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에서 저자는 ‘지은이’로 소개된다. 여기에 짧은 글을 쓰는 일과 책을 쓰고 만드는 일의 차이가 드러난다. 건축가가 건물을 설계하듯, 저자는 목차라는 구성과 얼개를 세워서 책을 짓는다.

저자들 중에서도 특히 구성에 매우 공을 들이는 이가 있다. 이들의 작품은 집필에 들어가기 이전에 기획안이나 최초의 목차만 보아도 책을 본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런 저자들은 문장 역시 간명하고 논리적이라 술술 읽히곤 한다.

조홍식 지음, 책과함께 펴냄
이 책 〈문명의 그물〉이 바로 그렇다. 10대 때부터 유럽에서 살아오면서 유럽의 역사와 정치, 유럽 통합을 공부해온 조홍식 교수가 지금까지 겪고 연구한 유럽의 고갱이를 한 권에 담았다. 그런데 그 목차를 보면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서장과 결장이 마주보는 가운데 12개 장이 들어 있다. 12시와 열두 달, 12간지 등에서 드러나듯 ‘12’는 매우 균형 잡힌 이상적인 수다. 저자는 전작인 〈파리의 열두 풍경〉처럼 유럽 문명을 대표하는 열두 가지 키워드를 엄선하여 각 개념으로 유럽을 그물망 두르듯 살펴본다. 책을 읽어갈수록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을 받게 한다.

식사에 비유하자면, 이 책은 근사한 한 끼의 정찬보다는 한 주나 한 달의 식단과 같다. 유럽과, 나아가 현재 인류 문명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교양을 고루 균형 있게 섭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유럽의 주요 성당, 박물관, 궁전, 기차역 등 각 장을 여는 12개 지도나 인포그래픽도 놓치지 마시길.

그런데 왜 우리가 유럽을 알아야 할까? 싫든 좋든 오늘날의 세계와 우리 시대의 근간을 형성한 것이 유럽이기 때문이다. 단지 교양으로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현재 어디 서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 알기 위해 유럽을 배워야 한다. 아무쪼록 독자들이 그물과 그물을 통과하는 색다른 경험을 통해 유럽 문명의 다양성과 통일성이 만들어내는 묘미를 맛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기자명 이정우 (도서출판 책과함께 인문교양팀 팀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