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가 진실로 부활코자 한다면 이제라도 과거 지저분했던 일들을 양심선언부터 하고, 뭐가 잘못된 것인지 다 고해성사를 해서 말끔히 털고 가야 한다.”

유명환 장관 딸의 특채 파문을 계기로 역대 외교부 수뇌부에 대한 의혹이 확대되자 외교부의 한 현직 서기관은 이렇게 토로했다. 이번 사태에 대해 외교부 내 대다수 젊은 사무관과 서기관은 자괴감을 금치 못하면서도 “올 것이 왔다”라는 반응이다. 외교부 국정감사를 앞두고 구조적·관행적인 전·현직 외교부 고위 공직자 자녀 특채 및 특혜 문제로까지 확대될 조짐을 보이자 해당 인사들이 변명하고 발뺌하는 모습을 보이는 데 대해서도 개탄하는 기류가 역력하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는 추석 전 ‘2010 국정감사 계획서’를 채택하면서 특채 연루 의혹 인사로 유명환·유종하·홍순영 등 전 외교부 장관 3명과 홍장희 전 스페인 대사 등 고위급 인사 9명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이들은 10월3일부터 시작하는 외교부 국감에서 청문회를 통해 의혹의 진위를 가려낼 대상이다. 이로써 유 전 장관 딸 특채 파동은 외교부 자체 조사, 행정안전부 감사, 국회 국정감사를 거치면서 계속 특권 사회의 실체를 드러내는 뇌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녀 특채 의혹을 받아 10월3일 국감 증인으로 채택된 유명환·유종하·홍순영 전 외교부 장관(왼쪽부터).
사태가 이렇게 전개되자 국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된 외교부 고위직 출신들은 행안부 감사 결과 특혜가 명백히 입증된 유명환 장관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며 반발하고 있다. 먼저 유종하 전 장관은 특혜의 온상으로 꼽히는 ‘외무고시 2부 시험’을 만든 장본인으로 지목된다. 외교부는 1997년에 외무고시 2부 시험을 도입했는데 ‘외국에서 정규 교육 과정 6년을 이수한 사람’만 응시할 수 있도록 자격을 제한해 ‘외교관 자녀를 위한 음서제도’라는 비난을 샀다. 유종하 장관 아들은 아버지가 장관직에서 물러난 직후인 1998년 이 제도를 통해 외교부에 들어가 근무하고 있다. 이런 의혹이 제기되고 국회에서 증인으로 채택되자 유 전 장관은 “2부 시험은 당시 행정자치부에서 만들었고, 나는 관련 법을 발의할 때 외교부가 아닌 청와대에 근무했다”라며 2부 시험 도입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강력히 부인했다. 

홍순영 전 장관은 차관 시절이던 1994년 외무고시 과목을 필수에서 선택으로 바꿔 자기 아들이 합격할 수 있도록 유리하게 변경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홍 전 장관의 아들은 외시 31회 출신으로 1997년부터 외교부에서 일하고 있다. 이에 대해 홍 전 장관은 “국가고시 문제인데 행자부가 결정한 일이지 차관이 마음대로 할 일이 아니다. 과목을 바꿨다는 것은 조직에 대한 모욕이고 나에 대한 모욕이다”라고 반발했다.

“전직 장관들 줄줄이 거짓말한다”

하지만 외교부의 현직 서기관과 사무관들은 유명환 장관 딸 특채 사건이 불거진 이후 전·현직 외교부 수뇌부의 대응 태도에 실망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견 외교관은 〈시사IN〉과의 전화통화에서 “유종하씨는 외시 2부 도입 때 장관이 아니어서 영향력이 없었다고 변명하지만, 그는 당시 막강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었고. 그 전에도 계속 외교부 고위 간부를 지내서 범공무원 사회에서도 영향력이 강한 TK 세력의 맹주로 꼽혔다”라고 지적했다.

외교부 본부에 근무하는 또 다른 현직 서기관은  “유종하 장관의 아들이 외무고시를 볼 때 시험을 돕기 위해 당시 인사기획관이었던 심 아무개 대사가 외시 성적이 좋은 젊은 사무관들을 모아서 예상 질의 답변서를 작성한 적도 있다”라고 말했다.

홍순영 전 장관의 해명에 대해서도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아들의 외무고시 응시를 앞두고 시험 과목을 바꿨다는 지적을 받는 홍순영씨는 “외시 시험 과목은 총무처 소관이라 차관이 바꿀 수 없다”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이에 대해 당시 총무처의 한 관계자는 “외무고시는 외교부에서 일할 사람을 뽑기 때문에 형식상 시험 대행을 총무처에서 할 뿐 시험 과목은 기본적으로 외교부와 상의하고, 외교부의 주문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결국 홍순영 차관 시절 시험 과목을 바꾸자는 의견을 총무처에서 먼저 꺼냈는지, 외교부에서 먼저 꺼냈는지는 당시 근무자들을 국감 증인으로 부르면 곧바로 드러나리라 보인다. 

외교부의 한 현직 서기관은 “지금 유종하·홍순영 두 전직 장관은 아들 문제에 대해 떳떳하게 나설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그 아들들이 어떤 특혜를 받아왔는지 똑똑히 보아온 사람이 너무도 많다”라고 말했다. 그는 추석 직전 외교부 내부의 개탄과 울분 분위기를 대변하겠다며 〈시사IN〉에 긴 수기를 보내왔다. 만신창이가 된 외교부에 진정한 개혁이 이뤄지기를 갈망하는 이 서기관의 수기를 요약해 싣는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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