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고 가정해보자. 미국이 활용할 수 있는 공군 비행장은 두 군데다. 오키나와의 후텐마 기지와 가테나 공군기지다. 전투기가 한번 이륙해 공중급유 없이 목적지까지 날아가려면 대략 1000㎞ 이내 거리에 있어야 한다. 가테나 기지는 미국 태평양공군의 가장 큰 군용 비행장이다.  후텐마 기지는 주일 미국 해병대의 전용기지다. 개전 초기 중국군은 이 두 기지에 미사일 공격을 퍼부을 것이다. 미군 전투기가 타이완 근처에 접근하는 것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11월 미국 랜드연구소는 미국과 중국이 전쟁을 벌일 경우를 시뮬레이션했다. 당시 보고서가 두 건 나왔는데, 각각 〈중국과의 전쟁-상정 불가능에서 상정 가능한 것으로〉와 〈미·중 군사력 비교 스코어 가드〉이다(이하 랜드 보고서). 타이완 해협과 남중국해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는 두 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해전 및 공중전, 우주전쟁 등 9개 관점에서 18가지를 시뮬레이션했다. 미군은 사이버 전투 등 6개 분야에서 우위를 보였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중국군과 호각지세였다. 심지어 타이완 해협이나 중국 본토의 공군기지를 둘러싼 전투에서는 패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동안 첨단기술에서 앞선 미국이 여전히 압도적 우위를 보이리라는 막연한 환상이 깨져버린 것이다. 중국군이 탄도미사일 및 순항미사일 수백 발을 쏜다면 미국의 미사일방어(MD)가 전혀 힘을 못 쓴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연합뉴스2016년 9월5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중 정상회담을 위해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랜드 보고서를 보면, 개전 초기 중국군이 가테나 기지에 미사일 274발을 퍼부으면 기지의 기능을 한 달 반 정도 정지시킬 수 있다고 추정했다. 중국이 가테나 기지를 2주일 이상만 폐쇄해도 미국은 발이 묶여버린다. 2017년까지 중국은 가테나 기지를 공격할 수 있는 준중거리 탄도미사일을 1000발 이상 보유할 것이라고 한다.

가테나 기지보다 멀지만 개전 초기 중국군이 집중 공격을 퍼부을 또 하나의 기지가 바로 미국령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다. 괌은 한반도 유사시 미군 지원부대가 발진하는 곳이기도 하다. 중국 본토에서 앤더슨 기지까지는 약 3000㎞. 중국이 보유한 중거리 미사일이면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사정권이다. 중국군은 지난 2000년부터 오키나와와 괌을 염두에 두고 공격 병기를 쌓아왔다. 앤더슨 공군기지를 11일 정도 기능 정지시키는 데 미사일 100발 정도면 충분하다고 한다.

미군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랜드 보고서가 지적하듯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중국군에 비해 취약점이 드러난다. 가용할 수 있는 군사기지가 많지 않다. 타이완 사태  시 미군이 활용할 수 있는 오키나와의 후텐마 기지와 가테나 공군기지 외에 랜드 보고서가 거론한 곳은 일본 본토의 이와쿠니 기지, 미사와 기지, 그리고 요코타 기지, 한국의 오산과 군산 공군기지 등이다. 반면 중국은 타이완을 겨냥해 공군기지 39곳을 동원할 수 있다고 한다.
 

ⓒAP Photo3월2일 항공모함 제럴드 포드호 위에 올라 연설을 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미·중 간 전력 차이 급속히 줄어들어

미·중의 군사력 격차가 현격히 벌어졌던 과거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중국의 방공 능력이 형편없어서 스텔스 기능이 없는 미군의 재래식 폭격기로도 중국 본토 깊숙이 침투가 가능했다. 지금은 다르다. 훙치-9(紅旗·HQ-9)나 러시아에서 도입한 S-400 지대공미사일 등으로 방공 능력이 대폭 향상돼 함부로 침투할 수 없다. 랜드 보고서에 따르면 스텔스 기능이 없는 구식 전투기는 100% 공격에 노출되고 스텔스 기능이 높은 4세대 전투기도 40~50%의 격추 위험을 감당해야 한다. F-22나 F-35 같은 5세대 전투기만이 약 90% 생존율을 보장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260여 기를 보유한 5세대 전투기는 전 세계에 퍼져 있어서 중국 주변에만 집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미·중 간 군사력 격차가 아태 지역에서 급속히 좁혀지고 있다는 점은 이미 2년 전 남중국해 인공섬 매립 문제가 대두될 때 드러난 바 있다(〈시사IN〉 제422호 ‘제2의 닉슨 독트린 몰려온다’ 기사 참조). 중국이 난사(南沙)군도에 조성하는 인공섬의 비행장을 시사(西沙)군도 및 필리핀 앞바다 스카보로초의 비행장과 연결하면 전투기들 간의 삼각 합동작전이 가능해진다. 남중국해의 하늘을 중국이 장악하는 ‘공역의 성역화’가 이뤄지는 셈이다. 또 난사군도 인공섬은 서태평양에서 남중국해로 진입하는 데 필수적인 바닷길(수도)의 입구에 있다. 유사시 미·일의 군함을 차단할 수 있는 위치다. 이런 상황에서 하이난 섬(해남도)의 094급 원자력 잠수함이 사정거리 8000㎞에 이르는 SLBM 쥐랑-2(巨浪·JL-2)를 싣고 유유히 서태평양을 빠져나가 미국 본토를 겨냥하면 미국의 대중국 핵 우위도 무너진다.

 

 

 

ⓒ시사IN 이명익2월23일 성주 주민들이 사드 기지가 배치될 예정인 성주 롯데 골프장 앞에서 점거 농성을 하고 있다.

 

2년 전에 판도의 변화가 시작됐다면 이제는 주요 전선 중 하나인 타이완 해협이 무너졌고 다른 전선들 역시 예측 불가 상황에 접어들었다는 점에서 긴박성이 더해진다. 미·중 간 전력 차이가 빠르게 줄어드는 것은 국지전의 양상이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즉 과거처럼 국지전으로 끝나지 않고 언제든 전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미국이나 중국이 하나의 전선에서 맞은 패배를 다른 전선에서 만회하려 하거나 전선을 확대함으로써 상대방의 군사력을 분산시키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자신들이 당사자인 동중국해(센카쿠 열도) 문제 외에도 타이완이나 남중국해 등에서 미·중 충돌이 일어날 경우 일본이 최전선에 서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가테나 기지와 후텐마 기지가 공격을 받으면 앤더슨 기지는 물론이고 그보다 가까운 미사와 기지나 이와쿠니 기지, 요코타 기지의 미군이 동원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될까? 오산과 군산에도 미국 공군기지가 있다. 지정학적으로 따지면 중국의 심장부인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최단거리다. 앞의 랜드 보고서는 이들 기지에 대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한국 기지들은 중국 탄도미사일의 매우 좋은 표적이 된다. 한국 정부는 이를 두려워해 미군이 양 기지(오산·군산 기지)에서 중국을 공격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그런데 만약 한국 정부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예를 들어 한국 내 다른 미군 기지가 중국의 공격을 받게 되어 미군이 반격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동안 미국이 사드 배치를 왜 그토록 집요하게 강행하려는지를 둘러싸고 주장이 난무했다. 북한 미사일 방어용이라는 것은 한·미 양국의 공식 주장일 뿐 군사기술적 타당성이 없다는 게 이미 드러났다. X밴드 레이더를 통해 중국 내륙을 들여다보거나, 일본의 레이더 기지와 삼각 좌표를 이루기 위해 배치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결정적인 이유로는 뭔가 부족했다. 사드 자체 기능이 아니라 사드를 배치했을 때의 효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美 국방부 미사일방어국한반도 사드 기지 배치가 신속히 진행되고 있다. 위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시험 발사 모습.

 

선례가 있다. 1998년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일본은 미국의 TMD(전역 미사일방어) 체계에 전격 가입했다. 위협감을 느낀 중국이 미사일 공격력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중·일 양국 간에 본격적인 군비 경쟁 시대가 열린 것이다. TMD 이전 중·일 관계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TMD가 등장하자 곧바로 적대관계로 돌아섰다. 미국에는 무기 판매와 더불어 일거양득의 소득이었다. 사드 배치 후 한·중 관계도 과거 중·일 관계의 패턴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한·중 관계는 파탄 나고 사드 기지는 유사시 중국의 선제공격 대상이 된다. 전쟁이 일어나면 상대방의 MD(미사일방어) 시스템부터 공격한다는 것은 불문율에 가깝다. 타이완 해협이든 동중국해든 남중국해든 미국과 충돌이 벌어지면 중국은 해당 전선뿐 아니라 대중국 MD망이 있는 한국의 사드 기지를 우선 공격하려 할 것이다. 그 경우 미국은 당연히 오산과 군산 기지에서 중국을 향해 반격할 것이다. 한국 정부가 이를 막을 수 있을까? 사드를 배치하는 순간 한국은 미·중 간 무력 충돌의 한복판으로 자동 편입된다. 일본은 자신들이 최전선이라고 하지만 일본보다도 더 최전선이 바로 한국이 된다. 사드가 바로 그 ‘인계철선’인 것이다. 지난해 7월 국내 한 신문에 발표된 곤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특별편집위원의 글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한국 정부는 사드 도입을 북한의 위협에 대항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일본 정부에서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고위 관리는 전무하다. 그것이 아니라 제1열도선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양 대국 간 세 번째 장소에서의 충돌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즉 남중국해, 센카쿠 열도를 중심으로 한 동중국해, 그리고 사드 배치 이후의 한반도다.”

일본이나 필리핀, 타이완 등 제1열도선상의 국가들은 중국과 영토 분쟁 등으로 얽혀 있다. 한국은 중국과 영토적으로 얽힐 일도 없고 제1열도선 국가도 아니다(제1열도선은 대체로 미국의 딘 애치슨 국무장관이 1950년 1월 주장한 애치슨 라인과 일치한다. 2011년 1월 일본 〈교도통신〉이 보도한 용어 해설에서도 ‘제1열도선은 미국의 딘 애치슨 국무장관이 알류샨 열도-일본-필리핀을 잇는 라인을 ‘서방 측 방위선’이라고 연설에서 말한 것이 기원이다’라고 밝혔다). 아무리 미국 공군기지가 있다 해서 한국을 대중국 전선에 끌어들이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할 수도 있다.

중국 S-400 미사일 도입으로 한국 중요해져

그러나 거기에는 좀 더 깊은 내막이 있다. 주한 미군기지에 사드를 배치하자고 최초 공론화한 것은 2014년 6월 스캐퍼로티 당시 주한 미군사령관이었다. 그 직전인 5월 상하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이 회담이 있었다. 당시 이 회담에서, 중국이 크림반도 사태로 유럽 판로가 막힌 러시아산 가스를 대량 구매하는 대신, 러시아는 중국이 그토록 사고 싶어 하던 S-400 지대공미사일을 중국에 팔기로 했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양측은 2015년 4월 S-400 미사일 구매 계약 체결이 임박했음을 밝힌 뒤 연말에 6개 포대분(30억 달러. 1개 포대는 6개 미사일 발사 시스템으로 돼 있고 각 시스템은 최대 12개 발사대를 이용해 미사일 48발을 쏠 수 있음)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중국 남부 해안이나 타이완 해협 아니면 한반도를 겨냥해 배치할 예정이다. S-400 미사일은 센카쿠 열도 등에서 중·일 간 국지전이 벌어질 경우 미군이 참전해 최종 승리를 거둔다는 그동안의 전쟁 시나리오를 뒤바꿀 ‘게임 체인저’로 주목받았다. 기존 시나리오에서는 마지막에 미국의 오하이오급 잠수함이 등장해 순항미사일로 중국 연안의 중거리미사일 기지를 초토화함으로써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S-400 미사일이 바로 미군의 순항미사일을 잡아버리기 때문에 기존 전쟁 시나리오를 다시 써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미군이 S-400의 방공 능력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잠수함을 한국 서해로 잠입시켜 가까운 거리에서 베이징이나 상하이를 겨냥하거나 오산과 군산 공군기지에서 미사일 공격을 퍼붓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당시 흘러나왔다.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가 치솟은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사드 배치 얘기가 나왔기 때문에 당시에는 유사시 대중국 공격의 선두에 서게 될 오산이나 군산 기지를 방어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사드는 방어용이라기보다 유사시 오산과 군산 기지를 대중국 공격용 기지로 활용하기 위한 명분 축적용일 수 있다. 즉, 인계철선의 의미가 더욱 강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웃사이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사드 배치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기도 했다. 트럼프 본인이 MD에 부정적이었고 그의 측근인 마이클 플린 백악관 안보보좌관 내정자가 내부 회의에서 트럼프의 유세 기간 발언을 소개하며 사드는 트럼프의 대외정책과 맞지 않는다고 얘기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안보 기득권 동맹(Security Establishment)’의 반격은 집요했다. 정보와 사법 기관, 외교안보, 군수 에너지 분야 고위급 출신 인사들의 횡적 결합체인 이들 안보 기득권 동맹은 트럼프의 러시아 게이트를 물고 늘어지며 압박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클 플린이 이미 본보기로 해임됐고 트럼프에게도 닉슨의 길을 갈지, 기득권 동맹의 뜻대로 따라올지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 인사들 중에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이들 기득권 세력의 일원이라고 한다. 또한 플린 보좌관 후임인 허버트 레이먼드 맥마스터 중장은 이들 기득권 동맹의 차세대 유망주 톰 고든 상원의원이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드 배치 결정 역시 워싱턴을 장악한 안보 기득권 동맹이 한국의 군부를 앞세워 밀어붙인 결과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명박 정권이 남북관계를 파탄 낸 이래 북한 붕괴론에 입각한 ‘통일 대박’을 주장한 박근혜 정부는, 다변화하는 국제 질서를 읽지 못하고 나라를 위기상황으로 몰아넣었다.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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