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제학교에서 학생들의 꿈이 스러진다
  • 김연희 기자
  • 호수 621
  • 승인 2019.08.14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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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도입된 도제학교가 빠르게 늘고 있지만, ‘더 나쁜 현장실습’에 학생들이 투입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다수 업체는 학생을 단순 노무 인력으로 이용한다.
7월17일 현장실습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국회 앞에 모였다. ‘산학일체형 도제학교’에 반대하기 위해서다. 도제학교는 특성화고등학교에서 시행되는 일·학습 병행제도로 명칭은 ‘학교’이지만 기존 특성화고에 도제반을 개설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2014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스위스에 다녀온 이후 스위스와 독일의 직업 훈련 교육을 본떠 2015년 도입됐다.

특성화고 현장실습은 3학년 2학기부터 시행되지만 도제학교는 1학년 때 희망자를 대상으로 도제반에 진학할 학생을 선발해 2학년부터 학교와 산업현장을 오간다. 학교에서 배운 이론을 곧바로 기업에서 실습하고, 숙련 노동자가 기술을 전수해 우수한 인력을 키워낸 뒤 취업까지 연계하겠다는 것이 도제학교의 취지이다.

그러나 이날 도제학교 반대 기자회견을 개최한 시민단체 ‘현장실습대응회의’와 현장실습 유가족들은 도제학교가 “더 나쁜 현장실습”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현장실습대응회의 측은 현장실습을 나간 학생들이 다치거나 숨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교육과 훈련 목적이 강화된 도제학교가 대안처럼 거론되지만 실상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시사IN 이명익박민아씨는 고교 2학년이 되면서 한 의료기기 제조업체에서 일했다. 지금은 작업 후유증으로
목 디스크 치료를 받고 있다.
2015년 도입 이후 도제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특성화고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첫해 9개 시범학교로 출발한 도제학교는 이듬해 57개 학교가 추가 선정됐고 2018년에는 전국 194개 학교로 확대됐다. 2018년 기준으로 도제학교 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 수는 8563명이다. 만성적으로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는 특성화고는 도제학교 프로그램을 반긴다. 도제학교로 선정되면 추가 예산이 지원되고, 도제학교라는 타이틀이 학생 유치에도 도움이 된다. 교육 정책의 당사자인 학생에게는 어떨까. 기존 현장학습과 달리 일과 학습을 병행하는 제도로서 도제학교가 운영되고 있을까.

박민아씨(가명·19)는 올해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디지털전자과를 전공한 그는 2학년이 되면서 도제반으로 진학했다. 학교에서는 회사를 다니며 기술도 배우고 돈도 벌 수 있다고 도제반을 소개했다.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뒷받침해준다니 믿음이 갔다. 도제학교 참여 학생들의 임금은 전액 고용노동부에서 지원된다.

성적과 출결, 학교생활을 고려해 전자과에서 12명이 선발됐다. 도제학교는 등교 형태에 따라 세 종류로 나뉘는데 그가 다닌 학교는 구간 정시제(학기 중 일부는 학교로 등교하고 나머지 기간은 매일 회사에 출근)로 운영되었다. 그 외에는 오전에 학교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회사로 가는 일일 정시제, 일주일 중 며칠은 등교하고 나머지는 출근하는 주간 정시제가 있다.

2학년 1학기부터 두 달은 학교에 다니고 두 달은 회사로 출근하는 생활이 시작됐다. 실습을 나가는 회사는 광주광역시에 있는 의료기기 제조업체였다. 제품에 불량이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맡을 거라고 했다. 집에서 다니기는 먼 거리라 함께 실습을 하는 친구와 원룸을 구했다. 도제학교에 참여하는 학생 중 많은 수가 그 지역에서 실습할 기업을 찾지 못하고 다른 기업으로 가게 되는데 회사가 마련한 기숙사에서 살거나 자취를 한다.

ⓒ시사IN 이명익전남 목포의 한 특성화고 조선기계과에 다닌 김민국씨는 대불산단으로 실습을 나갔지만, 졸업을 앞두고 업체가 돌연 폐업했다.
“어쩔 수 없다. 미안하다. 참아라”


의료기기 제조업체라던 회사는 보톡스용 주사기 바늘을 만드는 업체였다. 출근 첫날 20분 동안 바늘에 단백질 실을 연결하고 솜으로 고정하는 방법을 배웠다. 첫날 100개를 만들고 그다음 주부터는 하루 800개를 만들었다. 그 업체에서 받은 처음이자 마지막 교육이었다. 도제학교 참여 기업은 학생들을 지도하고 기술을 전수할 현장 교사를 직원 중에서 지정하게 되어 있지만 현장에서는 유명무실한 제도다. 민아씨도 누가 현장 교사인지 안내받지 못하고 바로 작업에 투입됐다.

손가락만 있으면 할 수 있는 단순노동이 반복되었다. 두 달간 학교에 다녀오니 그때부터는 하루 2000개를 만들라고 했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불려가서 혼났다. “그런 식으로 일하면 우리 회사랑 같이 못 간다고 했다.” 100만원 조금 넘는 월급은 받는 족족 생활비로 나갔다.  

학교에 도움을 청했다. 민아씨는 “도제 담당 교사에게 말했더니 ‘어쩔 수 없다. 미안하다. 참아라’는 말뿐이었다”라고 말했다. 도제학교를 포기하고 비도제반으로 가볼까도 생각했지만 결국 민아씨는 고등학교 졸업식 전날까지 해당 업체에서 일했다. 회사는 도제학교 프로그램 참여 학생 중 단 한 명만 정식으로 채용했다. 그 학생도 두 달을 채우지 못하고 퇴사했다.

졸업 후 평택의 한 제조업체에서 일하던 민아씨는 요즘 고향에 돌아와 있다. 중요한 일과는 물리치료다. 매일같이 고개를 숙이고 바늘을 만들다 보니 목 디스크가 상했다. 여름방학이 끝나면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도제반에 진학할 희망자를 모집하기 시작한다. 그는 “후배들에게 그 시간에 학교에서 공부해 자격증이라도 하나 더 따라고 말하는데 잘 안 듣는 것 같다”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목포의 한 특성화고 조선기계과를 졸업한 김민국씨(19)는 도제반에 진학하며 세워둔 계획이 있었다. 피테크(P-tech) 제도를 통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다. 피테크는 도제학교를 수료한 학생이 졸업 이후에도 현장실습을 나갔던 회사에 계속 근무하면서 폴리텍 대학을 다닐 수 있는 제도다. 민국씨가 실습을 나간 업체는 전남 영암 대불산단에 있는 조선소 하청업체였다. 일주일에 사흘은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이틀은 회사로 가는 주간 정시제였다. 2학년 때는 출근을 해도 할 일이 없었다. 별다른 기술이 없는 학생들에게 맡기기에 조선소 일은 너무 위험했다.  

본격적으로 작업을 하게 된 건 3학년 2학기부터였다. 전공인 용접을 살려 컨테이너 선박용 ‘라다’(사다리)를 만들었다. 회사는 외주 계약을 맺은 ‘물량팀’(일감에 따라 작업장을 옮기며 일하는 팀으로 조선업계 하청구조의 맨 아래에 있다)에 그를 배치했다. 불법이었지만 이 회사를 통해 피테크에 지원해 합격한 상태였기 때문에 문제 삼고 싶지 않았다. 라다를 용접하면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는 동안 허리 디스크가 나빠졌다. “하체 마비”라고 표현할 정도로 아픈 날에도 통증을 참고 일했다. 본래 7시간인 근무시간을 한 시간 연장할 만큼 일손이 달렸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2018년 12월31일, 회사는 돌연 폐업 신고를 했다. 민국씨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고작 일주일 전이었다.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와서 12월31일에 폐업한다고 했다.”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대학에 진학하려던 그의 계획도 무산됐다. 그는 현재 진도의 한 리조트에서 서비스직으로 일한다.

전라남도교육청은 지난해 12월 ‘산학일체형 도제학교 운영 전면 실태조사 TF’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도내 16개 특성화고와 학생 482명(전체 학생의 75%)을 대상으로 한 조사였다(30쪽 <표> 참조). 기업에서 주로 하는 일을 묻는 질문에 학생들은 기타(43.9%), 청소(20.4%), 허드렛일(12.1%) 순서로 꼽았다. 기술이나 전공과 연관된 업무 중에는 그나마 용접(9.1%)이 많았다.

‘2학년으로 돌아가면 다시 도제반을 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3학년 중 절반이 넘는 학생(53.2%)이 ‘선택하지 않겠다’라고 답했다. ‘다칠 수도 있겠다고 느낀 적이 있다’는 문항에 학생 65.2%가 ‘그렇다’고 답했다.

청소년노동인권센터 소속으로 특성화고 직업 교육 정책에 밝은 이수정 노무사는 애당초 도제학교 제도가 잘못 설계됐다고 지적했다. “한국 기업 중에 도제 훈련이 가능한 곳은 거의 없다. 학생들을 회사에 보낸다고 바로 기술 전수가 되는 게 아닌데 안일하게 정책을 만들었다.” 도제학교에 참여할 기업 발굴은 각 특성화고의 도제부장 교사가 담당한다. 충분한 수의 기업을 유치하기 어려울뿐더러 업체 내부사정까지 검증하기도 힘들다. 업체 처지에서도 아직 전공 수업도 받지 못한 2학년 학생들을 받는 건 부담이 된다. 특성화고는 2학년부터 전공 수업을 듣는데 2학년 1학기부터 회사에 오는 학생들에게 전문성 있는 일을 맡기기 어렵다. 그러니 대부분 업체들은 청소 등 허드렛일을 시키게 되고, 일부 악덕 기업은 임금을 전액 정부에서 지원한다는 점을 노려 학생들을 단순 노무 인력으로 이용한다.

교육부는 참여 재학생과 기업들의 만족도가 높고 취업률이 우수하다는 점을 내세워 도제학교 프로그램이 효과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홍보한다. 실제로 도제반 학생들의 취업률은 70% 정도로 비도제반 보다 높다. 그러나 도제학교 취업률에는 허점이 있다. 특성화고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내는 취업률 통계는 그해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집계된다. 도제반 학생들은 2학년부터 졸업할 때까지 해당 기업을 다니기 때문에 중도에 포기하거나 업체가 폐업하지 않으면 이 기간 당연히 취업한 것으로 분류된다.

도제학교 취업률에도 허점

특성화고에서 전문 과목 담당으로 24년간 재직한 한 교사는 “도제학교를 하면 취업률은 무조건 올라간다. 그런데 졸업 이후에도 계속 그 회사에 다니는지, 취업으로 연계되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 교사는 “인문계고에 비해서 특성화고 교육 정책은 충분한 숙고나 의견 수렴 없이 바뀐다. 도제학교를 계속 늘리는 것도 청년 취업률을 손쉽게 끌어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도제학교의 취지를 살리려면 정말로 도제 훈련이 가능한 업체들을 선별하고 인원을 축소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희생되는 건 결국 학생이다. 7월24일 김민국씨는 폐업한 이후 처음으로 회사를 찾았다. “용접은 늘 하고 싶다. 곧 군대에 가는데 제대 후 다시 진로를 찾을 생각이다. 용접 관련 학과로 진학하거나, 오스트레일리아로 워킹홀리데이를 가거나. 오스트레일리아가 용접사 대우를 잘 해준다고 들었다.” 공장 전면에 쓰여 있는 업체 이름은 바뀌었지만 만들고 있는 제품은 동일했다. 저녁 6시, 공장 앞마당에 용접 작업을 마친 선박용 사다리가 쌓여 있었다. 계획대로 피테크 과정에 들어갔다면 그가 작업했을 ‘라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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