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의 발자취
  • 고제규 편집국장
  • 호수 621
  • 승인 2019.08.05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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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암센터 입·퇴원을 반복했다. 말기 암. 수술도 어려웠다. 진행 속도를 늦추는 항암 치료만 가능했다. 2006년 봄부터 1년 가까이 이어진 아버지의 투병 생활. 마지막 두 달은 퇴원을 못했다. 당시 ‘<시사저널> 사태’로 파업을 했다. 덕분에 ‘파업 효도’를 할 수 있었다. 머리가 굵어진 뒤 끊겼던 대화가 병을 계기로 이어졌다. 아버지의 굽은 등을 닦아드린 것도 처음이었다. 같은 층에 소아암 병동이 있었다. 까까머리를 한 아이들이 제 키보다 큰 링거 거치대를 잡고 돌아다니는 걸 자주 봤다.


암 환자가 생기면 살림이 거덜 난다는 말이 있었다. 실제로 의료비로 인한 파산이 가계 파산 순위 2위라는 기사도 났다. 치료비를 수납할 때마다 영수증에서 ‘본인부담액’ 내역을 꼼꼼히 확인했다. 당시 건강보험 보장률이 생각보다 낮지 않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복지 정책 혜택을 본 것이다. 2005년부터 암 등 중증질환자의 환자 부담을 10%로 낮추고, 6세 미만 입원 진료비도 면제됐다. 그때도 보수 신문은 건강보험 적용 범위를 확대해 공단의 재정적자가 늘어난다고 비난했다.

노무현 정부는 굴하지 않고 밀어붙였다. 나중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이 추진한 복지 정책을 이렇게 평가했다. “참여정부의 복지 정책은 큰 틀에서 국민의 정부를 따라갔다. 복지 정책의 주춧돌과 기둥은 김대중 대통령이 놓았다. 참여정부는 그 위에 집을 지었다(<운명이다> 노무현재단, 2019)”.

실제로 김대중 정부는 20년간 지속된 의료보험 통합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통합방식 의료보험제를 전격 도입했다. 기초생활보장법도 김대중 정부 때 제정됐다. 현재 문재인 청와대 사회수석으로 있는 김연명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에 따르면, 김대중 정부 출범 이전 보건복지부 예산은 2조8500억원(국가 예산의 4.2%)에서 김대중 정부가 끝나가던 2002년 7조7750억원(국가 예산의 7.3%)으로 증가했다. 기초생활보장 수혜자는 같은 기간 37만명에서 155만명으로, 국민연금 가입자는 경제활동인구의 36%에서 48%로 240만명이나 늘었다. 산재보험 대상자도 김대중 정부 전후로 전체 임금노동자의 62%에서 80%로 늘었다. “한 정권이 얼마나 많은 정책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가”를 이 사회복지 수치가 보여준다(김연명, <신동아> 2003년 2월호).  

김대중 전 대통령 10주기를 맞아, 복지국가를 설계한 거인의 발자취를 재조명했다. 2009년 6월11일 ‘6·15 남북 공동선언 9주년 기념행사’에서 그는 생애 마지막 연설을 했다. “우리 모두 행동하는 양심으로 자유와 서민경제를 지키고, 평화로운 남북관계를 지키는 일에 모두 들고일어나서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나라, 희망이 있는 나라를 만듭시다.” 지금도 유효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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