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수로 10년이다. 2009년 쌍용차 대규모 정리해고 이후 해고 당사자의 경험과 건강에 대해서는 몇 차례 논의됐다. 충격적인 결과를 받아들고도 한국 사회는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복직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한국 사회가 놓친 부분도 있다. 해고 이후 서른 명으로 늘어난 쌍용차 희생자 명단에는 해고 노동자만 있지 않았다. 해고자 가족의 삶이 그 명단 사이사이에 숨어 있다.

9월6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당신과 당신 가족은 이런 해고를 받아들일 수 있나요’라는 제목으로 쌍용차 해고 노동자 가족 실태조사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해고 당사자가 아닌 배우자에 주목한 연구는 처음이다. 지난 4월 국가인권위원회와 쌍용차 해고자 심리치유센터 와락의 공동협력 사업으로 실시된 이번 연구는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김승섭 교수 연구팀(김승섭 교수, 박주영·김란영 연구원)이 맡았다. 9월4일 연구팀을 만나 이번 연구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

ⓒ시사IN 이명익9월6일 서울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김승섭 교수가 쌍용차 해고자 가족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해고 당사자가 아닌 배우자에 주목한 연구는 국내에서 처음 시도됐다. 검토한 선행 연구가 있나?해외에서도 해고 당사자가 아닌 해고자 가족에 대한 ‘스필오버 이펙트(spillover effect)’ 관련 연구가 그동안 간과됐다고 고백하면서 시작된다. 연구팀이 찾은 선행 연구는 ‘아빠가 해고 경험이 있으면 자녀가 저체중으로 태어날 확률이 높다’ ‘부모 세대의 정리해고 경험이 자녀 세대 저소득으로 이어진다’ ‘부모의 실업을 경험한 자녀들은 우파를 지지하는 정치적 성향을 가진다’ 같은 내용이었다. 민주주의를 경험·학습하는 것도 공동체나 네트워크 안에서 가능한 건데, 이들은 고립돼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다. 한편으로 남편의 정리해고나 실업이 결혼 생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도 살펴봤다. 이 연구들 모두 정리해고가 노동자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 문제이자 지역 문제이며, 공동체의 문제일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국내에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살펴본 적 없는 내용이다. 한국에서 외환위기 이후 정리해고가 ‘합법화’되다시피 한 게 20년이 넘었는데, 그 가족들이 어떤 시간들을 감내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얘기되지 않았던 거다.처음 시도되는 연구인 만큼 설문지를 구성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애초에는 2015년 진행했던 해고 당사자 연구 설문지와 비슷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게 두 연구를 비교하기가 용이하다. 그런데 해고자보다 그 가족 연구는 익명성을 더 보장해야 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연구가 가능할지도 불투명했다. 응답 샘플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30명 정도 기대했는데 그 두 배가 넘는 79명이 설문에 참여했다. 이런 숫자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냐는 질문을 받기도 하는데, 사회적 약자·소수자 연구에서 이만큼 샘플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 감히 최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와락과 함께 설문지 회의만 여러 차례 했다. 포커스그룹 인터뷰도 별도로 진행해 당사자들의 경험과 이야기를 최대한 반영했다. 나중에 보니 2015년 해고자들에게는 물어보지 못한 질문이 많이 들어갔다. 이를테면 자녀와의 관계나 부부관계, 가정생활 관련한 부분이 그랬다. 설문지를 설계할 때 국민건강영양조사나 한국복지패널 조사 등 일반 여성 인구와 비교 가능한 표준화된 설문 문항을 반영해 비교해볼 수 있도록 했다.
ⓒ시사IN 이명익고려대 김승섭 교수(가운데) 연구팀이 쌍용차 해고 노동자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16년부터 쌍용차 해고자 복직이 시작됐다. 이번 연구에서도 해고자 아내와 복직자 아내 두 그룹으로 나눠 결과를 냈다. 눈에 띄는 차이는 어떤 것들이 있었나?
기자회견에서는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는데, 설문 문항 중에 현재 가장 염려하거나 걱정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물었다. 해고자 아내의 경우 남편의 직장 문제가 1순위, 가족의 건강 문제가 2순위였다. 거꾸로 자녀의 학업이나 진로에 관해 걱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자녀까지 살펴볼 여력이 없는 걸로 해석해볼 수 있다. 복직자 아내 그룹에서는 건강 문제로 고민하는 비율도 높지만, 자녀와 관련한 걱정이 비등하게 높은 비율로 나타났다.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사회적 신뢰 수준은 낮았지만, 두 그룹에서 큰 차이 없이 지역사회에 언제든 손을 내밀겠다고 말한 결과였다.해고자 아내와 복직자 아내 모두 자살 생각 비율이 높다는 점을 역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2016년 질병관리본부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참여한 일반 여성인구와 비교해보면 해고자 아내는 8.67배, 복직자 아내는 3.72배 더 많이 지난 1년간 자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 이 숫자를 보고 ‘아, 8배 높구나’ 이렇게 끝나면 안 된다. 한국은 OECD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다. 그런 나라에서 일반 여성 인구와 비교했을 때 8배가 높은 거다. 예상은 했지만 충격적인 숫자였다. 이 질문을 할 것인지 여부를 놓고 굉장히 많은 고민과 상의를 거듭했다. 2015년과 2018년 두 차례 진행했던 해고 당사자 연구 때는 묻지 못했던 질문이다. 이들에게는 자살이 먼 얘기가 아니라 바로 옆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와락에서 “두 번은 할 수 없는 연구일 테니 고통스럽지만 해보자”라고 해주어서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가 발생한 지 햇수로 10년이다. 연구팀 역시 수년째 관련 연구를 하고 있는데?

쌍용차 관련 기사가 나갈 때마다 댓글이 몇백, 몇천 개씩 달린다. 대다수가 해고자와 가족을 비웃거나 욕하는 내용이다. 당사자 중에는 댓글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읽는 이도 있다. 댓글 여론을 무시할 일이 아니다. 그런 여론을 이해해보려고 애써보자면 비정규직·실업 문제가 일상인, ‘좋은 일자리’를 갖기 어려운 시대가 하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을이 을을 비난하면서 얻는 것이 뭘까. 을끼리 싸우는 동안 이 사태를 초래한 권력과 사회구조는 점점 공고해진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향후 몇십 년간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될 거라고 믿는 이들은 아마 없을 거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하면 고용 불안이나 정리해고는 한국 사회의 변수가 아니라 상수다. 쌍용차 해고자와 가족의 고통이 남의 일이 아닌, 어느 시점에는 우리가 겪을 수 있고 언제든 이 상황에 노출될 수 있는 ‘오래된 미래’일 수 있다. 연구자 처지에서 이들의 비참한 경험을 굳이 캐묻고 숫자로 만들어 공유하는 이유는 쌍용차 해고자와 그 가족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정리해고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고통이 다른 장소, 다른 시점에서 반복되지 않도록 이 경험을 통해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 사회는 쌍용차 해고자와 그 가족에게 빚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보통 정리해고를 당하면 싸우다가도 흩어지기 십상이다. 흩어진 사람들에 대해서는 연구가 이뤄지기 어렵다. 쌍용차 해고자와 그 가족은 10년이라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줬기 때문에, 이들에게 질문하고 경험을 물어볼 기회를 한국 사회가 갖게 된 거다. 그런 의미에서 이 데이터는 한국 사회에서 정리해고가 해고자와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가장 구체적인 이야기이자 유의미한 대답이 될 수 있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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