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가 ‘고려대학(學)’ 강의를 신설하면서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의 친일 등 ‘민족고대’의 부끄러운 역사도 가르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고려대가 이명박 대통령의 모교라는 점 때문에 일부 누리꾼 사이에는 ‘가카’ 치적도 가르치느냐는 비아냥마저 나오고 있다. 

‘고려대학’은 오는 8월30일 첫선을 보인다. 1학점(주당 1시간) 선택교양 과목으로 매주 월요일 1교시에 강의가 있다. 우선 신입생을 대상으로 시범 운영한 뒤 내년께 전 학년을 대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평가는 이수 또는 미이수(pass or fail)로 처리된다. 현재 교무처 교양교육원이 강의 준비를 전담하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커리큘럼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고려대 교무처 교양교육원 관계자는 “처음 시도하는 강의라서 자칫 외부에 부정적으로 비춰질까 조심스럽다. ‘고려대학’이란 강의명도 변경될 수 있다”라며 말을 아꼈다.  

고려대학 개설을 진두 지휘한 이기수 고려대 총장. 이 총장은 강사진에 포함되어 고려대학을 직접 가르친다.
고려대학 개설은 지난 5월 이미 학보인 ‘고대신문’에 실린 바 있다. ‘고려대 배우고 학점도 따고’라는 기사에서 교양교육원 학사지원부 양희준 과장은 “학교를 보는 안목을 넓히고 세계화와 개방화에 맞는 인재로 거듭나는 데 도움이 될 과목”이라고 소개했다. 이때만 해도 학내에서조차 논란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뒤늦게 언론에 과목 개설이 알려지면서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강사진은 일부 선임됐다. 이기수 총장도 직접 강단에 선다. 이외에도 홍일식 전 총장, 한국사학과 일부 교수들이 공동으로 강의를 맡기로 했다. 강의에 참여하는 조광 한국사학과 교수는 “민족정신을 중시하면서도 기본적으로는 휴머니즘에 기초한 ‘고대정신’을 가르치겠다”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고대가 지향하는 가치를 비롯해 신입생에게 모교에 대한 소속감과 사랑을 강화시키겠다”라고 말했다. 

강의를 맡은 정태헌 한국사학과 교수도 “이전에도 교양과목으로 ‘한국대학 역사와 고려대’를 신설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고려대 역사의 전체 흐름과 근현대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가르쳐 학생들이 자부심을 느끼고, 사회적인 의미도 알게 하려는 것이다. 비판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과목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고려대 특유의 ‘애교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만큼 ‘학벌 사회’와 ‘패거리 문화’를 조장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학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고대 마피아’라는 말처럼 고려대는 선후배 사이가 남다른데다, 고려대 출신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를 빗대 ‘고소영 인사’라는 신조어가 나올 만큼 고려대학 강의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은 따갑다.  

게다가 친일인명사전에도 오른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의 친일 행적을 있는 그대로 강의할지도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인촌 김성수의 친일 논란은 고려대에서는 ‘뜨거운 감자’이자 ‘성역’이다. 지난 1989년 학내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고려대생들은 친일파 김성수를 기릴 수 없다며 본관 앞에 있는 인촌 김성수 동상에 검은천을 씌우고 밧줄을 매달아 철거를 시도했다. 당시 이철승 고려대교우회 고문 등 백발이 성성한 교우회 200여명의 ‘노선배’들이 육탄으로 막았다. 이들은 재학생들을 향해 ‘민족지도자 김성수를 친일파로 모는 건 빨갱이’라고 나무랐다. 

ⓒ시사IN 자료고려대 본관 앞에 있는 인촌 김성수 동상(위). 지난 1989년 학내 민주화 투쟁 당시 학생들이 김성수 동상에 검은천을 씌우고 밧줄을 매달았다(아래)
하지만 지난해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인촌의 친일 행적은 또렷하다. 인촌은 1937년 7월 중일전쟁의 의미를 널리 확산시키기 위해 마련된 경성방송국의 라디오 시국강좌를 했고, 같은 해 8월 경성군사후원연맹에 국방헌금 1000원을 헌납했다.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이사(1938년)·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참사(1939년)·조선방송협회 평의원과 조선사회사업협회 평의원(1941년) 등을 지냈고 특히 1943년 8월5일자 매일신보에 〈문약의 고질을 버리고 상무기풍을 조장하라〉는 징병격려문을 기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려대학’ 개설 취지를 보더라도 이같은 인촌의 친일 행적은 눈감고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우려 탓인지 지난 3일엔 강의를 맡기로 한 한 교수가 “고려대를 종교로 만들려는 데 납득할 수 없다”며 강의진에서 스스로 물러나기도 했다. 고려대 사회학과 한 교수도 “모교를 아는 것은 중요하지만 (강의의) 구성이나 내용이 고대를 지나치게 확대하는, 고대 중심주의적인 경향이 있다. 고대인 자신에 대한 성찰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일부 교수의 반발이 있기는 하지만 교수의회 차원에서는 아직 공론화하지는 않고 있다. 

총학생회는 논란이 일자 대학 쪽과 면담을 가졌다. 전지원 총학생회장은 “세뇌를 통해 학교에 순종하는 학생들을 양성하는 수업이라면 옳지 않고 불필요하다. 다만 4·18처럼 불의에 항거하고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고대정신을 되살리는 수업이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개설부터 논란의 여지가 있는 과목인 만큼 학교 측과 여러 차례 면담을 계속하면서 커리큘럼에 학생들 의견이 반영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강의 개설을 바라보는 학생들 의견은 엇갈렸다. 재학생 홍아무개씨(경제학과)는 “한국사회에서 고려대가 특정 소수만 들어올 수 있는 학벌주의의 온상이지 않나. 그동안 이어져온 문화와 정신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이를 가르치는 것 자체가 이미 학벌주의를 재생산한다”라고 비판했다. 미디어학부 4학년 이아무개씨 역시 “구식이고 유치한 발상이다. 학생들이 바보도 아니고 정말 강의를 통해 애교심이 생길 거라 생각하는지 의문이다”라고 비판했다. 고려대 온라인 커뮤니티인 고파스에는 ‘필수과목 지정도 아니라는데 싸늘할 것까지 있느냐’, ‘만일 토론식에 학교를 비판할 수도 있는 수업이라면 들어보고 싶다’, ‘혹여 그분이 가지고 있는 비전을 주입식으로 교육하는 장이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는 다양한 반응이 올라왔다. 

수업의 필요성이나 취지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생명과학부에 재학 중인 김아무개씨(23)는 “학생들이 학교에 대해 관심이 없고 자세히 알 기회도 없다. 그런 점에선 필요한 과목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국어교육과 재학생 최희진씨(21)도 “연륜이 있고 학교에 오래 계셔서 애정을 갖고 있는 분이 충실하게 가르쳐주신다면 괜찮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고려대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과 천신일 고려대 교우회장(오른쪽)
고려대 강의가 구설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번 고려대학 강의 강사진에 포함된 홍일식 총장 재직 때인 지난 1995년 고려대는 ‘신명심보감(동양의 지혜)’ 과목을 교양필수로 개설해 논란이 일었다. 당시 ‘지존파 사건’이나 ‘온보현 사건’등이 잇따르자 홍 총장이 인간성이 상실됐다며 전격 명심보감을 교양필수로 신설한 것이다. 당시 고려대학교 교수협의회는 ‘신명심보감이 내포하고 있는 봉건제적 군주이념이 민주주의 헌법과 고대 학칙에 위배된다’라며 반발하기도 했다. 이런 반발에도 신명심보감은 1995년부터 교양필수 과목이 됐고 그 뒤 4년 만에 홍 총장이 물러나자 폐지된 바 있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려한 고려대 한 관계자는 “고려대학도 신명심보감처럼 총장이 바뀌면 사라질 과목이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전혜원 인턴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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