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우울해지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려고 초콜릿을 씹으며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에 내린 것이 지난해 9월24일이었다. 다큐멘터리 〈행복해지는 법〉의 취재를 위한 일주일간의 촬영이 시작된 것이다. 취재 시작부터 역설일 수밖에 없었다. 취재 예산을 절감하느라 스위스에서 다른 프로그램의 촬영이 끝나자마자 조연출과 출연자 편에 촬영 테이프를 한국으로 들여보내고, 혼자서 카메라를 들고 떠나온 참이었으니. 누구보다 수면 부족에, 일에 치여 짜증이 폭발하기 직전인 내가, ‘행복’에 대한 취재를 한다고? 손에 들고 있는 스위스 초콜릿 포장지에 인쇄된 젖소가 웃을 일이었다.

덴마크는 행복학 연구의 선구자 에드 디너 교수(미국 일리노이 주립대학)가 해마다 실시하는 국가 간 ‘행복도 조사’에서 거의 매년 1위를 놓치지 않는 나라이다(참고로 지난해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전체 135개 조사 대상국 중 꼴찌에서 거꾸로 15위를 차지했다). 취재 목적은 명확했다. ‘도대체 그 사람들 왜 그렇게 행복한 거야?’ 아니, ‘진짜로 행복하긴 한 거야?’

안 그래도 살짝 짜증 나 있는 상태에서 시작된 취재는 첫 방문지인 초등학교에서 이미 정신적 공황상태로 이행하고 만다. 아니 글쎄, 아이들이 학교가 재미있어 죽겠다는 것이다! 거대한 놀이방처럼 꾸며진 학교 1층에서는, 수업을 마친 저학년 아이들이 저마다 좋아하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미장원 놀이가 한창이고, 한쪽에서는 당구를, 그리고 또 한쪽에서는 소꿉놀이가 한창이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부모들이 데리러 올 때까지, 오후 시간을 온통 놀이로 보내는 아이들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아이를 데리러 온 학부모에게 물었다.
 

탁재형 PD는 EBS의 여행 프로그램 〈세계테마기행〉을 연출한다. 그는 시청률이라는 양떼를 몰고, 아이템의 초원을 자주 떠돈다.

 

불안한 사람에게 휴식은 없다
“아이가 노는 시간에 부족한 공부를 좀 더 시키거나 하고 싶지는 않습니까?” “그래 봤자 아이가 스트레스를 느끼면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사립학교를 보내다가 공부를 너무 시키는 것 같아서 이 학교로 옮긴 건데요.” “그러면 시험 성적이 떨어지거나 하면요?” “시험 같은 건 없는데요.”

9학년까지 다니게 되어 있는 덴마크의 초등학교에는 시험이 없다. 다만 9학년 말에 고등학교 진학을 위한 자격시험이 있을 뿐이다. 그럼 그 시험을 준비하는 시간만이라도 머리 싸매고 공부하지 않겠느냐고? 전혀. 덴마크에서 학력은 그 사람의 관심사와 관심의 정도를 나타내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자기가 진정으로 어떤 주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싶으면 대학을 가고, 일찍 사회에 나가서 돈을 벌고 싶으면 직업학교를 간다. 이 선택의 결과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단언컨대 전혀 없다. 그러고도 1인당 국민소득은 세계 4위다.

불안한 사람에게 휴식은 없다. 도태의 공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놀 수 있는 여유란 허위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언제 내 어깨에서 이 유리와 반도체로 만들어진 골칫덩이를 내려놓고,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 안식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인천공항에 도착한 나는 다시 초콜릿을 씹기 시작했다.

 

기자명 탁재형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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