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6월25일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전시작통권 환수 연기 방침’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주한미군 철수를 통보한 1977년 3월9일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그로부터 6일 후인 3월15일, 주한미군 철수대책과 관련한 정부·여당 연석회의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국민들이 미군이 간다고 불안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일제 때 압제를 받았고 6·25 후 미국의 정치·문화·제도가 들어와 국민들 사고방식 저변에는 미국의 생활습관이 물들어 있어요. 이제 우리는 이와 같은 것을 정리할 때도 되었습니다. 언젠가는 진통을 겪더라도 이것을 뿌리 뽑으려던 참인데, 마침 미군 철수를 계기로 순리에 따라 그것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략) 물론 미군이 있으면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학생에게 가정교사가 있으면 든든하겠지만 어디 가정교사가 학생 대신 시험을 치러주겠습니까. 이제 우리도 체통을 세울 때가 되었습니다. 60만 대군을 가진 우리가 미군 4만에 의존한다면 무엇보다 창피한 일입니다. 이제 우리의 자주국방력도 이만큼 컸고 지금이라도 전쟁을 하면 승산이 있는데 굳이 미군이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그리고 석 달 뒤인 6월19일 박 대통령은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국군의 정신전력과 전투력이 막강합니다. 우리 국군에게 고마운 점이 있습니다. 미군과 30년을 함께 생활해왔는데 히피도 없고 마약도 피우지 않는 것을 보면 더욱 고마운 일입니다. 김일성이가 내려와도 저지할 수 있습니다.”

10년의 세월이 흘러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또 한 명의 군 출신 정치인 노태우 민정당 후보는 ‘작전권 환수’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리고 집권한 그는 1988년 남북 화해와 협력을 표방한 역사적인 7·7 선언을 발표한 바로 그날에 우리나라 국방을 근원적으로 쇄신하기 위한 중요한 정책을 발표했다.

노태우, 전시작통권 환수에 매진

“우리 군은 1970년대 중반 이후 자주국방을 위한 노력을 집중하여 많은 발전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금년이 창군 40주년이 되는 해인데도 아직도 과거 대외의존적 국방시대의 유산들이 많이 산견(散見)되고 있다. 예를 들면 현대전에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다양한 전투기능의 균형된 발전이 저해되어 독립국가 군대로서 독자적인 전쟁수행 능력 자체가 제한되고 있지 않나 우려된다. 또한 정보 및 조기경보 능력의 부족, 육·해·공군 간의 불균형, 보병전 위주의 지상전력, 방위기능 위주의 전략 등의 문제는 우리의 안보상황, 특히 주한미군의 역할이 불확실해져간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심각하고 진지하게 검토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평화를 확보하고 전쟁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제2창군에 버금가는 자세로 군의 체질적 혁신을 통한 자주국방의 자주적 억제력 확보가 필수적임을 강조하며, 참된 억제력을 위해서는 방패의 두꺼움보다 칼날의 날카로움이 더욱 귀중하다는 것을 인식하여야 한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다시 한번 이를 촉구한다. “2000년대 민족자존 통일번영의 새 시대를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자주국방 태세를 확보할 수 있는 전략개념과 3군 합동 차원의 작전운용 및 군사력 건설을 재강조하고, 제2창군에 임하는 참신한 마음으로 민족사적 대과업을 완수할 수 있는 새 국군을 건설하기 위해 육·해·공군의 최정예 인원을 결집하여 한시적인 국방태세 발전연구위원회를 구성하라.”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과 김종휘 외교안보수석이 회고한 바에 따르면 육군 장군들은 국방 자주화에 대한 대통령의 지시에 저항했다. 무엇보다 “미군이 서울에서 나가면 다 망하는 줄로 알고 있더라”며 대통령 지시에 미온적으로 응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노태우 대통령의 강력한 지시로 한국은 1991년 11월 열린 제23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에서 “평시작전통제권을 1993~1995년 기간 중 환수한다”라고 미국과 합의했다. 그리고 이듬해 1월28일 국방부 연두순시에서 노 대통령은 작통권 환수에 미온적이던 국방부를 질타하며 거듭 작통권 환수를 재촉하는 발언을 했다. 

“우리의 자주적 방위역량과 태세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의 기본 바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금년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에서는 평시작전통제권을 1993~1995년 중 환수하도록 한 합의를 구체화하여, 최단 시일 내 찾아올 수 있도록 협의해야 합니다. 가급적 1993년 초에 환수하는 것이 바람직할 듯한데, 잘 검토해보기 바랍니다.”

노태우 대통령의 평시작통권 환수 결정은 장차 전시작통권 환수를 위한 중간 과정이었다. 역시 노 대통령 지시로 한국은 이미 1990년 한·미 군사위원회에서 “평시작통권은 1993년에, 전시작통권은 1995년에 환수하자”라고 미국에 공식으로 제안한 터였다. 6공화국의 이러한 노력으로 평시작통권은 1994년에 미국으로부터 환수되었다. 당연히 이것을 전시작통권 환수를 위한 준비 과정으로 이해한 언론은 이를 환영하면서 “조속한 시일 내에 전시작통권도 환수하라”고 촉구했다. 특히 한·미 연례안보협의회가 열리던 1994년 10월7일 조선일보는 “평시작통권 환수는 (전시작통권 환수를 위한) 실험적 의미를 갖는 것이지만, 이로써 우리 군이 자주적인 국방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는 매우 크다.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전시작통권까지 환수하는 것이 다음의 과제이다”라고 주장했다.

MB 정부, 국방 개혁도 지지부진

그리고 두 번 정권 교체를 거쳐 등장한 참여정부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총 16번에 걸쳐 자주국방과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해 공식으로 발표했다. 그중에서도 미국과 전작권 전환 시기 합의를 앞둔 2006년 6월16일에 전군주요지휘관들을 만났을 때 노 대통령의 철학이 나왔다. 인류의 역사는 민주주의 발전으로 진보하고 전쟁은 이러한 진보의 방향에 부합되지 않는 문제 해결 방식이다. 이제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침공하여 장기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불가능한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반면 아직도 대통령은 북한으로부터 도발이 있을 수 있다고 믿는 쪽에 속하며 이에 대해 대비한다. 그런 가운데 앞으로 새로운 평화질서를 준비하면서 안보를 챙기겠다는 것이다.

ⓒ청와대
6월26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위)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은 전시작통권 전환 시기를 3년 7개월 늦추기로 합의했다.

더 위험한 것은 전략의 부재다. 이 대목에서 노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길이 없는 비전은 비전이 아닙니다. 내가 갈 길이 없는 길은 길이 아닙니다. 그건 예측일 뿐입니다. 예측! 거기에 내가 갈 길을 내는 것이 전략 아니겠습니까? 내가 갈 길을 만들어서 우리의 미래를 전망하는 것, 의지가 실려야 나는 비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중략) 한마디로, 남한테 의지해서 우리 미래를 맡기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임진왜란 때도 역시 명나라 군대가 작전통제권을 가지고 우리나라 장수들 데려다가 볼기치기까지 하고 임금까지 바꾸어버리겠다고 했습니다. 남한테 의지하면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이지요. (중략) 군을 자주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그만큼 뒤에 우리에게 부담이 커지고, 지금 투자하는 것은 다른 어떤 투자보다 효율적인 투자가 될 것입니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 시대에 와서 완성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의 프로세스는 지난 30년간 한국 국방 정신사의 기축인 자주에 대한 강한 갈증과 함께 우리 스스로 한반도 정세를 주도하겠다는 결의의 상징이었다. 이는 군 개혁이라는 군의 자기혁신운동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이 전체가 전복되고 총체적으로 파산되는 퇴행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전작권 전환도 미루어지지만 국방 개혁도 동반 추락하는 것이 그것이다.

6월26일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전시작통권 전환 시기를 2015년 12월로 3년 7개월 연기하는 데 합의했다. 이 합의는 이미 확보한 주권을 또다시 내어주는 한국전쟁 이래로 가장 이례적인 합의였다. “한국의 요청을 오바마 대통령이 수락해준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라는 굴욕적인 언사가 등장한 것도 이승만 대통령이 전쟁 당시 맥아더 장군에게 작전권을 이양하던 분위기와 아주 비슷하다. 이 말은 앞으로 한·미 국방당국 간 협상에서 미국에 강력한 협상의 이니셔티브(주도권)를 부여함으로써 한국에 불리한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그 다음 날까지 계속 이어진 청와대의 언급은 더욱더 놀랍다. “우리 군이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고, 역량이 미흡해서” 불가피하게 전환 시기를 연기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이렇게 군의 역량을 비하한 것을 박정희·노태우 대통령이 들었다면 탄식할 일이다. 세계 7위권 군사강국의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내뱉은 말이다.

영관장교들, 훈련통제권 이양에 반발

한·미 정상이 합의하기 이전인 지난 5월에는 우리가 3년째 주도하던 을지훈련을 내년부터는 다시 미국이 주도하는 것으로 방침을 변경했다. 이 시기에 이미 전작권 전환 연기가 결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미 확보한 연합훈련 통제권을 미국에 다시 넘겨준다는 결정에 합참의 젊은 장교들은 경악하며 그 부당성을 역설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청와대에서 안보 자문위원을 만난 이 대통령도 이러한 군의 여론을 의식했는지 “우리가 충분한 능력이 있는데 왜 훈련 통제권을 넘겨주는지 영관장교들이 섭섭해하는 것 같다”라며 깊은 관심을 표시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더 이상의 고려 없이 전격적으로 연기를 결정했다. 자주를 외치고도 30년 넘게 재수 생활을 하는 한국군이 성인식도 못 이룬 군대로 계속 더 남겠다는 발상일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결정을 하는 데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일체의 긍정적 전망이 배제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작권은 군사적 의미도 있겠으나 거시적인 한반도의 새 질서에 대한 전망 속에서 전환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김태효 대외전략 비서관이 밀사로 미국에 파견되어 전작권 전환을 협의하면서 미국이 추진하는 미사일방어(MD)에 대한 급격한 접근, 아프간 파병 등 미국의 안보전략에 통합되는 사실상 밀약의 분위기 속에서 이번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이는 더욱더 군사력에 의존한 안보행보 속에서 미국에 또다시 주도권을 내어주는 ‘뒷거래’라는 국민적 의혹으로 발전할 소지마저 있다.

기자명 김종대 (〈D&D 포커스〉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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