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도 사랑을 한다. 당연하지만 선뜻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이 사실을 대중에게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것은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연극·문학 같은 문화 콘텐츠의 몫이다. 처음에는 ‘전투하듯’ 알려야 했다. 70대 노인 커플의 정사 장면을 배경음악과 은은한 조명도 없이 날것으로 담은 영화 〈죽어도 좋아〉(감독 박진표, 2002)가 그러했다.
이제는 많이 여유로워졌다. 노인의 사랑은 더 이상 ‘충격 고백’ 거리가 아니다. 웬만한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는 ‘황혼의 로맨스’가 약방의 감초처럼 꼭 하나씩 등장한다. MBC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이순재-김자옥 커플은 노인의 사랑도 젊은이들의 그것처럼 풋풋하고 정열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2008년 KBS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서는 황혼 커플 충복(이순재 분)과 영순(전양자 분)이 입술에 ‘쪽’ 하고 뽀뽀를 하더니 2년 후 만들어진 MBC 드라마 〈나는 별일 없이 산다〉에서는 70대 노인이 연인과 제대로 입술을 포갰다.
‘노인의 사랑’은 외국 영화계에서는 이미 인기 소재로 자리매김했다. 독일 영화 〈우리도 사랑한다〉(감독 안드레아스 드레센, 2008)에서는 평범한 60대 할머니가 남편보다 더 늙은 70대 연인과 바람이 나 딸에게 “그 사람만 보면 심장이 콩닥콩닥거린다”라고 고백한다. 미국 소설가 필립 로스의 〈죽어가는 동물〉을 스페인 출신 이사벨 코이셋 감독이 스크린에 옮긴 영화 〈엘레지〉(2008)는 늙은 문학 교수와 젊은 여제자의 사랑을 아름답게 그렸고, 영국 영화 〈마더〉(감독 로저 미첼, 2003)에서는 얼마 전 남편을 잃은 60대 후반 할머니가 딸의 유부남 남자친구에게 반해 이렇게 묻는다. “나와 함께 침대로 가주겠어요?”
최근 국내에서는 연극 무대 위에 오른 노인의 사랑 이야기가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날라리 신사’와 ‘욕쟁이 할머니’ 두 남녀 노인이 만나 사랑을 싹틔우는 내용의 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가 지역 순회 공연을 다니며 인기를 끌었고, 강풀 만화를 원작으로 한 연극 〈그대를 사랑합니다〉도 평균 98%의 객석 점유율을 기록하며 공연을 이어나가고 있다. 작가와 연출가, 배우 대부분이 60대 이상의 노인으로 구성된 연극 〈한 번만 더 사랑할 수 있다면〉도 지난 3월 초연된 이후 6월10일부터 앙코르 공연에 들어갔다.
연극에서 노인의 사랑 이야기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게 잔잔하고 흐뭇하게 그려진 반면, 문학 속에 등장하는 노인들은 다소 도발적으로 사랑을 한다. 그 도발의 대상은 주로 ‘소녀’들이다.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에서는 나이 아흔이 넘도록 사창가의 여인들과 돈으로 맺는 관계만 반복해온 노인이 14세 소녀를 만나고 첫사랑의 가슴앓이를 겪는다.
유럽의 영화 몇 개를 제외하곤, 노인의 사랑을 다룬 많은 이야기의 화자는 모두 남성이다. 주로 ‘교수님’이나 ‘회장님’ 따위로 불리는 늙은 남자들은 제자이거나 파출부이거나 식당 종업원과 같은 젊은 여자들과 사랑에 빠진다. ‘로맨스 그레이’가 사실은 ‘남성 판타지’의 또 다른 이름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들의 사랑을 두고 “사랑이 아니다”라고 말할 권리는 없다. 노인의 사랑을 인정한다는 것은, 사랑의 본질을 인정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소설 〈은교〉의 주인공 이적요 시인은 죽기 전 유서에서 말했다. “사랑의 발화와 그 성장, 소멸은 생물학적 나이와 관계가 없다. ‘사랑에는 나이가 없다’고 설파한 것은 명저 〈팡세〉를 남긴 파스칼이고, 사랑을 가리켜 ‘분별력 없는 광기’라고 한 것은 셰익스피어다. 사랑은 사회적 그릇이나 시간의 눈금 안에 갇히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가. 그것은 본래 미친 감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