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집계에 꼽히는 책들은 책을 많이 읽는 독자들에게는 별 영향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서정보 유통매체 리더스가이드(www.readersguide.co.kr)가 기성 베스트셀러 목록을 대상으로 검증을 벌였다. 과대 포장된 베스트셀러, 논쟁의 대상이 될 만한 책들이 속속 도마 위에 올랐다. 검증 대상은 국내 최대 서점 교보문고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재료로 재구성한 것이다. 2007년 1월부터 11월까지 베스트셀러에 대해 열혈 독자 65명의 의견을 물었다. 내친김에 대안 베스트 60을 내놓았다. 기존 베스트셀러 목록에 포함된 책도 있고, 새로 진입한 것도 있다(표 참조).

도서 포털 리더스가이드는, 2000년 설립된 (주)하다C&C의 사이트이다. 이곳의 독자들은 ‘알지(RG) 회원’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면서 정선된 책 리뷰를 선보인다. 이번 작업을 진행한 리더스가이드의 오승주씨는 “베스트셀러는 마케팅에 일정 부분 좌우되기 때문에 사고 나서 후회하는 실패율이 높지만, 대안 베스트는 독자가 읽고 만족스러운 작품을 추천한다. 일반 독자가 같은 독자에게 일독을 권하기 때문에 눈높이도 맞다. 베스트셀러는 아니지만 베스트 도서 자격이 있다는 인증인 셈이다”라고 말했다.

일단 교보문고 집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영어책이었다. 해커스 어학연구소에서 출판한 〈해커스 뉴토익 Reading〉이 판매량 선두를 달렸다. 100선에 오른 외국어 책은 영어책 8권, 일본어책 1권으로 모두 아홉 권이다. 판매 부수로 볼 때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은 어학 도서이지만, 순위 안에 가장 많이 이름을 올리는 분야는 경제와 경영서 분야이다. 100권 가운데 무려 31권이 경제·경영서이다. 정색한 경제·경영서가 아니다.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한즈미디어) 〈이기는 습관〉(쌤앤파커스) 〈마시멜로 이야기〉(한국경제신문) 등 재테크, 처세나 자기 계발서가 주류를 이룬다. 그에 못지않은 파괴력을 보인 것인 소설 분야이다. 23권이 진입했다. 특히 한국 소설의 약진이 눈부셨다. 9권이 이름을 올렸다. 〈남한산성〉(학고재) 〈바리데기〉(창비) 〈달콤한 나의 도시〉(문학과지성사) 〈친절한 복희씨〉(문학과지성사) 등이 주역이다.

이번 조사는 검증 항목이 별나다. 과연 베스트셀러인가. 이게 어떻게 베스트셀러인가. 그리고 당신이 베스트 도서로 꼽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

그 결과 과대 포장된 책, 일명 ‘실망 베스트’로 〈마시멜로 이야기〉 〈연금술사〉(문학동네) 〈커피프린스 1호점〉(삼성출판사) 따위가 꼽혔다. 특히 〈마시멜로 이야기〉는 논쟁의 베스트셀러로 불릴 만큼 평가가 크게 엇갈렸다. ‘유혹에 대한 인내와 그에 따른 보상의 관계를 잘 짚고, 계획적인 삶의 중요성을 우화 형식으로 거부감 없이 표현했다’는 상찬이 있는 반면, ‘구구절절 다 옳은 말이지만 그래서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언론에 의해 과대 포장되고 과대 홍보된 책’이라는 냉정한 평가가 호평을 압도했다. 파울료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도 과대 포장된 책으로 꼽혔다. ‘좋지 않은 책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좋게 본 책. 베스트셀러 관성의 법칙을 대표하는 책’이라는 야박한 평가를 받았다. ‘뻔한 사고에 뻔한 결말에 뻔한 문장이 지겨웠다’는 짜증 섞인 평가도 있었다. 

많이 팔린 것이 당연하고, 좋다는 반응을 끌어낸 책은 ‘당연 베스트셀러’ 목록에 드러난다. 옷을 갈아입은 피천득의 에세이 〈인연〉(샘터사)과 소설 〈향수〉(열린책들) 〈남한산성〉 〈바리데기〉 〈공중그네〉(은행나무) 등이 꼽혔다.

한편 베스트셀러 목록에 들어 있지 않으나 베스트셀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책으로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갈라파고스) 〈바람의 화원〉(밀리언하우스) 〈뿌리깊은 나무〉(밀리언하우스) 등이 꼽혔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기아의 현장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서, 어떤 이들이 부당한 이득을 취하며 그 구조가 어떻게 재생산되고 있는지 상세히 일러준다는 평을 얻었다. 정조의 암살 기도라는 가정을 중심에 놓고 당시 시대정신을 화공들의 이야기로 풀어낸 소설 〈바람의 화원〉은, ‘한국의 다빈치 코드. 우리도 이렇게 좋은 팩션을 쓸 수 있구나 하는 놀라움을 안겨주었다’는 칭찬을 들었다. 훈민정음 창제를 둘러싼 이야기를 미스터리 방식으로 풀어낸 〈뿌리깊은 나무〉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피천득 〈인연〉, 여전히 공감대 넓어

설문을 진행한 오승주씨는 열혈 독자일수록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좌우되지 않고, 오히려 책을 잘 읽지 않는 독자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분석했다. 심지어 열성 독자들은 베스트셀러 목록에 반감을 갖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응답자의 10%는 “베스트셀러는 아예 잠시 제쳐둔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번 분석에서 눈에 띄는 것은, 한국 사회의 화두가 될 만한 것을 잣대로 출판 경향을 평가해본 점이다. 이번에 잣대로 삼은 것은 신자유주의이다. 정면으로 신자유주의를 토픽으로 삼지 않더라도, 그런 세계관이나 경향이 드러난 책이 얼마나 되는지 분석해 내놓았다. 신자유주의를 감취진 키워드로 보고, 가치보다는 효율성을, 집단 해법보다는 개별 해법을, 실용주의 등을 대변하는 책을 이 범주에 넣었다. 분석에 따르면 베스트셀러 100권 가운데 45%가 신자유주의 키워드에 잠식되고 있다. 에세이와 처세·자기 계발, 재테크 서적은 물론이고 아동 도서에도 우려스러운 경향이 발견된다는 것. 그는 그 사례로 〈마법 천자문 시리즈〉(아울북)를 꼽았다.

그는 “그나마 신자유주의를 비판과 성찰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저항하는 장르는 인문·사회가 유일하지만 전체 베스트셀러 중에서 이 영역 비중이 4%에 불과할 정도로 몰락한 상황이다. 책을 통해 알게 모르게 신자유주의 가치관이 유포되고 있는 현실에 경고음을 울리고자 했다”라고 말했다.

 
열혈 독자가 뽑은 대안 베스트 60

〈12번째 카드〉〈88만원 세대〉〈검은 꽃〉〈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쥬〉〈굿바이 게으름〉〈그 숲에는 거북이가 없다〉〈기다림〉〈나 제왕의 생애〉〈나, 그리고 그 밖의 것들〉〈남극산책〉〈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노름마치〉〈눈물 1,2〉〈대화〉〈도쿄 밴드왜건〉〈독서가 행복한 회사〉 〈딥스〉 〈라일락 피면〉〈만들어진 신〉〈면장선거〉〈무진기행〉〈미스터 에버릿의 비밀〉〈바람의 화원1,2〉〈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별사〉〈부모로 산다는 것〉〈빵점맞은 날〉〈뿌리깊은 나무1,2〉〈사람의 아들 붓다1,2〉〈사랑해 사랑해〉〈사조영웅전〉〈생존자〉〈세 바퀴로 가는 과학자전거〉〈소금꽃나무〉〈소유 상/하〉〈시체를 부위별로 팝니다〉〈시친의 지구연대기1,2〉〈신조협려〉〈아웃1,2〉〈아틀라스 세계는 지금〉〈아틀라스 중국사〉 〈알도와 떠도는 사원〉 〈완전한 진리〉〈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위대한 캣츠비〉 〈의천도룡기〉 〈인간과 동물〉 〈인생〉〈작은 책방〉〈제비를 기르다〉〈졸업〉〈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철들지 않는다는 것〉〈친절한 복희씨〉〈테메레르〉〈플루타르크영웅전〉〈하루15분 책 읽어주기의 힘〉 〈한눈에 반한 우리미술관〉〈한순간 바람이 되어라〉 (가나다순)

기자명 노순동 기자 다른기사 보기 lazys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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