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이주여성의 가정폭력 실상이 처음으로 알려진 건 2007년 ‘후안마이’ 사건이었다. 2007년 5월부터 충남 천안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지 두 달째, 후안마이의 남편 장 아무개씨는 집을 떠나 베트남으로 돌아가려던 그녀의 옷을 모두 벗기고 가슴과 복부를 차 늑골 18개를 부러뜨렸다. 신부는 즉사했다.

천안에서 일용직을 전전하던 장씨는 생활정보지를 보고 국제결혼정보업체를 알게 됐다. 경찰 조사에서 장씨는 ‘나이 먹은 남자가 혼자 있으니 부끄럽고 남들이 병신같이 볼 것이라고 생각해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어린 시절부터 가난했던 그가 전 재산인 1000만원을 들여 데려온 베트남 신부가 후안마이 씨였다. 그는 술만 마시면 공격적으로 변했다. 사건 당일인 2007년 6월26일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남편은 후안마이 씨가 가방과 여권을 들고 있는 걸 보고 폭행을 시작했다.

사건 전날 그녀는 남편에게 베트남어로 편지를 남겼다. “당신은 아세요?”란 문장이 많이 들어간 편지에는, “저는 당신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당신은 왜 제가 한국말을 공부하러 못 가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중략) 당신은 저와 결혼했지만, 저는 당신이 좋으면 고르고 싫으면 고르지 않을 많은 여자들 중에 함께 서 있었던 사람이었으니까요”라고 적혀 있었다.
 

대전고등법원은 당시 판결문에서 “피고인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미숙함의 한 발로일 뿐이다. 노총각들의 결혼 대책으로 우리보다 경제적 여건이 높지 않을 수도 있는 타국 여성들을 마치 물건 수입하듯이 취급하고 있는 인성의 메마름이 비정한 파국의 씨앗을 필연적으로 품고 있는 것이다”라고 적시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당시 임홍재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는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장들에게 편지를 썼다. “이주해온 베트남 여성들을 보다 더 따뜻한 마음으로 보호해주시고 불법적인 현수막(국제결혼 광고)은 지속적으로 단속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후안마이 씨의 죽음 이후 이주여성긴급전화센터가 설치되고 국제결혼중개업체를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전환했지만 지난 7월8일 일어난 탓티황옥 씨 살해 사건을 막지 못했다.

2008년 3월7일, 결혼해 한국에 온 지 일주일 만에 경북 경산시 아파트 14층에서 몸을 던진 베트남 여성 쩐타인란 씨의 경우, 일부에선 여전히 타살설을 제기한다. 이번에 숨진 탓티황옥 씨와 같은 고향인 껀터에서 온 쩐타인란 씨는 특히 시어머니와 심한 갈등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는 사람도 없이 감금 비슷한 생활이 일주일간 지속됐다. 경산이주노동자센터 김헌주 소장은 “시댁은 그녀가 죽은 지 3일 만에 화장을 했다. 자살로 잠정 결정 났지만 동기에는 의문이 남는다”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지난 3월 껀터에 다녀왔다. 쩐타인란 씨의 어머니 후안킴아인 씨는 아들이 택시운전을 해서 부양하고 있다. 딸의 죽음 전이나 후나 가난은 여전하다.

1년 뒤에야 고향 찾은 유골

2007년 3월 대구 달성군에 살던 베트남 여성 레티김동 씨(22)는 집에서 탈출하려고 커튼으로 만든 밧줄을 타고 내려오다 추락사했다. 집은 비어 있었다. 그녀의 유골은 남편의 반대로, 1년 후에야 베트남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주여성들은 목숨을 잃은 뒤에야 그 사정이 외부로 알려진다. 신체적·정신적 폭력에 못 이겨 자살 직전까지 몰리는 사례들은 파악조차 힘들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2008년 펴낸 결혼이주여성 인권백서 〈적응과 폭력 사이에서〉를 보면 갖가지 폭력의 양태가 나온다. 중개업체가 불법으로 서류를 도용해 원하지 않는 남자와 혼인신고를 하고 강제로 결혼생활을 하게 한다거나 강제 낙태를 시키는 등 불법이 만연하다. 이주여성 잔혹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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