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당시 한창 인기를 끌던 네이버의 ‘지식인 서비스’에 이런 질문이 올라왔다. “중요한 기사들은 보통 연합뉴스에서 나온 게 많은 것 같은데요, 그러면서도 자기네가 따로 신문은 안 내놓고…. 이 회사의 정체는 뭔가요?” 이 질문 글의 제목은 ‘연합뉴스의 정체’. 일반 언론사와 뉴스통신사의 차이를 잘 모르는 이가 던진 초보적인 수준의 질문이지만 10년이 지난 오늘날 그 질문에 명쾌한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뉴스 미디어 시장이 요동치는 지금, ‘연합뉴스의 정체’는 또다시 뜨거운 감자다.

10년 전 질문자가 연합뉴스에 대해 잘 모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독자적인 취재 조직으로 수집한 뉴스를 계약을 통해 신문과 방송사, 정부 기관 등에 배포하는 뉴스통신사 가운데 하나인 연합뉴스는 이른바 ‘기자들만 아는 언론사’였다. 2003년 ‘뉴스통신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가기간통신사로 지정된 이후 매해 300억원 이상(2011년 339억원, 2012년 354억원)의 국고 예산을 받을 만큼 중요한 기관이지만 연합뉴스가 일반 뉴스 독자들과 직접 마주칠 일은 거의 없었다. 연합뉴스 기사와 사진은 전재 계약을 맺은 신문·방송사에 전달돼 2차 가공된 후 세상에 나왔다. 지식인 질문자 말처럼 따로 찍어내는 신문도, 따로 송출하는 방송도, 따로 밝히는 바이라인(기자 이름)도 없었다. 연합뉴스 같은 뉴스통신사들이 ‘뉴스 도매상’이라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사IN 조남진연합뉴스는 국가기간통신사로 지정되어 매해 300억원 이상의 국고를 지원받는다.

지금은 다르다. 연합뉴스는 여전히 신문·방송사 같은 소매상에 뉴스를 제공하는 종전의 역할을 유지하지만, 일반 독자들과 만나는 접점이 훨씬 넓어졌다. 가장 대표적인 통로는 네이버·다음 같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 속보 중심의 뉴스 생산 특성 덕분에 연합뉴스는 포털 뉴스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편이다. 2007년 한 연구에 따르면 주요 포털 사이트에 전재된 기사 가운데 연합뉴스가 제공한 뉴스가 35%에 이르렀다(최영재·송현주 ‘뉴스통신사의 뉴스 서비스 유통 및 고객조사’).

〈동아일보〉가 연합뉴스에 보낸 공문

그런 연합뉴스가 요즘 또 다른 변화에 직면해 있다. 뉴스통신사의 가장 전통적이고 기본적인 고객, 신문사들이 연합뉴스를 떠나고 있다. 올해 초 연합뉴스와 전재 계약을 중단한 〈중앙일보〉 〈조선일보〉에 이어 지난 7월1일 〈동아일보〉도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이미 신문사들은 한국신문협회를 통해 연합뉴스에 전재료 50% 삭감, 포털 뉴스 공급 중단, 내·외신 분리 계약 등을 요구해오던 참이었다. 어려움에 처한 신문업계를 위해 국가기간통신사이자 같은 언론계 동료인 연합뉴스가 일정 부분 희생해달라는 것이다.

이 요구안 가운데에서도 신문사들에 가장 절실한 것이 무엇인지는, 〈동아일보〉가 연합뉴스에 계약 해지 통보를 하며 보낸 공문 내용에서 잘 드러난다. “귀사는 뉴스통신 진흥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설립되고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 국가기간통신사입니다. 귀사는 오로지 영업상의 이익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언론업계 전반의 상생과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할 공적인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포털 사이트에 사진과 기사를 공급하며 귀사 고객인 당사를 포함한 언론사와 영업적으로 경쟁하는 모순적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하략)”

뉴스 도매상이 소매상인 신문사들의 시장까지 잠식하며 ‘상도의’를 저버리고 있다는 비난에 연합뉴스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연합뉴스 미디어전략팀 황정우 팀장은 “신문들이 공급을 중단하라고 요청하는 포털 사이트도 신문법상 인터넷 뉴스 서비스 사업자로, 다른 언론사들과 함께 뉴스 유통업체에 속한다. 포털에 뉴스를 주는 것 역시 B2C(기업-소비자 거래)가 아닌 B2B(기업 간 거래)이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는 신문사들의 공격에 오히려 칼을 빼들었다. 최근 사내에 지적재산권보호 전담팀을 만들어 기사 유사성 값을 추출해내는 프로그램을 가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연합뉴스 측은 “축적된 자료를 토대로 무단 도용 언론사와 기자에 대해 법적 조치를 포함한 대응에 나설 것이다”라고 밝혔다.

네이버의 뉴스 스탠드(위) 탓에 트래픽 급감 피해를 본 일부 신문사들은 네이버를 규제해야 한다는 기사를 싣고 있다.
이처럼 치열하게 싸우는 신문업계와 연합뉴스 사이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기업이 바로 요새 여러 신문들로부터 ‘슈퍼 갑’이라 불리며 공격당하는 인터넷 포털업체 네이버다. 오프라인에서 누리던 독점적 지위를 온라인에서는 잃어버린 신문사들 처지에서 보면, 연합뉴스와 더불어 그 뉴스를 가장 좋은 매대에 배치해주는 네이버도 ‘공적(共敵)’이 되었다. 특히 최근 네이버가 뉴스 캐스트에서 뉴스 스탠드로 뉴스 서비스 방식을 바꾸면서 트래픽 급감 피해를 본 일부 신문사들은 연일 특별기획 기사를 통해 네이버의 독점적 횡포를 비판하고 강력한 규제 방침을 마련하자는 논지를 펴고 있다.

네이버 홍보팀 원윤식 부장은 “연합뉴스와의 관계를 끊으라는 요구를 받지는 않았지만, 신문사들과 연합뉴스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 기류는 잘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원 부장은 네이버가 연합뉴스에 특혜를 준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반박했다. 연합뉴스 속보가 항상 네이버 메인 화면에 노출되는 것은 이용자들의 뉴스 속보 수요를 채워주기 위한 서비스이기 때문에 모두 네이버 내부 트래픽에 속해 연합뉴스가 얻을 수 있는 부가 수익이 없으며, 네이버가 연합뉴스에 제공하는 콘텐츠 이용료가 수백억원에 달한다는 항간의 이야기 역시 터무니없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측도 “정확한 액수를 밝힐 순 없지만 여전히 여러 신문사에서 받는 전재료가 포털에서 얻는 수입보다 훨씬 많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일부 신문사만 반발할 뿐”

연합뉴스와 결별한 신문사들은 “연합뉴스의 기사·사진 없이도 충분히 신문 제작이 가능하다”라는 생각이다. 〈중앙일보〉 서경호 대변인은 “오랫동안 콘텐츠 독자성을 강화하기 위한 준비를 해왔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다른 민영 뉴스통신사를 통해 채울 수 있으니 편집국에서 크게 어려움을 호소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경영총괄팀 윤종구 차장도 “생각보다 큰 어려움이 없고, 약간의 불편함이 있다 한들 불공정 행위를 하는 연합뉴스에 대해 응분의 조치를 취할 필요를 생각하면 그 정도는 감수할 만하다는 의견이 다수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역시 “일부 신문사만 반발할 뿐 많은 언론사가 최근 우리와 계약 연장을 하고 정상적인 거래를 하고 있다”라며, 아쉬울 게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갈등은 앞으로도 계속될 여지가 충분하다. 현재 연합뉴스와 계약을 유지하는 한 일간지 관계자는 “포털 가면 다 볼 수 있는 기사를 굳이 우리가 돈 주고 받을 필요가 있냐는 불만이 많다. 다른 곳처럼 계약을 해지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언론진흥재단 연구교육센터 김영욱 센터장은 “경쟁이 심한 미디어 환경일수록 사건사고 속보를 뉴스통신사가 맡고 심층적 보도를 일반 미디어가 맡는 역할 분담이 잘 돼야 서로 윈윈할 수 있는데, 지금과 같은 갈등이 지속되면 자칫 저널리즘 전반의 약화로 이어지지 않을지 우려된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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