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우
기자로서 파업을 하며 얻은 소중한 경험 가운데 하나는 매일 취재만 하다가 거꾸로 취재를 당하는 처지가 돼보았다는 점이다. 겪어보니 기자들이 얼마나 허술하게 취재해 부정확하게 쓰는지 ‘생중계’로 알 수 있었다.

앞뒷말을 뭉텅 잘라내고 마구 인용해 말하려는 뜻을 비틀어 전달하는 것은 약과. 기자 본인이 즐겨 쓰는 듯한 상투적 어휘를 인터뷰 기사에 잔뜩 끼워넣어 잘난 척하기를 좋아하는 아주 우스운 인간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했다. 우리 기자들의 활동에 비교적 호의적인 매체의 기자마저 이런 실수를 아무렇지도 않게 범하는 것을 보면서 적잖이 양심이 아팠다. 예전에 현장에서 기자로 뛰며 얼마나 많은 취재원의 가슴을 멍들게 하고 기막히게 만들었을까 생각하면서.

따라서 〈시사IN〉이 쓴 기사에 대해 항의하는 분에게 좀더 겸손하고 신중하게 대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그것은 BBK 수사 검사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BBK 수사 검사 10인은 김경준씨의 메모를 공개한 〈시사IN〉의 기사가 자기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면서 모두 6억원의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법을 집행하는 검사들이 법 절차에 정해진 언론중재위원회라는 중간 과정조차 거치지 않고, 더구나 특검도 예정돼 있는데 곧바로 민사소송을 택한 것을 보면 이들의 심정이 많이 상했음을 알겠다.
 
김경준씨의 메모가 공적으로 공개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는 이제 법원이 판단할 몫이다. 우리로서는 법원이 유력한 대선 후보와 깊이 얽혀 있는 피의자와 관련한 중요 사항을 언론이 공개한 것을 잘못했다고 판단하지는 않으리라고 믿는다. 하지만 소송 결과와는 상관없이 우리 기사로 말미암아 열심히 수사한 대다수 검사가 맥이 쭉 빠졌으리라는 점은 인정하고 미안하게 생각할 따름이다.

그렇더라도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겠다. 검사들은 기자회견 때 승소해서 돈을 받으면 태안 기름 유출 복구사업에 성금으로 내겠다고 했다 한다. 그렇다면 보자.

누구나 알다시피 이번 기름 유출 사고를 일으킨 주범은 삼성중공업이다. 그러나 삼성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과 보험 계약을 맺은 삼성화재가 태안 주민에게 직접 보상해야 할 액수는 고작 4억5000만원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90%를 해외 재보험으로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검사들은 승소를 장담하고 있을 테니 결국 〈시사IN〉에 삼성중공업보다도 많은 액수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셈이다.

세상에 이보다 억울한 일이 또 있겠는가.

기자명 문정우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mjw21@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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