 방법은 없다. 빵나무 열매와 얌을 곁들여 한 끼 든든히 먹고 나면, 바다를 정복했던 사모아 사람들의 원동력이 무엇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든다.

ⓒ전명진 제공 사모아의 전통 문신을 한 남성들이 불에 달군 돌을 이용해 전통 요리 우무를 만드는 모습.
컬처럴 빌리지에서 만날 수 있는 것들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전통 타투(문신)다. 타투라는 말 자체가 사모아 말 타타우(Tatau)를 어원으로 삼는다. 말하자면 지금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패션 타투의 종주국인 셈이다. 하지만 이곳에선, 작은 타투 하나쯤 기념으로 새기고 가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은 사절이다. 텅스텐 빗(과거에는 멧돼지 어금니를 썼다고 한다)에 잉크를 묻혀, 작은 망치로 일일이 때려가며 새기는 사모아 전통 타투는 일생일대의 고통과 싸워 이긴 한 인간의 흔적이다. 시술받은 사람이 느끼는 고통은 짐작할 만하다. 그래서 모든 타투를 완성한 사람은 시련과 도전을 이겨낸 용사로 대접받는 반면, 완성에 이르지 못하고 포기한 사람은 가문의 수치로 취급 받는다고 한다.

뉴질랜드와 미국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바람에 결코 싼 편이라 할 수 없는 남태평양의 물가 사정을 감안할 때, 200달러 정도면 최고급 리조트를 이용할 수 있는 가격경쟁력 역시 사모아의 매력이다. 밤마다 해변에서 펼쳐지는 건장한 사모아 청년들의 ‘파이어 댄스’를 지켜보다 보면, 3500여 년 전 바다를 건너와 천국을 발견한 사람들의 안도감과 환희가 고요하게 가슴속을 채울 것이다.



영감이 필요한 순간 아프리카를 만나야지

박다애 (디스이즈아프리카 대표)

ⓒ디스이즈아프리카 제공아프리카 케냐에 위치한 ‘기린 장원 호텔’. 동물 애호가 부부가 멸종 위기에 처한 기린을 보호하기 위해 저택을 야생동물 체험 호텔로 개조했다.
“아프리카에는 딱 하나, 지루하다는 형용사만 빼고 어떤 말이라도 붙일 수 있다.” 생텍쥐페리의 연인이자 서쪽으로 대서양을 단독 비행한 최초의 여성 비행사 베릴 마크햄은 아프리카에서의 삶을 이렇게 회고했다. 54개 국가, 남한보다 300배 넓은 면적, 다양한 기후와 다채로운 식생은 아프리카를 경이롭고 독보적인 여행지로 만들어낸다. 빛나는 만년설 킬리만자로, 세계에서 가장 긴 빅토리아 폭포, 삶과 죽음의 대서사시가 펼쳐지는 세렝게티와 마사이마라 초원,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협곡인 피시리버 캐니언, 코끼리 23만 마리가 사는 초베 강, 칼라하리 사막의 보석인 삼각주 오카방고델타, 그리고 지상낙원 세이셸과 모리셔스 등 아프리카에는 지루함을 제외한 모든 것이 있다.

만약 아프리카 54개국을 각 접시에 담아 내놓는다면, 가장 먼저 케냐와 탄자니아를 맛보라고 권하고 싶다. 당신이 꿈꾸고 상상하던 아프리카를 맛볼 수 있다. 눈앞에 펼쳐진 광활한 초원에서 수십만 마리의 생명이 내뿜는 에너지에 숨이 막힐 정도로 압도당한다. 유럽 여행자들이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이 선택하는 입문자 코스로, 인기 있고 감동이 보장된 곳이 바로 케냐와 탄자니아다.

카렌 블릭센의 소설을 영화화한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배경이 케냐다. 이 제목은 라틴어 경구에서 따온 것으로 ‘아프리카로부터는 항상 무언가 새로운 것이 생겨난다’는 뜻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땅인 케냐 마사이마라의 초원과 구릉은 하늘 위에서 바라보면 숨을 멈춘 듯 고요하다. 그러나 사파리 차량을 타고 대지를 달리다 보면 우르르 땅을 헤집어놓는 몽구스 무리의 분주함을 만나게 된다. 나무 위에 늘어진 레오파드의 까딱거리는 꼬리, 긴 회초리와 마른 발바닥을 타닥거리며 소떼를 모는 붉은 마사이인들, 갓 태어나 절뚝이는 와일드비스트 새끼를 보며 생동하는 아프리카의 가쁜 숨을 느낄 수 있다.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샴페인이 제공되는 열기구를 타고, 초원을 빼곡히 메운 수만 마리 누 떼와 얼룩말들 사이를 자유로이 비행하며 떠오르는 태양을 감상할 수도 있다. 물을 찾아 캠핑장으로 놀러온 집채만 한 코끼리가 옹달샘 동요에 나오는 토끼처럼 물만 먹고 사라지는 장면은 아프리카만이 보여줄 수 있는 동화이다.

ⓒ디스이즈아프리카 제공아프리카 최고봉인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우후루피크로 향하는 길. 정상 등반에는 보통 5박6일이 걸린다.

케냐를 가면 이웃 나라 탄자니아도 가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빛나는 흰 산’이라는 뜻의 킬리만자로가 있기 때문이다. 높이 5895m로 정상부인 우후루피크에 만년설이 쌓여 있는 아프리카 대륙 최고봉이다. 정상 등반에는 보통 5박6일이 걸리지만, 힘 들이지 않고 킬리만자로의 정취를 느끼기에는 1박2일도 충분하다. 킬리만자로를 오르며 가장 많이 듣게 될 말은 ‘뽈레뽈레’일 것이다. 언뜻 ‘빨리빨리’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아프리카 토착어인 스와힐리어로 ‘천천히 천천히’라는 뜻이다. 걸음이 아무리 느린 사람이라 할지라도, 해 지기 일보 직전인데 산장까지 거리가 한참 남았을지라도 킬리만자로의 길잡이들은 다정하고 유쾌하게 ‘하쿠나마타타(걱정 없어) 뽈레뽈레’라고 말할 것이다. 웅장하고 신비로운 운무 가득한 킬리만자로를 그들의 흥겨운 콧노래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산장에 도착한다. 킬리만자로의 밤은 더욱 특별하다. 인공적인 불빛이라고는 없는 이곳의 밤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우주에 떠 있는 듯하다. 코끝 아린 찬바람과 피로가 녹는 따뜻한 차 한잔, 그리고 떠오르고 지는 수만 개의 별은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한다.

마크 트웨인은 “신은 모리셔스를 창조하고 난 뒤 천국을 만들었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런데 모리셔스를 만들 그 즈음에 세이셸도 만들고 탄자니아의 잔지바르도 만들었던 게 분명하다. 인도양을 나눠 쓰고 있는 이 세 섬은 가히 지상낙원이라 불릴 만큼 아름답고 낭만적이다. 모리셔스와 세이셸에서 달콤한 시간을 보내는 신혼여행자들 사이에서 감당해낼 자신이 없다면, 답은 잔지바르다.

잔지바르는 끝없이 펼쳐진 하얗고 고운 모래와 에메랄드빛 투명한 바다로 인도양의 흑진주라 불린다. 세이셸이나 모리셔스의 3분의 1정도밖에 안 되는 저렴한 여행 경비도 매력적이다. 가족이나 친구, 연인들이 많이 찾는 섬이다. 동쪽 해변은 윈드서핑, 카이트 같은 해양 스포츠 성지로 온 해변이 건강한 구릿빛 젊음으로 반짝이고, 북쪽 해변은 아름다운 리조트가 해안을 따라 늘어서 있다.

잔지바르는 아프리카 내에서도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를 수프에 빗대면 이슬람 2스푼, 인도 1스푼, 유럽 반 스푼을 넣고 잘 섞어 만들어놓은 곳이 잔지바르다. 4개 종교가 작은 섬 안에 공존하지만 분쟁이 없고, 사람과 나귀와 돌고래가 평화롭게 어우러져 살아간다. 그룹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가 태어난 곳이기도 한 이곳은 자유로운 보헤미안들의 성지이다.

흔히 아프리카를 ‘여행의 끝판왕’이라 부른다. 드넓은 세상을 돌며 쌓은 온갖 경험의 끝에서 아프리카를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버킷리스트 마지막 페이지에 꼭 담겼을 아프리카는 애석하게도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프리카의 지붕이자 빛나는 흰 눈으로 대륙을 어루만지던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은 정상에 20m 넘게 쌓여 있었지만 지금은 85%가 녹아 사라져버렸다. 평균 수천 년을 살아내며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던 바오바브나무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최근 연이어 죽어가고 있다. 올해 4월 케냐 올 페제타 보호구역에서 마지막 수컷이 죽고 난 뒤 세계에 단 두 마리 남은 암컷 북부흰코뿔소는 더 이상 번식이 불가능하여 이대로 멸종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푸르른 초원과 흙먼지 가득 날리던 아프리카에는 반듯한 철도, 깨끗한 도로와 지하철이 생겨나고, 물밀듯 밀려들어 온 자본들로 경제는 빠르게 성장하여 물가 또한 급격히 오르고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아프리카의 아침을 알기 전까지는 아침에 눈뜨는 것이 행복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서른네 살에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킬리만자로의 눈〉을 집필했다. 비행 중 아프리카의 사막에 불시착한 서른다섯 살의 생텍쥐페리는 우거진 바오바브나무와 별이 쏟아지는 사막을 보고 〈어린 왕자〉를 그려냈으며, 앙드레 지드는 스물넷에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스스로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정신의 활력이 고갈되고 마음이 앙상해짐을 느낄 때, 또는 반복되는 삶 속에 반짝이는 영감이 필요한 순간에 아프리카는 그 답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아프리카가 마지막이 아닌, ‘바로 지금’ 이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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