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그랬다. 일부러 그런 곳에다 자리를 잡지 않았나 의심할 정도로 클럽에스프레소 가는 길은 불편했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257-1. 그 커피점을 9년 만에 다시 찾으면서 나는 또다시 툴툴거리고 말았다. 예전에 차를 몰고 갈 때는 주차 때문에 골 아프게 하더니, 이번에는 지하철을 타도 단번에 닿지 않는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부암동은 여전히 고요하다. 그러나  클럽에스프레소는 놀랍게도 손님들로 북적댄다. 수요일 오후 2시. 1층의 40여 좌석은 빈 곳이 거의 없었고, 볶은 콩(원두)을 사려는 손님들이 수시로 들락거린다. 맛있는 음식점도, 분위기 좋은 카페도 아닌데 평일 대낮에 불편을 마다 않고 굳이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곳의 커피에 분명 뭔가가 있다.
 

ⓒ시사IN 백승기커피 대중화에 뜻을 둔 마은식 대표(오른쪽)는 “커피 값을 내리자”라고 말한다.


그 ‘뭔가’는 입구에서부터 눈에 띈다. ‘커피 중독자 시리즈’라는 제목의 이벤트에는 ‘커피를 물처럼 자주 마시는 사람을 위하여’ 같은 다소 장황한 문구가 적혀 있다. 이른바 중독자에게 제공하는 볶은 커피콩의 가격이 놀랍다. 500g에 1만8000원(내가 사는 캐나다와 엇비슷하다). 한국의 스페셜티 커피 원두 가격이 100g에 6000~8000원인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이다.

입구에 ‘카페’나 ‘커피 전문점’이 아니라 ‘커피 상점’이라고 써 붙인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푹신한 소파 대신 딱딱한 나무 의자가 있고, 화려한 인테리어 대신 천장과 칸막이, 테이블과 의자가 모두 원목으로 짜였다. 소박하고 검소한 분위기이다. 마은식 대표는 “실내는 목공을 하는 나와 우리 직원들이 꾸몄다”라고 말했다. 남미·아시아·아프리카 등 수십개 커피 생산국에서 들여온 각종 커피콩을 볶아 파는 코너가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집에서 커피를 쉽게 내려 먹는 방법을 소개하는 영상물이 돌아간다. 물 300㎖에 커피 15g을 2분 만에 내려 마시면 된다. 물은 92℃에 맞춘다.

클럽에스프레소는 2010년 10월1일로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1990년 서울 대학로에 당시 스물셋 젊은이가 창업한 스페셜티 커피점은 ‘새롭다’ ‘특이한 20대가 주인이다’ 하여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2001년 마은식 대표는 한적하기 짝이 없는 부암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나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내가 전문가라면 아무것도 없는 바로 그 맨바닥에서 이상적 모델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사IN 백승기커피점 안 가장 좋은 자리 는 수십개 커피 생산국에서 들여온 커피콩이 차지한다.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물 가운데서도 커피는 묘한 ‘물건’이다. 먹어서 배부른 것도 아니고 마셔서 시원한 것도 아닌, 그저 쓰거나 설탕을 곁들인 달달한 음료일 뿐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 사람들은 그 쓴물을 마시기 위해, 놀랍게도 5000원 이상씩을 서슴없이 투자한다.

스페셜티 커피가 한 잔에 5000~6000원이라면 한국에서는 그리 비싼 축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커피점이 부암동 같은 외진 곳에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엇이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것일까? 이것이 바로 마 대표가 말하는 ‘전문성’이다. 그이와 함께한 자리에 직원이 에티오피아산 ‘리무’라는 커피를 한 잔 내왔다. 마 대표가 에티오피아에 가서 직접 사온 것이라 했다. 약간 텁텁하지만 좋은 신맛이 돈다. 깊이와 더불어 입안 한가득 차는 묵직함이 느껴진다. 마 대표는 “꽃향기가 나지 않느냐”라고 묻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커피의 진정한 맛은 ‘볶기’와 ‘블랜드’(Blend·산지가 서로 다른 커피를 섞어 맛과 향을 풍부하게 하는 것) 기술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까맣게 혹은 연하게 볶거나, 블랜딩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다.

 

 

 

 

ⓒ시사IN 백승기인테리어는 모두 원목으로 짜였다.

최근 그 개념이 크게 바뀌었다. “스페셜티 커피의 진정한 맛과 향은 각 커피 산지가 가진 독특한 환경과 문화에서 나온다. 산지의 고유한 맛과 향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문성 높이기와 더불어 마 대표가 목표로 삼는 것은, 바로 그 맛과 향을 좀 더 많은 이들이 즐기게 하는, 이른바 대중화이다. 커피 가격을 대폭 낮춘 것은 대중화를 위한 첫걸음이다. “미국에서 20달러 하는 청바지가 한국에서 10만원 한다면 말이 안 된다. 나는 커피 값을 내리자고 악을 쓰며 이야기한다.” 커피업계에서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커피 질을 높게 더 높게

대중화를 목표로 한다면서 그는 그 대중을 점점 더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2007년부터 그이 스스로 담배를 끊어가며 실내에서 담배를 못 피우게 하더니, 2년 후에는 셀프 서비스를 도입했다. 3층 건물(120평·396㎡)을 모두 쓰면서 직원 16명의 쉼터는 ‘널널’하게 만든 대신, 손님에게는 달랑 1층 한구석만 내준다. 직원들의 쉼터에는 푹신푹신한 소파와 침대까지 있지만 손님들에게는 딱딱한 나무 의자만 제공할 뿐이다.

“꼭 필요하지 않은 서비스를 줄이는 대신 그 에너지를 커피의 질을 높이는 데 집중하겠다”라는 것이다. 마 대표는 급기야 매장 내의 테이블을 모두 없애는 계획을 진행 중이다. ‘손님을 불편하게, 더 불편하게’를 슬로건으로 내건 듯 보이는데, 클럽에스프레소에서 그것은 ‘커피 질을 높게, 더 높게’로 받아들여진다. 아메리카노를 테이크 아웃하면 2000원이 싼 3000원에 마실 수 있다.

아무리 스페셜티 커피라고 하지만 한국만큼 커피 값이 비싼 나라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최근 산지의 특성을 살려 커피를 볶고 만드는 신개념 커피점으로 각광받는 미국 ‘스텀프타운 커피 로스터스’의 커피 한 잔 가격이 2달러에 불과하다. 한국에서는 클럽에스프레소가 이른바 가격 파괴와 전문성 높이기를 통해 스페셜티 커피를 대중화하는 실험에 돌입했다.

 

 

 

 

 

 

클럽에스프레소
서울 종로구 부암동 257-1 / 전화 02-764-8719 / www.clubespresso.co.kr
교통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 5호선 광화문역 3번 출구로 나와 버스 1020번, 7022번, 0212번, 7212번으로 갈아타고 10여 분 후 부암동주민센터 앞에 하차.
특징: 20년 전통의 수준 높은 스페셜티 커피 가격이 파격적. 집에서 커피를 직접 볶을 수 있도록 생두 판매. 오븐에서 직접 구운 신선한 쿠키. 온라인 쇼핑 가능. 실내 금연. 인터넷 안 됨.

 

 

 

기자명 성우제 (커피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sungwooj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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