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간에 나도는 외교부에 대한 비판은 사실 좀 한쪽으로 치우친 감이 없지 않습니다. 첫째, 너무 채용 문제에만 치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채용 못지않게 일단 입부한 뒤 인사나 해외 연수 등에서도 외교관 자녀에 대한 특혜가 많습니다. 둘째, 전·현직 장관 아들·딸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현직 장관 자녀 이외에 여타 외교부 고위직들이 자기 자녀들을 위해 벌이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매우 많습니다.

가령 외무고시(외시) 2부가 최초로 실시된 1997년도에 입부한 외교관 자녀가 3명 있습니다. 당시 5명이 외시 2부로 들어왔는데, 무려 3명이 외교관 자녀였습니다. 그리고 3명 다 이후 외교부에서 일반 평민의 아들딸은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특혜를 받았습니다.

ⓒ뉴시스
연수만 다니는 사무관?

1997년도에 처음 실시된 외시 2부로 입부한 강 아무개 서기관은 과거 중남미 국가 대사를 역임한 분의 딸입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동기인 강 대사는 1997년에 이미 외교부 내에서 시니어 그룹에 속하던 사람입니다. 강 대사의 딸이 1997년도에 입부한 후 그녀의 동기들은 관례에 따라 대부분 1999년도에 해외연수를 떠났습니다. 그녀도 동기들과 마찬가지로 해외연수를 희망했으나, 2부는 해외연수를 보내주지 않는다는 방침이 있어서 해외연수를 가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그녀는 2년짜리 유학 휴직을 신청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해외연수가 아닌 유학 휴직만으로 2년을 보내주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원래 유학 휴직이라는 것은 공무원교육훈련법상 기관장의 재량에 따라 허용되는 것이긴 하나, 당시 외교부는 내부 방침상 이를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외교부에서는 잠재적으로 유학을 가고 싶어하는 직원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당시 일반 외시 1부 출신 직원들에게 2년짜리 유학 휴직은 허용되지 않고 있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강 서기관에게는 2년짜리 유학 휴직이 허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강씨가 유학 휴직을 다녀온 뒤에 발생했습니다. 그녀가 유학 휴직에서 복귀한 후 제도가 바뀌어서 2부 출신 직원도 해외연수를 보내주게 된 겁니다. 이에 강씨는 해외 연수를 다시 신청했고, 외교부는 이를 허용해 다시 2년짜리 해외 연수를 보내줬습니다.

ⓒ뉴시스신각수 외교부 1차관(오른쪽)이 9월10일 국회 외통위 전체회의에 참석해 특채 파문을 사과하고 있다.
당시 외교부 과장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정말 화를 많이 냈습니다. 세상에 연수만 다니는 사무관이 다 있느냐고요. 결국 연수를 두 번이나 갔다온 강씨는 외교부 직원에게 선망의 대상인 북미통상과를 거쳐 주유엔 대표부로 갔습니다. 통상 쪽에서 근무하던 사람이 유엔에 가는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만, 당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강씨를 통상교섭본부 대표선수로 인사위원회에 올려서 제일 좋은 곳 중 하나인 주유엔 대표부로 보내준 겁니다. 참고로, 김종훈 본부장은 연세대 경영학과 출신이고, 강씨도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부친 강 대사는 연세대 정외과를 나왔습니다. 일반 서민의 자식이 이런 일을 하려고 했다면 아마 욕만 잔뜩 먹고 뜻을 이루지도 못했을 겁니다.

특권층 자녀 특혜에 반발해 사직한 외교관들

손 아무개 서기관은 당시 아시아권 나라에 나간 현직 대사의 아들로 1997년 최초로 외시 2부가 실시되었던 해에 합격했지만, 3년간 2부 입부를 유예해두었다가 2000년도에 입부했습니다. 손 서기관 역시 2002년도에 자신의 동기들이 해외연수를 떠나던 때, 본인도 연수 나가기를 희망했습니다.

당시에는 2부 출신 직원들도 해외연수를 보내주는 것으로 방침이 바뀌어 있긴 했으나, 2부 출신 직원 중에 해외연수를 못 간 직원이 많아서 손 서기관이 해외연수를 갈 순서가 아니었던 데다가 중요한 것은 그가 미국 대학 로스쿨 입학을 원했기 때문에, 당시 로스쿨 금지령에 막혀서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외교부는 1998년에서 2000년 사이에 잠시 미국 로스쿨로 해외연수 가는 것을 허용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2000년도 이후 로스쿨에서 해외연수를 한 외교부 직원들이 다수 사직서를 제출하자 반기문 당시 차관의 지시에 따라 ‘로스쿨 금지령’이 내려졌으며, 이 금지령은 지금까지도 계속 유효한 외교부의 ‘불문율’입니다. 당시 손 서기관의 아버지가 백방으로 손을 써봤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특히 당시 이 아무개 차관보가 손 서기관 아버지의 부탁을 강하게 거절했지만, 그 후임인 이 아무개 차관보와 김 아무개 차관에게 다시 아들을 로스쿨에 보내달라고 요청합니다. 당시 손 대사가 차관한테 보낸 편지들을 차관이 인사과로 내려보내면 인사과 직윈들이 돌려보곤 했습니다. 아들한테 특혜를 달라고 차관한테 읍소한 이 서류들은 지금도 인사과 문서철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을 것입니다. 결국 현직 대사 아버지의 끈질긴 부탁에 못 이겨 손 서기관에게는 모든 외교관에게 금지된 미국 로스쿨에 무려 3년짜리 유학 휴직이 허용돼 2003년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게다가 당시 중앙인사위 규정상 원래 유학 휴직을 주려면 중앙인사위와 협의도 하고, 외교부 내 내부 경쟁 절차도 거치고, 외교부 인사위원회 심의도 거쳐야 했는데 아무런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외교부 간부 몇 명의 자체 판단으로 일방적으로 유학 휴직 발령을 내버렸습니다. 당시 인사과장 및 인사운영계장이 모두 나서서 강하게 반대했지만, 결국 소용이 없었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공부하겠다는데 유학 휴직 준 게 뭐 그리 대수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다른 서민의 자식도 모두 똑같은 기회를 줘야죠. 공정하지 못했습니다.

ⓒ연합뉴스외교부 특채 파문 직후 공청회를 열어 특채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고시생들.
결국 이 사태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손 서기관이 로스쿨 유학을 간 이듬해 1998년 외시 1부 시험을 거쳐 입부한 윤 아무개 서기관이 3년짜리 로스쿨 유학 신청을 냈습니다. 윤씨는 손씨와 같은 로스쿨(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입학 허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외교부 인사과는 윤 서기관에게는 손 서기관과 달리 로스쿨 3년 과정이 아니라 2년짜리 휴직을 허용해준 뒤 2년이 되자 윤 서기관한테 본부 귀임 발령을 내버렸습니다. 학업을 포기해야 했던 윤 서기관은 결국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사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2004년에는 외시 수석 합격자 박 아무개 서기관도 손 서기관의 전례에 따라 유학 휴직을 요청했습니다. 박 서기관은 미국의 명문대 로스쿨에 전액 장학생으로 선발되자 해외연수를 포기할 테니 손 대사 아들처럼 미국 로스쿨을 다닐 수 있게 유학 유직을 허용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외교부는 이 요청을 거부했고, 박 서기관도 이에 반발해 사표를 쓰고 나가버렸습니다. 만약 손 서기관한테 무리한 특혜를 주지 않았더라면 윤 서기관이나 박 서기관이 외교부를 박차고 나갔을까요? 외시 2부로 들어온 외교관 자녀에게 이런 식으로 무지막지한 혜택이 노골적으로 주어지는 것을 보면서 외교부의 젊은 직원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1997년도에 외시 2부 1회로 외교부에 들어온 외교관 자녀는 앞서 강·손 서기관 외에도 1명이 더 있습니다. 김 아무개 서기관인데 그의 아버지도 아들 사랑이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김 서기관도 혜택을 받았습니다.

장관 덕에 장관 수행비서에서 선망하는 공관으로

외교통상부 장관 수행비서는 요직 중 요직으로 통합니다. 일단 장관 수행비서를 하게 되면 좋은 공관으로 나가는 것은 떼놓은 당상이었죠. 하지만 인사과 차원에서 보면 그것은 상당히 부담되는 일입니다. 1년에 한 번씩 인사철만 되면 장관 수행비서를 위해서 주미국 대사관이나 주유엔 대표부에 자리를 하나씩 만들어놓아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결국 반기문 장관 때부터 원칙을 새로 세워서 장관 수행비서는 해외연수 나가기 직전인 사람들을 불러다 썼습니다. 장관 수행비서로 1년간 봉사하고 깨끗하게 해외연수를 가라는 뜻이었죠. 그렇게 되면 인사과로서도 부담이 줄어드니까요.

그런데 이 전통이 유명환 장관 때 와서 깨집니다. 유명환 장관이 공관에 나가기 직전이던 김씨를 데려다 수행비서를 시킨 겁니다. 김씨는 1997년 입부를 했기 때문에 이미 경력으로 봐도 장관 수행비서를 시킬 군번을 넘어섰습니다. 한마디로 김씨를 좋은 곳에 보내주기 위한 명분을 만들려고 무리한 거라고밖에 볼 수가 없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김씨는 장관 수행비서를 한 지 6개월 만에 역시 일반 직원들이 가고 싶어하는 선망의 대상지 대사관으로 발령을 받아 나갔습니다.

이것이 외시 2부가 최초로 실시된 1997년도에 외교부에 입부한 외교관 자녀 트리오의 경력입니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3명 다 하나같이 특혜로 점철될 수가 있습니까. 차제에 외교부가 진실로 거듭나고자 한다면 일단 과거의 지저분했던 일들을 모두 끌어내서 말끔히 탈탈 털고 가야 합니다. 양심선언부터 하고 뭐가 잘못된 것인지 다 고해성사하고 가야 합니다. 뭐가 잘못된 것인지 정확히 모른다면 어떻게 고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요즘 외교부 내부에서 나오는 말들을 보면 고해성사는커녕 오히려 변명뿐입니다. 그리고 조금 엎드려 있다 보면 파도가 지나가겠거니 하는 강 건너 불 구경식 생각뿐입니다. 이래 가지고는 아무것도 해결되는 일이 없을 겁니다. 지금까지 외교부가 인사를 이런 식으로 해왔습니다. 그러니 외교부 직원들이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이번에 유명환씨 딸 문제 터지고 나서 외교부 내부에서는 “올 것이 왔다”라고 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지금 외교부 과장급 이하 직원 중에 유명환씨 동정하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제가 “젊은 후배들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젊은 게 뭐냐. 정의감이 있어야지. 좀 젊은 사람들이라도 나서서 바른 말 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하면 젊은 직원들이 “제가 왜 그래야 돼요? 그러다가 불이익 받으면 저만 손해인데 뭐 하러 높으신 분들 아들딸 얘기를 제가 꺼내야 합니까”라고 답하더군요. 정말 절망을 느꼈습니다.

외교부는 이제 자정 능력을 상실했다고 생각합니다. 외부 세력에 의해 수술대에 올라야 하고 앞으로 외교부의 인사 관리도 외교관들에게 맡기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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