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효 교수(부산대·지구과학교육과)가 기상청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것은 6월 중순. 통화 내용은 간단했다. 최근 국내 방송이 중국 학자들의 말을 인용해 ‘2014~2015년에 백두산이 폭발한다’고 보도했는데 그 근거를 설명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며칠 뒤 윤 교수는 기상청을 방문해 관련자들에게 백두산이 요즘 화산학적으로 어떤 상태이며, 그 화산이 언제쯤 폭발할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설명했다.

문제는 며칠 뒤 불거졌다. 세미나에 참석하지 않은 기자들이 다른 기사를 ‘베껴 쓰는’ 과정에서 마치 윤 교수가 ‘2014~2015년에 백두산이 폭발한다’고 말한 듯이 보도한 것. 이후 그 기사들에 백두산 대폭발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드러낸 댓글이 붙었고, 내용을 비교적 잘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연구비를 타내려고 폭발 위험을 부풀렸다’는 오해성 비난이 나왔다.

부산대 연구실에서 만난 윤성효 교수는 답답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는 “오해도 이런 오해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럴 만도 했다. 백두산 폭발이 언제 일어날지 모른다는 뜻에서 ‘2014~2015년 폭발설’에 대해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백두산이 화산 활동을 시작해 이제는 잠재적으로 언제든지 폭발할 위험이 있다”라고 말한 내용이 ‘2014~2015년 백두산이 폭발한다’고 알려졌으니 억울할밖에.

ⓒ시사IN 자료일부 화산·지진 연구자들은 백두산 밑에서 이미 마그마가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추정한다. 10세기 때처럼 백두산이 폭발하면 20억t의 천지 물이 엄청난 재앙을 몰고 온다.

그동안 그의 주장은 한결같았다. 백두산 지하 5~35km에 커다란 마그마 방 4개가 존재하고, 그 마그마들이 언제 어떻게 칼데라(천지)를 통해 폭발할지 모르니 대비하자는 것. 근거가 있었다. 그가 중국에서 연구할 때 입수한 중국 국가지진국 지구물리학연구소 ‘저널’에 실린 그림 자료(오른쪽 그림)였다. 이 자료에 따르면, 백두산 밑에는 수십~수백㎦에 달하는 마그마 방이 4개 층으로 나뉘어 존재한다.

그 사실은 국가지진국이 지진파를 이용해 유추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 교수에 따르면, 국가지진국은 백두산 인근 장바이(江白)에서 인공 지진을 발생시킨 뒤 백두산 밑을 통과하는 지진파를 분석했다. 그 결과 다른 지역의 지진파 속도는 거의 일정한데, 백두산 천지 밑에서는 속도가 상당히 떨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마그마 방의 존재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마그마 방이 고체 형태인지 액체 형태인지는 알 수 없었다(마그마가 뜨거울수록 폭발 위험이 크다. 윤 교수는 요즘 백두산에서 일어나는 여러 화산성 현상을 근거로 마그마 방이 액체 상태일 것으로 추정한다).  

“백두산 밑에 마그마 300㎦나 있다”

마그마 방의 존재 가능성을 높이는 자료는 또 있다. 바로 백두산의 ‘이력’이다. 백두산이 예전에 폭발했는지, 폭발했다면 어느 정도 규모였는지를 알면 백두산의 현재와 미래 상태를 대강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 백두산 이력에는 10세기께 대폭발이 있다. 최근 〈백두산 대폭발의 비밀〉(사이언스북스)을 펴낸 소원주 박사의 추정치에 따르면, 당시 백두산 폭발로 인해 발생한 테프라(화산 폭발 시 방출되어 지표에 퇴적한 쇄설물) 총량은 100㎦ 이상이었다.


이는 지난 4월 중순 유럽에 항공대란을 일으킨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 때 분출된 테프라 총량(0.1㎦)의 1000배로 남한 전 지역을 무려 1m 높이로 덮을 수 있는 양이다. 게다가 당시 백두산의 마그마 방은 마그마를 10분의 1밖에 분출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소 박사는 “백두산의 이력만 놓고 보면 현재 백두산 밑에 300㎦나 되는 어마어마한 마그마가 존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라고 말한다.

윤 교수가 중국에서 입수한 국가지진국의 〈백두산에서 발생한 화산성 지진의 진앙 분포도〉(아래 그림)를 보면 백두산 마그마가 이미 활동을 개시했음을 알 수 있다(진앙은 지표면의 지진 발생지를 뜻한다. 반면, 땅속 지진 발생지는 진원이라 한다). 즉 2002~ 2008년에 발생한 화산성 지진의 90% 이상이 천지 칼데라 호수 밑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는 백두산의 마그마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1999년 이전에는 백두산의 화산 활동이 감지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데 2002년 6월 중국 옌지(延吉) 북동쪽 왕청 현에서 7.3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 뒤 상황이 급변했다. 화산이 활동하면 나타나는 미소(微小) 지진이 급증하고, 지하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스 중 헬륨 양이 10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헬륨 양이 늘면 폭발 위험이 커진다). 심지어 화산 주변 지표가 10cm 이상 부풀어 오르는 모습이 관측되기도 했다. “지진이 마그마 방을 흔들어놓았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윤 교수는 추정했다.

그렇다면 유라시아판 밑으로 파고든다는 태평양판은 백두산 폭발과 관계가 없을까. 윤 교수는 가능성이 낮다고 믿는다. 태평양판이 파고들어도 두만강 동쪽까지밖에 영향을 못 미치는 데다, 태평양판이 무겁고 차가워 열을 발생할 확률이 적기 때문이다. 게다가 백두산 화산암에는 암석 화학적으로 해양판인 태평양판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전혀 없다. 그러나 윤 교수는 “일본·중국 학자들 사이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라며 여지를 남겼다.

윤 교수의 이 같은 여러 주장에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지진 연구자 홍태경 교수(연세대·지구시스템학과)는 태평양판이 백두산 폭발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지구 내부를 영상화하면 이미 태평양판은 지하 600km에서 (유라시아판의) 한반도 최북단 두만강 지역을 지나 베이징까지 파고들어와 있다. 문제는 그 판이 지금도 연간 9~10cm 속도로 빠르게 이동 중이라는 점이다. “판의 움직임이 빨라 백두산 아래 마그마를 더 뜨겁게 달굴 확률이 꽤 높다”라고 홍 교수는 말한다. 

백두산 폭발하면 엄청난 항공 대란 발생

홍 교수는 백두산 밑에 마그마 방이 4개 존재한다는 추론에도 이의를 제기한다. 그 이유를 그는 “지진파나 지진 발생 분포도를 보고 파악할 수 있는 사실은 마그마가 충전되는 상황뿐이다”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과학적으로 중대한 발견이므로, 당연히 〈네이처〉나 〈사이언스〉 등에 먼저 발표해 검증 받아야 마땅하단다. 이 같은 문제 제기에 대해 윤 교수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중국이 자료를 내놓지 않고, 백두산 조사도 막고 있는 상황에서는 추론을 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자신이 백두산을 수없이 드나들고, 어렵사리 중국에서 입수한 자료로는 그 정도 결론밖에 얻을 수 없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두 교수는 ‘백두산이 폭발하면 엄청난 재앙이 일어난다’는 추론에 대해서는 의견이 비슷하다. 천지가 20억t의 물을 지니고 있는 데다, 10세기 폭발 규모와 비슷하거나 더 강력한 폭발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믿는 것이다.

과연, 천지가 폭발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먼저, 마그마가 지하 압력에서 해방되면 천지 물을 만나 잘게 부서져 엄청난 화산재가 발생한다. 그 화산재는 수증기로 변한 천지 물과 함께 엄청난 속도로 솟구친다(10세기 분화 때는 그 폭발 기둥이 25km까지 치솟았다).

이후 화산재는 10세기에 그랬던 것처럼 편서풍을 타고 중국 동북부와 동해·일본 등지로 날아간다. 그 여파는 자못 심각하다. 항공 대란이 일어나고, 태양 복사를 차단해 많은 농작물이 냉해를 입을 것이다. 곡식이 줄면서 기근이 일어나고, 그 여파로 사회·경제적 혼란이 발생할 수도 있다. 혹여 북풍이 불면 화산재가 한반도 이남까지 내려와 반도체·자동차 공장의 미세 공정에까지 피해를 줄 수 있다.  

천지에서도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 남은 천지 물이 쓰나미를 일으켜 주변 산봉우리들을 무너뜨리거나, 그 무너진 틈으로 화쇄류가 쏟아져 내린다. 800℃ 이상의 화산재와 부석으로 구성된 화쇄류는 태풍 같은 속력으로 산의 사면을 질주하면서 인간과 가옥 그리고 삼림이나 농지를 태우거나 뒤덮어버릴 것이다.

현대 과학기술로 이같이 끔찍한 피해를 줄이는 방법은 단 하나, 폭발에 앞서 예측하고 대피하는 길뿐이다. 그 확률을 높이려면 지금부터라도 백두산 화산 연구를 꼼꼼히 해나가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갑갑하다. 중국 쪽은 동북공정의 일환인지 백두산 조사 길을 좀처럼 내주지 않고 있고, 북한 쪽은 ‘냉전 중’이라 노크조차 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래서 지진·화산 학자들은 정부가 나서서 북한·중국과 공동 연구 등을 추진해주기를 기대한다. 언제 있을지 모를 백두산 폭발이 학자들의 숙제만이 아니라, 정부의 숙제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기자명 오윤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nom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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