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외래로 30대 중반 남성이 찾아왔다. 두 달 전 제조업체에 취직한 그는 작업할 때 트리클로로에틸렌이라는 세척제를 사용해왔는데 이후 두통이 심해져서 병원을 찾아왔다고 했다. 종업원 수 약 20인 규모의 회사로 작업환경측정도 하고 특수건강진단도 받는다고 했다. 그런데 왜 멀리 대학병원까지 찾아왔을까 의아해서 물어보았다. 원래 자신의 업무를 하던 사람은 이주노동자였는데 온몸의 피부가 벗겨지면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걱정이 되어 찾아왔다고 했다. 트리클로로에틸렌은 발암물질이지만 세척력이 우수해 금속 표면에 묻은 이물질을 제거하는 데 흔히 사용되며, 취급 작업자 일부에서 독성간염과 심각한 피부 질환을 유발해 사망 사고가 여러 차례 보고된 물질이다.

그 사업장으로 산업위생사를 보내 작업환경측정 ‘영업’을 해오도록 했다. 기본 수가가 100만원인데 원래 하던 작업환경 측정기관에 40만원을 냈다고 해서 ‘대학병원이니 41만원에 해주겠다’고 하여 계약했다고 한다. 우리는 사업주에게 시설 개선 융자를 받아 초음파 세척조로 바꿀 것을 권고했다. 몇 달 후 검진을 하러 온 다른 노동자에게서 ‘세척조가 바뀌었고 냄새도 덜 나서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심했다.
 

ⓒ윤현지 그림

그 당시 내가 지방 노동관서에 연락하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세세히 밝히기에는 너무 길어서 생략한다. 불행히도 이런 사건들이 옛날 옛적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2018년 인천의 한 도금업체에서 환기 및 보호구 착용 없이 도금조에 물과 시안화나트륨을 혼합하는 작업을 하다 스물세 살 청년이 사망했다. 2017년 경기도 안성에 있는 화재용 소화기 제조 사업장에서 소화약제(HCFC-123)에 의한 급성 독성간염으로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2016년에는 메탄올 급성 중독으로 노동자가 실명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5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이라는 것이다.

소규모 사업장에서 급성 중독 문제가 지속되는 이유는 여럿이지만 핵심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의 산업안전보건법은 시행령 ‘별표 1(법의 일부를 적용하지 아니하는 사업 및 규정)’에서 그 적용 범위에 대해 매우 복잡한 표로 설명하면서 상당한 제한을 두고 있다. 2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은 안전보건관리를 담당할 인력을 지정할 필요가 없고, 5인 미만 사업장은 아예 노동자의 알권리를 배제한다. 직업병 사건이 나도 사업주와 관리감독자는 작업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 ‘몰랐다’고 이야기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며, 역시 몰랐던 노동자의 피해만 남긴 채 사건이 종결된다. 둘째, 정부는 소규모 사업장에 대해 다양한 지원정책을 펴고 있지만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다. 대표적으로 20인 미만 사업장에 작업환경측정과 특수건강진단 비용을 지원하고, 시설개선자금 융자도 해주고 있고, 간호사나 산업위생사가 일일이 사업장을 방문해 산재 예방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사업장 내에서 안전보건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일상적으로 위험을 평가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효과를 보기 어려운 방안들이다. 앞서 언급한 사업장의 사업주가 시설개선 융자를 받아 초음파 세척기를 도입한 것은 이름 모를 이주노동자의 죽음이 있었기 때문일 터이다.

이주노동자 죽음 뒤에야 시설 개선

얼마 전 어느 작은 토론회에서 종업원 수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산재 예방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토론을 했다. 모든 사업주가 사업에 따르는 건강상의 위험을 관리할 의무가 있다고 사업자 등록 단계에서 인지하도록 하는 방안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데에는 동의했다. 이 역시 아주 오래전부터 제기되었지만 실천은 요원한 과제였다. 이제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기자명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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