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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 라디오 연설에 있는 말과 없는 말은?

이명박 대통령이 하는 라디오 연설이 두 돌을 맞았다. 50회 연설 기록을 살펴보면 ‘CEO 대통령’ ‘경험의 달인’ 등 이 대통령을 읽는 코드가 발견된다. 그의 말로 풀어보는 ‘MB 독해’.

김은지 기자 smile@sisain.co.kr 2010년 10월 28일 목요일 제1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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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 말로 ‘먹고 사는’ 정치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더구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역사에 남는 대통령의 말은 국정 운영 전체를 가늠케 하는 척도다. 이명박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총리가 대독하는 연설부터 대통령 연설의 고갱이인 신년연설과 8·15 연설까지 많은 말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라디오 연설이 눈에 띈다. 대통령 라디오 연설은 노태우 전 대통령 이후 처음이다. 촛불시위 이후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한다는 목적이었다.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노변 담화’를 벤치마킹한 이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이 10월18일에 2주년, 50회를 맞았다. 이 대통령 목소리가 라디오 채널 2개(KBS1·TBS), 인터넷 사이트 7개(다음 TV 팟·유튜브 등), TV 5개사(TBS·KTV 등)를 통해 전파를 타고 있다.

   
ⓒ청와대
대통령 라디오 연설은 1989년 노태우 대통령 시절 15차례 하고 막을 내렸다. 19년 만인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은 라디오 연설을 부활시켰다.
평균 방송 시간은 7분, 200자 원고지로 13장 정도 분량이다. 격주 월요일에 방송되는 라디오 연설 준비는 전주 월요일부터 시작된다. 월요일에 담당 비서실에서 주제 2~3개를 대통령에게 보고하면 보통 수요일에 주제가 정해진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이 완전히 새로운 주제를 내놓기도 한다. 주로 토요일에 녹음을 하는데, 한 번에 ‘OK 사인’이 난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의 말이다. 발음이 ‘NG’의 주된 이유라 연설팀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대통령이 발음하기 쉽지 않은 ‘의’자나 ‘ㅆ’ 발음이 들어간 단어는 다른 단어로 대체하기도 한다.

이 대통령은 라디오 연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적극 개입한다고 한다. 라디오 연설이 시작된 2008년 10월부터 1년4개월 동안 연설 실무를 담당한 정용화 전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은 “대통령은 라디오 연설에 굉장한 애정을 가지고 직접 챙긴다. 연설문 절반 이상을 직접 구술한다. 대통령 의중이 70~80% 들어가 있다고 보면 된다. 자신의 생각을 직접 담은 것이 많다”라고 말했다. 라디오 연설을 들으면 이 대통령이 보인다는 뜻이다.

   
 
라디오 연설 50번에 담긴 이 대통령은 어떤 모습일까? 단어부터 살펴보자. 핵심 키워드를 통해 대통령의 관심사를 읽을 수 있다는 게 전·현직 대통령 연설을 담당했던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이 대통령이 가장 많이 말한 단어는 ‘국민’이다. 50차례 연설 중에 총 334회 나온다. 연설이 국민을 향한 말 걸기라는 점에서 관례적으로 나오는 단어지만, 눈여겨볼 점도 있다. 이 대통령은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이라는 말을 자주 썼다(‘사랑’은 114회 나온다). 정용화 전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은 “이 대통령의 기독교적 배경을 엿볼 수 있는 단어다. 이전 대통령들은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혹은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이라고만 말했다”라고 설명했다.

경제 196번, 인권 한 번도 안 나와

‘국민’ 다음으로 많이 나오는 단어는 ‘경제’로 196회이다. 대통령(149회)·위기(130회)·일자리(120회)가 그 다음으로 많았다. 시장(市場·65회)·금융(58회)·중소기업(53회)·성장(50회)과 같은 경제 관련 단어도 상위권이다.

반면 민주주의(11회)·평화(11회)·소통(5회)·통일(3회) 등 정치와 관련된 단어는 적게 나왔다. 인권이나 평등은 한 번도 안 나왔다. 민주주의와 평화라는 말은 6차 연설(2009년 1월12일) ‘정치 개혁을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합시다’에서 처음 등장한다. 이 대통령은 “회의실 문을 부수는 해머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때리고 제 머리와 가슴을 때리는 것같이 아팠다”라며 2008년 12월 한·미 FTA 비준 동의안 상정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은 ‘해머 국회’를 비판하며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썼다. 이 대통령은 “어떻게 이룬 민주주의인데”라며 안타까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이 대통령의 연설은 “민주주의를 자기 편의대로 사용했다”라는 비판을 받았다. 문화평론가 진중권씨는 “(해머를 쓴 것은) 한나라당에서 외통위를 봉쇄하고 야당의 출입을 막았기 때문이다. 해머로 민주주의를 부수는 게 누구인지 대통령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세 차례 등장하는 ‘노동’은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는 이미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만, 한시도 늦출 수 없는 우리의 중요한 과제입니다(제15회·2009년 5월18일)”와 같이 경제정책을 설명하는 수단으로 쓰였다. 이 대통령이 자주 쓰고 덜 쓴 단어만 보더라도 ‘CEO 대통령’을 자처하는 그의 경제관과 노동관을 엿볼 수 있다.

   
 
정책 관련 단어 중에는 G20(46회)을 가장 많이 언급했다(경제 관련 제외). 이 대통령은 수차례에 걸쳐 G20 유치가 얼마나 큰일이고(“G20의 내년도 의장국까지 된 것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열심히 노력한 결과라고 볼 수가 있다” 제19회·2009년 7월13일), 어떻게 잘 치러야 하는지(“나는 이번 다보스포럼 특별 연설에서,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 중심 의제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개발 격차 문제와 글로벌 금융 안전망 등을 제시했다”제34회·2010년 2월8일)를 거듭 강조했다. ‘저탄소 녹색성장’과 관련된 단어인 ‘자전거’는 49회, ‘녹색’은 22회 나온다. ‘천안함’ 12회, ‘4대강’이 10회 등장한 데 반해 ‘세종시’는 2회 언급했다. ‘무조건 반대’라는 말도 눈에 띈다. 다섯 차례 나오는 이 단어는 대통령의 정책을 반대하는 세력을 일컬을 때 종종 사용했다.

이 대통령의 ‘라디오 언어’는 크게 4가지 코드로 나눌 수 있다. 경험·긍정·감성·치적이 그것이다. 이 대통령은 연설 곳곳에 풍부한 자기 ‘경험’ 곁들이기를 잊지 않았다. 청년 실업에 관한 연설이 대표적이다. 네 번째(2008년 12월1일) 연설에서 이 대통령은 청년 실업자를 향해 중소기업에 도전하라며 “냉난방 잘 되는 사무실에서 하는 경험만이 경험은 아니다. 저도 역시 그랬다. 나중에 대한민국 최대 기업이 됐지만 제가 입사할 때만 해도 그 회사는 종업원이 불과 90명 남짓 되는 중소기업이었다”라고 충고했다.

비정규직에 대해서도 비슷한 말을 남겼다. 이 대통령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한 국민의 사연을 소개하며 “저 역시 젊었을 때 그런 경험이 많았다. 그 심정, 충분히 공감한다. 정규직과 기간제 근로자의 차별을 줄이고 파견직·계약직의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일에도 더 노력하겠다(제36회·2010년 3월8일)”라고 약속했다. 철거민도, 노숙자도 해봤다는 이 대통령 특유의 ‘내가 해봐서 아는데’ 화법의 공식 버전인 셈이다.

   
 
MB 말하기 코드, ‘경험·긍정·감성·치적’


하지만 과거 경험을 앞세운 말하기 방식은 공감보다는 반발을 더 많이 샀다. 누리꾼들은 ‘경험의 달인’이라고 비꼬았다.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대학원생 김신애씨(25)는 “그때와 지금은 시대가 다른데도 자기가 다 해봐서 안다고 말하는 것에 거부감이 든다. 청년 실업을 사회 구조의 문제로 보는 게 아니라 개인에게 돌려버리는 거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경험’을 얘기한 뒤에는 자주 ‘긍정’ 코드가 따라붙었다.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특별히 견디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시는 서민 여러분! 어렵다고, 힘겹다고 결코 포기하거나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제5회·2008년 12월15일)”와 같은 힘내자는 얘기가 연설 곳곳에 나왔다.

이를 두고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마인드프리즘 대표)는 “그의 생활신조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반드시 그 속에서 뭔가를 얻고 그 귀한 경험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개별성에 대한 인식이 떨어진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사람vs사람> 중에서)라고 분석한 바 있다. 노점상에서부터 대통령까지 한 그의 폭넓은 경험과 긍정적 사고관이 합쳐져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떨어뜨리기도 한다는 지적이다. 이를테면 수해 현장에서 “기왕 이렇게 된 거니까 마음 편하게 먹어라”라는 이 대통령의 조언은 갑자기 튀어나온 발언이 아니라, 라디오 연설을 통해 지속적으로 내비추던 그의 속내라는 뜻이다.

라디오 연설에서는 자주 ‘감성’ 코드도 읽힌다. 그래서인지 가족이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이 대통령 자신의 어머니·아버지에 대한 추억, 일반 서민의 삶 이야기 등이 나온다. “며칠 전 서울 가락동시장에서 박부자 할머니를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할머니의 손을 덥석 잡았다(제5회·2008년 12월15일)”와 같은 재래시장 할머니와의 사연은 이 대통령이 서민 이미지를 앞세울 때 많이 등장했다. 청와대에 사연을 올린 봉고차 모녀, 중학생 자녀를 둔 40대 가장 이름을 직접 부르며 그들에게 답하는 형식으로 연설을 한 적도 있다. 연설 중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50차례 연설 동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검은 넥타이와 양복 차림을 하고 나와 천안함 희생 장병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제39회·2010년 4월19일) 눈물을 흘렸다.

   
 
감성 코드가 ‘공감의 정치’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은 “새로운 소재와 메시지를 담지 않는 이상 가족 이야기는 식상하다. 가족은 대부분의 정치인이 자주 언급하는 소재이고, 지금까지 이 대통령이 라디오에서 한 가족 이야기도 많이 들어본 말이다”라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 연설에 자주 등장하는 또 한 가지 코드는 정책과 치적에 대한 홍보이다. 제31회(2009년 12월28일) 연설에서는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를 공개하며 “이번에 역사상 처음으로 선진국과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원자력발전소 수출의 길을 열었다”라고 말했다. ‘경제 대통령 MB’는 금융, 경제 성장, 서민 대출 등도 자주 언급했다.

‘평소에 어떤 메시지가 앞뒤가 잘려 본의 아닌 표현이 언론에 많이 반영돼 좀 답답해’ 라디오 연설을 시작했다는 이 대통령은 “방송이 7~8분이기는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니 국민이 직접 들을 기회가 된다(제20회·2009년 7월27일)”라며 라디오 연설의 의미를 설명했다. 또 그는 “국민들이 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냐”라며 소통의 도구로서 라디오 연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듣는 사람 생각도 같을까. 시사평론가 유창선씨(정치사회학)는 “라디오 연설은 일방적인 전달이다. 기자간담회나 국민과의 토론같이 쌍방의 소통 방식이 필요하다. 이제는 그만할 때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대통령 지근거리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온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라디오 연설이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VIP (대통령)는 라디오 연설을 통해 국민과 충분히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소통’에 대한 대통령과 국민 간의 인식 차이를 낳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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