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총자산 가치만 850억 달러에 달하는 월가 최고·최강의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를 상대로 자존심과 명예가 걸린 대격돌에 돌입했다. 이 전쟁은 미국 정부 산하 독립기관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골드만삭스를 사기죄로 고소하면서 시작되었다. 증권거래위원회가 미국 굴지의 투자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특히 이번 소송은 오바마 행정부가 금융개혁법안의 의회 통과를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시점에 나온 것이어서 정치적 파장도 만만치 않다.

오바마 행정부는 증권거래위원회의 소송 제기와 관련해 사전에 아무런 통보를 받지 못했다며 증권거래위원회와의 사전 조율설을 적극 차단한다. 그렇지만 이번 소송이 상원 공화당 의원 41명 전원의 반대로 금융개혁법안이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제기됐고, 월가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미국인들 사이에 팽배한 가운데 제기됐다는 점에서 민심은 금융개혁의 칼날을 쥔 오바마 행정부 쪽에 유리하게 흐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영국·독일·프랑스 정부도 골드만삭스의 사기 혐의를 조사하겠다고 밝혀 국제적 파장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AP Photo골드만삭스는 총자산 가치만 850억 달러에 달하는 월가 최고·최강의 투자은행이다. 위는 뉴욕 증권거래소 골드만삭스 부스.

이번 사건의 핵심은 골드만삭스가 이른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를 기반으로 한 부채담보부증권(CDO)을 팔면서도 이 상품과 관련한 중요한 내부 정보를 투자자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 정보란 골드만삭스가 ‘아바쿠스(Abacus)’라는 이름의 부채담보부증권 상품을 투자자에게 판매하면서 정작 이 상품에 어떤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포함할지를 세계적 헤지펀드 매니저인 존 폴슨에게 일임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폴슨은 가치 하락이 필연적인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골라 골드만삭스에 넘겼고, 이를 근거로 골드만삭스가 출시한 모기지 증권은 곧 그 가치가 99% 이상 떨어져 투자자들이 10억 달러 이상 손해를 봤다. 당시 투자자들은 주택시장이 호전될 경우의 수익을 예상해 이 상품을 샀지만, 정작 폴슨은 반대로 조만간 주택시장이 붕괴하리라 예상하고 모기지 가치가 떨어질 때 이익을 챙기는 쪽으로 투자해 단숨에 약 10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골드만삭스도 이런 상품을 중개하면서 폴슨에게서 1500만~2000만 달러를 수수료로 받았다.

ⓒAP Photo골드만삭스 CEO 로이드 블랭크페인.
증권거래위, 무너진 신뢰 회복할까

바로 이런 부당 내부거래를 증권거래위원회는 투자자들을 현혹한 사기죄로 간주해 이번에 골드만삭스와 이 회사의 부사장 한 명을 고소한 것이다. 그러나 증권거래위원회는 투자자들을 대표한 측은 골드만삭스이지 폴슨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를 고소하지는 않았다. 골드만삭스는 이번 소송이 “법리적으로나 사실 관계에서 전혀 근거없다”라며 반발해 향후 치열한 법정 싸움을 예고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공교롭게도 이번 사건을 지난해 오바마 대통령의 법률고문을 지낸 그레고리 크레이그 변호사에게 맡겼다.

문제는 증권거래위원회가 골드만삭스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 승산이 있느냐이다. 사실 지금까지 증권거래위원회는 투자 상품을 투자자들에게 잘못 선전해 판 투자기관을 고소한 적은 있어도 이번처럼 상품이 아닌 고객을 현혹했다는 혐의로 소송을 제기한 적은 없다. 골드만삭스가 투자자에게 모든 정보를 제공할 법적 의무는 없다. 하지만 존 폴슨이 어떤 목적으로 아바쿠스 상품의 개발에 개입했는지를 투자자들이 알았다면 과연 아바쿠스를 구입했겠느냐 하는 점을 놓고 법정에서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특히 골드만삭스는 월가의 금융기관들이 투자자의 기호에 맞는 부채담보부증권을 만들어 파는 것은 오랜 ‘관행’인데 이제 와서 새삼 이런 관행을 문제 삼는 증권거래위원회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뉴욕 타임스도 법률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증권거래위원회가 이번 소송에서 승리하려면 골드만삭스가 누락한 정보가 너무도  중대해서 투자자들이 이 정보를 사전에 알았다면 문제의 상품을 사지 않거나 가격을 낮춰 구입했을 것이라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라며 이번 소송의 험난한 앞길을 예고했다.   

사실 증권거래위원회는 2008년 파산한 리먼브러더스 사와 지난해 3월 투자자들에게 180억 달러 손해를 입힌 증권 브로커 버너드 매도프의 사기행각 등을 사전에 단속하지 못해 신뢰와 명예에 큰 손상을 입었다. 특히 증권거래위원회는 메릴린치를 인수하면서 투자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혐의로 뱅크 오브 아메리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가 3300만 달러의 벌금을 내는 것으로 합의했지만, 연방 법원이 합의액이 너무 적다며 파기해 톡톡히 창피를 당한 일도 있다. 그 때문에 증권거래위원회는 이번 골드만삭스 소송건에 대해서는 기필코 혐의를 입증해 그간의 오욕을 말끔히 씻어내야 하는 부담도 안고 있다.

ⓒReuter=Newsis세계적인 헤지펀드 ‘폴슨 앤 코’ 설립자 존 폴슨.
증권거래위원회와 골드만삭스 간 법정 싸움이 어떤 식으로 결말날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현 시점에서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월가 최고 투자회사인 골드만삭스에 대한 소송을 계기로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 중인 금융개혁법이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하원을 통과해 현재 상원에서 심의 토론을 앞두고 있는 금융개혁법안의 핵심은 월가 투자사들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 구실을 해온 각종 파생상품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고 파산 위기에 처한 대형 투자회사들의 청산 작업을 원활히 하기 위해 500억 달러 기금을 신설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통과된 하원안은 이보다 3배나 많은 1500억 달러 기금 신설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지만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이 기금이 오히려 일반 납세자의 돈으로 망하는 기업을 살리려는 술수라며 기금 신설을 강력히 반대한다. 백악관이나 민주당 상원 지도부도 공화당이 500억 달러의 청산 기금 설립을 반대한다면 관련 조항을 삭제하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혔다. 따라서 수전 콜린스 의원처럼 일부 온건파 공화당 의원이 합세한다면 이달 중 금융개혁법안이 상원을 통과할 수도 있다는 조심스러운 전망도 고개를 든다. 하지만 공화당을 상대로 한 월가의 로비도 날이 갈수록 막강해 섣불리 통과를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다.

기자명 워싱턴·권웅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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