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발목 잡은 트럼프 “관세가 먼저다”
  • 이종태 기자
  • 호수 522
  • 승인 2017.09.2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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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뿐 아니라 통상법 301조 발동이 미·중 관계의 복병으로 떠올랐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의 지식재산 절도’에 대해 강하게 비난했다.

“나는 관세를 원해. (중국 등에) 관세를 부과할 방법을 가져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취임한 이래 백악관의 경제·무역 관련 고위 자문관들에게 질릴 정도로 거듭 강조했다는 주문이다. 여러 미국 매체에 따르면, 트럼프는 선거운동 당시 약속한 ‘중국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의 실현을 ‘승리 조건’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 관세가 미국과 중국, 나아가 글로벌 경제에 초래할 결과에 대해서는 오히려 관심이 크지 않다. 

트럼프가 정치적 승리에 목말라 있고, 승리의 조건이 관세 부과라면, 남은 것은 오로지 목표 달성을 위한 방법뿐이다. 그것이 바로 통상법 301조의 발동이다. 301조 발동에 필요한 명분은 ‘중국의 지식재산 절도’에서 찾았다.

ⓒAP Photo8월1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와 강제적인 기술이전 요구 등 부당한 관행을 조사하라는 내용의 행정명령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EPA공산당 전국대회를 앞둔 시진핑 중국 주석에게 미국의 경제 압력은 큰 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14일, 통상법 301조를 근거로 ‘지식재산 절도’ 등 중국의 부당한 무역 관행을 조사하라고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행정명령을 내렸다. “외국인들이 미국의 지식재산을 침해하는 바람에 매년 일자리 수백만 개와 엄청난 규모의 소득이 사라지고 있다. 미국 정부는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 나흘 뒤인 8월18일에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가 성명서를 통해 “이해관계자 및 정부기관들과 협의를 거친 끝에, 이 중차대한 문제(중국의 지식재산 절도)를 철저히 조사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라고 밝혔다.

ⓒAP Photo‘중국의 지식재산 절도 혐의’ 조사를 총괄하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

통상법 301조에 따르면, 미국의 정부 조직인 USTR이 다른 나라와의 무역 분쟁에 대해 조사한 뒤 상대국의 잘잘못을 판정한다. 상대국이 ‘유죄’인 것으로 판정되면, 역시 미국 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징벌적 관세 인상 등 다양한 수단으로 그 나라를 제재할 무소불위의 권한을 갖게 된다. 상대국의 의사는 물론 미국 의회나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기구의 승인을 받을 필요도 없다. 트럼프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번 중국의 지식 절도 혐의에 대해서는 앞으로 1년가량의 조사를 거칠 예정이다.

문제는, 통상법 301조가 여러 나라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무역 분쟁을 오로지 미국 한 나라의 판단에 따라 처리하는 일방적(unilateral) 절차라는 데 있다. 예컨대 두 사람이 싸워 서로 상처를 입혔는데, 이에 대한 보상과 처벌 문제를 사법기관이 아니라 분쟁 당사자 중 한쪽(=미국)의 의견에 따라 처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국 피터슨연구소의 채드 본 수석연구원은 통상법 301조에 대해 “미국 정부가 경찰(해외 정부의 불공정 혐의를 적발), 검찰(혐의 내용의 심판을 요구), 배심원(유무죄 여부를 판명), 판사(외국 정부에 처벌 방법을 선고) 역할을 모두 겸하게 하는 법률”이라고 주장했다.

사문화된 통상법 301조 발동해 중국 압박


1974년에 제정된 통상법 301조는 레이건 행정부 시절(1980년대)에는 일본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일본의 반도체, 오토바이, 철강 산업 등이 철퇴를 맞았다. 무역 상대국들의 반발이 거셌다. 쌍방 간의 무역 분쟁이 한쪽(=미국)의 일방적인 판단과 이익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은, 형식적으로나마 평등한 국제관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국 미국은 1995년 WTO 출범 이후 통상법 301조를 사실상 사문화했다. 대신, WTO는 당시엔 새로운 의제로 미국이 여러 나라에 시비를 걸곤 했던 ‘지식재산’ ‘서비스 상품’ 등에 대한 무역 규범을 글로벌 차원에서 공식 제정했다. 미국 처지에서는 국내법에 불과한 통상법 301조로 상대국을 깔아뭉개는 거친 방법보다 여러 국가의 합의 테이블(WTO)에서 지식재산 등의 무역 분쟁을 해결하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제도는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는 법이다. 21세기 들어 글로벌 산업구조가 엄청난 변동을 겪으면서 지식재산의 경제적 중요성이 획기적으로 강화되었다. 미국의 산업계와 정치권은, 사실이든 아니든 ‘중국이 미국의 지식재산을 부당하게 가로채는 방식으로 급격히 성장하면서 미국의 패권적 지위에 도전하고 있다’는 우려에 사로잡혔다. 미국 정치권에서는 WTO 규범으로 중국의 지식재산 절도를 막을 수 없다는 인식까지 어느 정도 공유되어 있는 듯하다. 트럼프의 통상법 301조 발동에는 초정파적 지지가 깔려 있었다. 트럼프의 최측근으로 불리는 국수주의자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의 파격 발언을 둘러싸고 벌어진 상황을 보면 그렇다.

스티브 배넌은 지난 8월16일, 진보 성향 매체 <아메리칸 프로스펙트>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반(反)중국적 견해를 솔직히 토로했다. “미국이 (지금까지처럼) 계속 중국에 패배한다면, 아무리 늦어도 10년 뒤엔 미국과 중국의 지위가 역전되는 분기점에 도달할 것이다. 나에겐 중국과의 경제 전쟁이 ‘모든 것’이다. 우리는 이 문제에 광적으로 집착해야 한다.” 그러면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가장 우수한 무기로 통상법 301조를 제시했다.

배넌은 이 인터뷰 이틀 뒤인 8월18일 전격 해임되었다. 그런데 같은 날, 트럼프와 배넌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워싱턴포스트>가 “상당수 전문가들이 정파를 불문하고 배넌에게 동의한다”라고 보도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국무부 소속의 고위 중국 전문가로 힐러리 클린턴의 측근이었던 제니퍼 해리스의 발언도 인용했다. “내가 스티브 배넌의 말에 동의하다니 끔찍한 일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한 한 그가 옳다.”

민주당 쪽 지식인들까지 트럼프에 대한 혐오를 극복하면서 지지할 만큼 ‘중국의 지식재산 절도’가 심각한 상황일까? 미국 측의 시각에서는 그렇다. 지난해 미국 상무부에서 나온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현재 지식재산이 미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달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내린 다음 날(8월15일), 윌버 로스 상무장관은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에서, 중국이 이처럼 중요한 미국의 지식재산을 훔쳐왔다고 ‘폭로’한다. 기고문에 따르면, 미국 산업계가 외국인의 지식재산 절도로 입는 피해 규모는 미국 GDP(20조 달러 정도)의 3%인 연간 6000억 달러로 추산된다. 그 주범(primary culprit)이 바로 중국이라는 것이다. 로스가 주장하는 이른바 절도 유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에 들어가서 영업하려는 미국 기업들은 사전 조건에 따라 중국 측과 합작 법인을 만들어야 한다. 합작 법인에서 미국인의 지분은 50% 이하로 설정된다. 즉, 해당 합작 법인에 대한 지배권이 중국 측에 있다. 중국은 합작 법인을 통해 미국의 지식재산(첨단 기술)을 빼낸다. 미국 기업들은 14억 인구의 시장에 접근하는 대가로 첨단 기술을 갖다 바치는 셈이다.

둘째, 주로 중국 국영기업의 자회사인 투자업체들이 미국의 실리콘밸리 등에서 ‘과학적 약진(scientific breakthroughs)’을 달성한 스타트업을 찾아내 투자한다. 미국 자본시장에서 예컨대 1억 달러 정도로 평가되는 기술업체의 지배 지분을 2억 달러가량에 매입해버리기도 한다. 이처럼 후한 투자의 목적은 ‘높은 수익률’이 아니라 ‘신기술 획득’에 있다. 로스 장관은 트럼프에 대해 “이 엄청나게 중요한 이슈를 해결하는 쪽으로 의미 있는 걸음을 내디딘 최초의 대통령”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이 외에도 <워싱턴포스트>(8월14일자)의 애너 스완슨 기자는 중국의 ‘사이버 보안’ 법률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에 따르면, 애플이나 아마존 같은 하이테크 기업들은 중국에서 영업하며 수집한 유저들의 데이터를 의무적으로 중국 내에 보관해야 한다. 또한 각종 프로그램의 소스 코드(컴퓨터 프로그램을 사람이 읽을 수 있는 형태의 프로그래밍 언어로 기술한 자료)와 암호화 소프트웨어(encryption software)까지 중국 정부에 넘겨야 한다. 사실상 핵심 첨단 기술의 중국 이전이다.

미국 측이 중국에 제기한 ‘지식재산 절도 혐의’의 심각성을 감안하면, 트럼프의 통상법 301조 발동은 어느 정도 타당성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이 문제 해결에 훨씬 효율적이고(미국 입장에서) 국제분쟁의 위험도 적은 방안을 헌신짝처럼 버린 적이 있다. 바로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일본·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베트남 등 중국의 주요 무역 상대국(12개국)으로 구성된 TPP에는 지식재산과 관련한 강력한 보호 규범들이 제정되어 있다. 중국에는 ‘TPP 회원국에 걸맞은 수준으로 국내 법률 및 무역 관행을 바꾼 뒤 TPP에 가입하라’고 요구했다. 중국으로서는 사면초가였다. TPP에 가입하지 않으면 주요 무역 상대국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게 된다. 가입하려면 중국의 제도를 바꿔야 한다. 그동안 미국 등 선진국의 첨단 기술을 반합법적으로나마 이전받을 수 있었던 메커니즘(좋게 말하면 ‘기술이전’이고 나쁘게 표현하면 ‘지식재산 절도’)도 포기하게 된다. 지난 1월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선언한 ‘미국의 TPP 탈퇴’는 중국에 복음이었을 것이다.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제안도 거부

오바마 대통령의 TPP 역시 대단히 강력한 반중(反中) 전략이었다. 무려 7년에 걸쳐 힘겹게 짜낸 ‘중국 포위망’이다. 트럼프의 반중(反中) 전략에 비해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훨씬 부드럽고 세련되었다. 여러 나라의 협력 틀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국제주의적이며, 관세 인상 같은 방법을 피해 자유(무역)주의 원칙을 유지했다. 반면 트럼프의 통상법 301조 카드는 매우 투박하고 호전적이다. 미국 국내법(301조)으로 특정 외국(중국)을 찍어내 무리하게 관세를 올리겠다는 것이다. 최근 철강을 둘러싼 미·중 간의 승강이를 보면 심지어 의도적으로 대중국 경제 전쟁을 유발하려는 흔적까지 보인다. 

지난 7월 초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중국이 지나치게 많은 철강을 생산해서 싸게 수출하는 바람에 세계시장이 혼돈에 빠졌다’고 거듭 떠들어댔다. 중국은 글로벌 철강 생산 가운데 절반 정도를 점유하고 있다. 중국은 트럼프의 불만에 발 빠르게 대응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G20 종료 일주일쯤 뒤인 7월 중순 트럼프 행정부에 ‘오는 2022년까지 철강 생산량을 1억5000만t 감축하겠다’고 제안했다. 통계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중국의 철강 생산 규모를 불과 5년 동안 10~15% 줄이겠다는 제안이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에서 석유 생산량 감축 합의가 매우 어렵고 또한 합의가 이뤄져도 실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중국은 그야말로 파격적인 양보를 한 것이다. 심지어 백악관의 국수주의 매파들도 환호했다고 한다. 중국의 생산량이 줄면 글로벌 철강 가격이 자연스럽게 인상되므로 미국 철강업체들의 재무 상태가 극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 더욱이 중국산 철강에 고율 관세를 부과할 때 예상되는 보복조치의 위험도 없다.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제안이었다.

ⓒAP Photo화물선에 선적할 컨테이너를 실은 트럭들이 중국 동부 산둥성 칭다오 항구에 도착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런 중국의 제안을 두 차례에 걸쳐 거부하고 만다. 백악관의 수석 자문관들이 ‘수락’을 권고했지만 대통령의 뜻을 꺾을 순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할 방법을 찾아내라’고 지시했다. 이에 대해 미국의 유력 격주간지 <뉴욕>은 “트럼프는 특정한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것보다 ‘정치적 승리’를 선언할 수 있는 기회에 훨씬 관심이 크다. 그에게 구체적 실리(details)는 별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승리다”라고 설명했다. 트럼프의 여러 주요 공약들은 번번이 의회를 통과하지 못해왔다. 그러나 통상법 301조를 발동하면 의회의 승인 없이 관세 인상이 가능하다. 승리에 굶주린 트럼프가 관세에 집착하는 이유다.

미국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Axios)>의 특종 보도(8월21)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편집증은 병적인 수준이다. 지난 8월 초, 백악관에서는 신임 존 켈리 비서실장이 주재한 고위직 회의가 열렸다. 의제는 ‘중국의 지식재산 절도’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 피터 나바로 국가무역위원장,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당시 백악관 수석 전략가였던 스티브 배넌 등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는 켈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난 6개월 동안 이 천재 집단(회의에 참석한 고위직들을 가리킨다)의 회의에서 나는 줄곧 ‘관세! 나는 관세를 원해(Tariffs. I want tariffs)’라고 말해왔지. 그랬더니 이 친구들이 지식재산 문제를 갖고 오더라고! 그런데 지식재산에 관세를 부과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중국이 우리를 비웃고 있다고!”

이 에피소드에서 몇 가지 추론을 제기할 수 있다. 첫째, 트럼프는 취임 이후 줄곧 ‘중국에 고율 관세를 물릴 방법을 찾아오라’고 지시해왔다. 둘째, 경제·무역 관련 고위직들이 만들어온 방법이 바로 ‘중국의 지식재산 절도’를 명분으로 한 통상법 301조 발동이었다. 미국의 지식재산을 지키기 위해 관세를 올리려는 것이 아니라, 관세 인상을 위해 중국의 지식재산 절도라는 명분이 필요했다. 셋째, 정작 트럼프는 지식재산 절도를 이유로 중국산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물릴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이에 따라 롭 포터 백악관 비서실 실장이 ‘301조 관련 행정명령(8월14일에 내린)에 서명하지 않을 것인가’라고 묻자 트럼프는 이렇게 답변한다. “서명할 거야. 그러나 그것(행정명령)은, 내가 지난 6개월 동안 갈구했던 것이 아니라고. (다시 존 켈리 비서실장에게) 그러니까 존, 나는 관세를 원해. 누군가 내게 관세를 가져오길 바란다고. 왜 그들이 내게 관세를 갖다 주지 않는 거지? 국제주의자라서 그런가? 국제주의자들은 관세를 원치 않지. 나는 관세를 원해. 관세를 가져와.” 중국은 정말 힘든 협상 대상자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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