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이용섭 광주광역시장(가운데), 이원희 현대차 대표이사(오른쪽),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 의장이 1월31일 광주형 일자리 협약서에 서명한 후 손을 맞잡았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마침내 가시화되고 있다. 이 사업을 운영할 법인이 8월 중 설립되어 2년여 뒤인 2021년부터 자동차 제조 공장을 가동할 계획이다.

이 법인의 1대 주주는, 광주광역시가 돈을 내서(출연) 만든 광주그린카진흥원(21%, 483억원)이다. 2대 주주는 현대차(19%, 437억원). 국책금융기관인 산업은행(3대 주주)은 250억원을 출자한다. 법인은 현대차로부터 일부 차종을 위탁받아 생산하게 되며 약 1000명을 고용하도록 설계됐다.

광주형 일자리는 2014년 윤장현 당시 광주시장 후보가 공약한 사업이다. 지역에 민간 자본의 투자를 유치해서 일자리를 만든다는 아이디어만으로 보면, 여느 ‘지역경제 활성화’ 사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광주형 일자리 프로젝트는 단순한 자본 유치가 아니라, ‘한국의 노동시장과 기업지배구조, 원·하청 관계를 개혁한다’는 원대한 목표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완전히 새로운 민관협력 사업이다.

2017년 6월, 광주시의 사회적 대화기구인 ‘더 나은 일자리위원회’가 도출한 4대 의제에 방향이 담겨 있다. ‘적정 임금, 적정 노동시간, 노사 책임경영, 원·하청 관계 개선’이다. 여기서 ‘적정 임금’이란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광주형 일자리는, 한국 노동시장이 대기업·정규직으로 대표되는 1차 노동시장과 중소기업·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2차 노동시장으로 나뉘어 있고, 그 격차가 극심하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왔다(〈시사IN〉 제586호 ‘우리 시대의 질문, 광주형 일자리’ 기사 참조).

사실상 5년 동안 임금·단체협상 유예

2차 노동시장의 불안정 노동자들은 대체로 노조를 갖지 못한 데 비해 1차 노동시장의 정규직들은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강력한 협상력을 과시한다. 이런 상황이라고 해도, 산업 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노사가 한꺼번에 모여 임금 등 노동조건을 공동 협상하는 ‘산별 교섭’이 이뤄진다면, 불안정 노동자들의 의사와 이익이 어느 정도 반영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각 기업마다 해당 업체의 경영진과 노동자가 노동조건을 논의하는 ‘기업별 교섭’이 일반적이다. 경영자는 물론이고 노동자들도 다른 업체의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 결국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은 강력한 협상력에 기반해서 자신들만의 임금을 올리는 데 골몰한다. 그 결과, 대기업 노동자들은 스스로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 하는 일에 비해 높은 임금을 받는 반면 경영에서 배제되는 길을 선택하게 된다. 대기업 경영진은 자기 회사 노동자에게 높은 임금을 주는 대신 중소기업에 지급하는 하청 대금을 ‘후려쳐서’ 그 부문 노동자들(강력한 노조가 없어서 협상력이 약하다)의 임금인상을 차단한다. 사실상 대기업이 인건비 부담을 하청업체에 전가하는 것이다. 이로써 하청업체들이 성장하지 못하면서 해당 산업 전체의 발전이 저해된다. 광주형 일자리 입안자들은 이런 노사관계가 현대차를 비롯한 기업들이 국내에 더 이상 공장을 설립하지 않는 이유라고 본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광주형 일자리 입안자들은 기존 대기업보다는 낮지만 대다수 중소기업보다는 높은 임금(적정 임금)을 주는, “괜찮은” 일자리를 구상했다. 또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해당 노동자들의 주거·의료·보육 등 복지를 지원한다. 높은 임금 때문에 국내 투자를 꺼리는 대기업들을 ‘적정 임금’이라는 사탕을 통해 지역에 유치하자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대기업에 사탕만 주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은 적정 노동시간만큼 일하고, 노동조합이 경영에 참여하도록 하며, 나아가 원·하청 노사가 공동으로 교섭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원청인 ‘광주형 법인’ 노사가 하청 부품업체 노사와 함께 만나 일종의 산별 교섭을 벌이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광주형 법인의 경영진은 하청기업 경영진의 처지를 고려해야 하고, 광주형 법인 노동자들 역시 하청기업 노동자들보다 훨씬 높은 임금 인상률을 고집하기 어렵게 된다.

이처럼 광주형 일자리는 단지 ‘지역에 민간 자본 유치’라는 것을 훌쩍 뛰어넘어 산업 전체의 발전과 노동시장 개혁, 개별 기업을 넘어선 노사관계 등을 목표로 하는 프로젝트다.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가 ‘광주형 일자리의 전국적 확산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공약한 이유다. 이 사업은, 2018년 5월31일 현대차가 투자의향서를 제출하면서 본격 궤도에 올랐다.

그러나 지난 1월 광주시와 현대차가 투자 협약식을 열기까지는 무려 8개월이 걸렸다. 광주형 일자리 자체에 내재한 핵심 딜레마 때문이었다. ‘적정 임금은 어느 정도 수준이어야 하는가’부터 난제였다. 더욱이 어렵게 적정 임금을 정한다 해도, 그 수준이 계속 유지된다는 보장이 없다. 만약 새로 설립되는 광주형 일자리 법인에 노동조합이 결성되어 높은 수준의 임금인상을 요구한다면? 광주형 일자리 법인의 경영진 중 하나인 현대차 처지에서는, 최악의 노사관계로 손꼽히는 현대차 울산공장이 하나 더 생기는 꼴이 된다. 현대차는 2대 주주지만, 광주형 법인에 생산을 위탁하는 차종과 물량, AS를 결정하는 지위에 있다는 측면에서 ‘실세 경영자’다. 현대차로서는 신설 법인에 ‘강성 노조’가 결성되어 임금인상을 일정 수준 이상 요구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필요한 것이다.

현대차는 사실상 노동계의 ‘약속’을 요구했다. 광주시가 1대 주주이긴 하지만, 새 법인에 결성될 노동조합을 통제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광주시와 적정 임금을 합의해봤자 지켜진다는 보장이 없다. 노동계가 포함된 광주 지역 조직이 있다. 광주시의 사회적 대화기구(행정기구와 노동계, 사용자 측, 시민단체 등이 참여)인 ‘노사민정협의회’다. 현대차는 적정 임금 등 투자조건의 합의 파트너로 광주시뿐 아니라 노사민정협의회를 지목한 것이다.

현대차의 핵심 요구는 광주형 일자리 법인에 ‘상생노사발전협의회(상생협의회)’를 구성해 근무환경과 조건을 협의하는데, 여기서 결정된 합의 사항들이 누적 생산 목표 대수가 35만 대에 이르기까지 유효하다는 조항이었다. 광주형 법인은 연간 7만 대의 차량을 생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광주형 법인의 노동자들은 5년 동안 사측에 임금·단체협상을 요구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즉, 헌법으로 보장된 단체교섭 요구 권리가 5년 동안 유예되는 것이다. 이에 노동 측 대표로 참여한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 의장 등이 강력 반발하면서 광주형 일자리 사업 자체가 무산될 뻔했다. 2018년에 투자 협약식을 열지 못하고 해를 넘긴 이유다.

결과적으로 해당 조항은 살아남았다. 예컨대 노동조건 등을 결정할 상생협의회는 광주시의 사회적 대화기구인 노사민정협의회에 의해 구성되고 운영된다. 그리고 노사민정협의회는 “적정 임금 설정의 방향과 기준을 마련하”며, 임금인상에 대해서도 “기업 경영성과와 생산성 향상률을 고려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하”도록 되어 있다. 광주형 일자리 법인은 이를 준수해야 한다. 노동계가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사회적 대화기구가 상생협의회를 통해 노동조건을 조율하고, 법인은 이를 지키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5년간 단체협상 없다’ 식으로 단호하게 상황을 정리한 것은 아니다. 상생협의회의 법적 지위가 노사협의회(노동자와 사용자 측 쌍방의 이해와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한 기구)에 불과하며, 노동법을 ‘존중’해야 한다고 규정해놓았다. 즉, 노동자들이 상생협의회와 별도로 노조를 결성하고 임단협을 요구할 수 있다.

ⓒ연합뉴스7월25일 열린 ‘구미 일자리 투자 협약식’. 왼쪽부터 신학철 LG화학 대표이사, 장세용 구미시장, 문재인 대통령, 이철우 경북도지사, 김동의 한국노총 구미지부장.

 

합의된 평균 초임 연봉 3500만원 

결국 사회적 대화기구가 적정 임금의 방향과 기준을 결정하지만 노조가 임단협을 요구할 수도 있다는, 매우 모호한 결론이 나온다. 이에 대해, 투자유치추진단에 참여한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신설 법인의 노조가 임금에 대해 의견을 내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적어도 누적 생산대수가 35만 대가 될 때까지는 (신설 법인과 노동조합이) 노사민정협의회의 권고안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신사협정’에 가깝다”라고 설명했다. 사회적·산업적 ‘대의’를 위해 일정 기간 노사가 자신들의 이익 요구를 조금씩 자제하며 협약을 준수하자는 이야기다. 그래서 신사협정이라는 용어가 나왔을 것이다.

만약 35만 대를 생산하기 전에 새 법인의 노조가 높은 임금인상을 제기하면 어떻게 될까? 박명준 연구위원은 “노조법상으로는 가능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 일자리는 지속하기 어렵다. 사회 협약을 전제로 투자가 이뤄져 일자리가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의 협약 주체들이 일정한 설득을 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대차 측은, ‘이 경우 투자를 철회하느냐’는 〈시사IN〉의 질문에 “지역 노동계도 참여한 노사민정협의회가 합의했으므로 협약이 지켜질 것으로 믿는다”라고 말했다.

이 신사협정에서 합의된 평균 초임 연봉은 주 44시간 근무 기준으로 3500만원(연장근로수당 포함) 수준이다. 현대차도 동의했다. 현대차 다른 공장의 생산직 초임은 주 52시간 기준 연장근로수당과 상여금 등을 포함해 연 4800만원이다. 주 40시간 기준으로는 2800만원이다. 다만 임금 항목 구성을 따지지 않고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또한 광주형 일자리는 가파른 호봉제가 아닌 직무·직능·성과 중심 임금체계를 도입할 계획이다. 현대차처럼 25년 근속 정규직의 평균 연봉이 9000만원에 이르는 상황은 광주형 일자리 법인에서 어렵다.

갈등의 불씨는 남아 있다. 더욱이 광주형 일자리 투자조건에 대해 광주시와 합의한 노사민정협의회의 ‘노’는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 등 한국노총 소속이다. 민주노총 광주본부와 민주노총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는 물론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와 기아차지부도 참여하지 않았다. 광주형 일자리의 모델인 독일 폭스바겐의 ‘아우토 5000’ 프로젝트(기존 폭스바겐 임금의 80%를 받는 자회사를 만들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내용)를, 폭스바겐과 독일 금속노조가 합의해 추진한 것과 차이가 있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와 기아차지부 등 4주체는 2021년까지 ‘광주형 일자리 철회 3년 프레임 전쟁’을 진행하기로 했다. 지역별 저임금 경쟁으로 임금이 하향 평준화될 것이고, 가뜩이나 자동차 산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기존 공장들이 광주형 일자리로 물량을 빼앗기게 된다는 우려 때문이다. 금속노조 기아차지부는 광주형 일자리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기아차지부 광주지회장 출신 박병규 현 광주시 사회연대일자리특별보좌관과 이기곤 전 기아차지부 광주지회장을 지난 4월 제명했다.

문재인 정부는 광주형 일자리 같은 ‘지역상생형 일자리’를 확산시킬 계획이다. 지난 7월25일에는 LG화학과 경북도·구미시가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구미형 일자리’ 투자 협약식을 열었다. LG화학은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000억원을 투자해 구미국가산업단지에 배터리 소재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밀양형 일자리’ ‘군산형 일자리’ 등도 추진되고 있다. 이런 프로젝트들은 제2, 제3의 광주형 일자리로 불린다.

같은 지역상생형 일자리로 불리지만, 구미시에 따르면 구미형 일자리는 LG화학이 직접 공장을 짓고 운영하는 모델이다. 별도 법인에 생산을 위탁하고 별도 임금체계를 도입하는 광주형 일자리와는 다르다. 밀양형 일자리는 창원, 김해, 부산 등지에 흩어져 있는 주물공장 등 30여 개 기업을 하남일반산업단지로 옮겨 ‘스마트 공장’으로 만든다는 내용이다. 군산형 일자리는 공론화를 거쳐 모델을 확정할 예정이다.

ⓒ연합뉴스1월31일 광주시청 앞에서 기아·현대차 노조가 광주형 일자리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깊어가는 민주노총의 고민 

정부는 지역 노사민정협의회가 상생 협약을 체결해 일자리를 만들면 ‘지역상생형 일자리’라 보고 지방정부와 중앙정부가 패키지로 지원할 방침이다. 정부는 지역상생형 일자리를 두 가지로 구분한다. 대기업이 투자하고 노사민정이 적정 임금과 노사관계 안정을 수용하는 ‘임금협력형’과, 중소·중견기업이 투자하고 노사민정이 입지 애로를 해소하며 생산성 향상에 협력하는 ‘투자촉진형’이다. 하지만 임금협력형의 경우 중앙정부가 특정 기업의 인건비 일부를 복지 형태로 보전할 근거가 있는지 논란이 될 수 있다. 주거·의료·보육 등 전반적 복지 시스템의 개편으로 이어져야 의미 있는 실험이 될 수 있다. 투자촉진형은 기존 지방정부의 투자 유치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

또한 두 유형 모두 “노사민정의 ‘노’를 누가 대표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취약하다. 한국노총은 광주형과 구미형 일자리 노사민정협의회의 협약에 모두 참여했고, 민주노총은 참여하지 않았다. 광주형 일자리에 비판적이지만, 그렇다고 일자리를 향한 지역의 열망을 외면하기도 어려운 민주노총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박용석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은 “광주형 일자리 협상 과정과 내용에서 노동조합이 배제된 것을 우려한다. 다만 다른 지역상생형 일자리는 결이 다른 만큼, 노조를 존중하고 대화하려 한다면 노조도 관심을 갖고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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