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영토를 확장하려 하면 제국주의다. 그렇게 해서 세워진 제국은 나쁜 것이다. 이런 통속적인 견해는 제국과 제국주의를 폭정과 착취를 저지르는 거악으로 동일시한다. 하지만 가라타니 고진의 〈제국의 구조〉 (도서출판b, 2016)를 읽고 나면, ‘제국=제국주의’라는 상식을 통째 내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위와 같은 정의로는 제국이 제국주의와 사뭇 이질적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제국은 다수의 민족·국가를 통합하는 원리를 가지고 있지만, 국민국가에는 그것이 없다. 그와 같은 국민국가가 확대되어 타 민족·타 국가를 지배하게 될 경우에는 제국이 아니라 ‘제국주의’가 된다.”

제국은 ‘세계화폐’와 함께 통상적인 국가에 없는 세 가지 또 다른 특징을 갖는다. 첫째, 제국은 작은 부족이나 국가를 넘어선 영역에서 통용되는 법이 있다. 제국은 부족·국가를 지배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 사이의 교통과 통상에 필요한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관심사이기에 만민법이 필수이다. 둘째, 제국은 여러 부족·국가를 통합하기 위한 ‘세계종교(보편종교)’가 있다. 나아가 제국은 국교를 가짐과 동시에 다른 종교에도 관용적이다. 셋째, 제국은 라틴어나 한자·아라비아문자처럼 다수의 부족과 국가에서 사용하는 문자언어가 있다. 음성언어는 무수히 많이 있지만, 그런 방언들로는 제국에 필요한 ‘세계언어’를 구축할 수 없다.
제국주의가 일국의 군사적·경제적 확대라면 제국은 다수의 ‘공동체=국가’로 이루어짐과 동시에 그것을 넘어선다. “‘제국의 원리’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수의 부족이나 국가를 복종이나 보호라는 ‘교환’에 의해 통합하는 시스템입니다. 제국의 확대는 정복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복된 상대를 전면적으로 동화시키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복종하고 공납만 한다면 그대로도 상관이 없습니다.” 타 민족의 종교·관습·학문에 대한 관용과 이질적인 문명끼리의 공생으로 어우러진 제국을 가라타니 고진은 ‘세계-제국’으로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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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그림

제국을 완성하는 제국의 원리는 에이미 추아의 〈제국의 미래〉(비아북, 2008)를 떠올려준다. 에이미 추아는 페르시아·로마·당(唐)·몽골·스페인·네덜란드·영국·미국 등은 하나같이 당대의 후진국이거나 변방에 불과했으나, 인종과 종교를 따지지 않는 관용을 내세웠기에 성공한 제국이 되었다고 말한다. 관용은 패권을 장악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요소인 반면, 인종적·종교적·민족적 순수성에 대한 집착은 불관용과 외국인 혐오를 배양한 끝에 제국을 쇠퇴로 이끈다. ‘천년 제국’을 꿈꾸었던 나치는 인종적 증오로 말미암아 자국은 물론이고 인류사에 큰 재앙을 부르고 13년 만에 패망했다. 두 저작 사이에 피상적인 공통점은 여기까지다. 지루하고 진부하기만 했던 〈제국의 미래〉와 지적 자극으로 충만한 〈제국의 구조〉를 비교하는 것은 당찮은 일이다.

 

제국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서구에서는 자주 로마제국을 거론하지만, 제국의 원리로 작동되는 ‘세계-제국’은 아시아에서 나왔다. 서구중심주의 사관은 제국의 원리가 아시아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라타니 고진이 특히 중국 역대 왕조를 염두에 둔 ‘세계-제국’을 오히려 ‘아시아적 후진성’이라는 말로 폄하해왔다. 중국과 달리 서구는 로마제국을 끝으로 더 이상 ‘세계-제국’을 희망하지 않았다. “서유럽에서는 세계=제국이 성립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왕·봉건영주·교회가 경합하고 그 틈을 이용하여 자립적인 도시가 번영했습니다.” 서구는 ‘세계-제국’의 이상을 폐기하고 국민국가(주권국가)가 각기 다른 국민국가와 경쟁하는 근대 세계 시스템인 ‘세계-경제’에 매진했다. 그 결과 타국을 압도하는 강국이 종종 제국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그것은 패권 국가(헤게모니 국가)에 지나지 않았다.

제국주의는 헤게모니 다툼, 제국은 공동체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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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구조〉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도서출판b 펴냄

서구의 주권국가 관념은 제국의 우산 아래 동거하는 국가들을 제국에 종속되어 있는 노예로 간주한다. 중국이라는 세계-제국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었기에 서구의 근대 세계 시스템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일본은 조선이 청(淸)과 조공 체계로 맺어진 제국의 일원(소중화·小中華)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조선을 어엿한 독립국으로 취급하는 간계를 썼다. 서양 열강이 오스만·청·무굴 제국에 종속되어 있는 민족들을 해방시키고 주권(민족자결권)을 부여하는 것처럼 속였듯이, 일제 역시 청 제국으로부터 조선을 분리함으로써 조선을 식민지로 삼을 수 있었다.

 

가라타니 고진은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가 1870년대 이후 제국주의 시대와 유사하며, 현재 동아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일찍이 청일전쟁 시기에 있었던 지정학적 상황의 반복이라고 말한다. 이런 반복은 일개 헤게모니 국가가 장기 지속할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일로, ‘세계-경제’ 시스템에서의 필사적인 자본 경쟁은 전쟁으로 귀결된다.

지은이의 해결책은 칸트의 세계공화국을 재해석하는 것이다. 칸트는 주권국가가 부채질하는 민족주의를 근절해야 할 망상으로 배척한 뒤, 향토애와 세계시민주의(코즈모폴리터니즘)가 그것을 대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가라타니 고진은 칸트의 코즈모폴리터니즘을 제국으로 해석했다. 1800년대 이후 서구의 세계-경제가 해체해버린 제국의 회복에 지은이가 오래 다듬어온 호수(互酬·증여와 답례) 개념을 덧붙인 것이 〈제국의 구조〉다.

이병주가 1983년에 발표한 중편소설 〈그 테러리스트를 위한 만사〉(바이북스, 2011)의 주인공은 악질 친일 인사만 골라서 암살하는 무정부주의자다. 그는 뜻밖에도 이렇게 말한다. “도국인(島國人) 근성의 한계를 보여준 것이지만 아무튼 (일제의) 대동아 공영권이라고 하는 문제 설정만은 좋았어. 명칭을 동남아연방이라 해놓고, 일본공화국·한국공화국·만주공화국·화북공화국·화중공화국·화남공화국·월남공화국·타이공화국·말레이공화국·필리핀공화국·인도네시아공화국을 그 연방 속에 흡수하는 거야. 요컨대 대동아 전역이 하나의 나라로서 소비에트 연방, 미합중국, 유럽 제국, 아프리카 제국과 공존해 나가자는 거야. 이렇게 대치만 해갖곤 동양의 평화라는 건 없는 거야. 동양을 망치는 건 동양 내에 있어서의 내셔널리즘이야. 대국적 견지에 서서 이 내셔널리즘을 조정해야만 되지 않겠는가.” 주인공은 서구가 설계해놓은 근대 세계가 민족과 주권국가에 의해 항시적인 분쟁 상태에 놓이게 되리라는 것을 우려하면서, 가라타니 고진의 표현인 ‘제국의 고차적인 회복’을 역설하고 있다. 다음에 이 주제로 한 번 더 쓰고자 한다.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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