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6개. 2003년부터 2004년까지 4년 간 전국에서 사라져 간 ‘10평 미만 서점’의 개수이다. 동네 곳곳에 들어서있던 서점들이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의 영향으로 문을 닫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크고 강한 서점들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은 동네 서점들이 다시 살아나기 위해 도전을 펼치고 있다. 동네 서점을 꾸리는 이들은 ‘동네 서점만이 지니는 가치’가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거기에 희망을 건다.

글 싣는 순서. 
1. 살아남은 동네 서점의 슬픔
2. 참고서 상점’으로 바뀐 동네서점
3. 아직 희망이 있다
4. 그곳에 가면 책향기가 난다

ⓒ연합뉴스
2008년 경남 마산에서 20년간 자리를 지켜온 '문화문고'가 문을 닫았다.

동네 서점을 운영하는 분들을 차례로 만나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하자, 한 서점 주인은 “브레히트의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생각난다”라고 말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이렇게 노래한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동네에서 작은 서점을 꾸리는 사람들은 진짜 그랬다. 내가 처음 서점을 꾸릴 때만 해도 주변에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의 영향으로 동종업자들이 쓰러져가는 동안 단지 자신은 운이 조금 좋아 살아남았을 뿐이라고 미안해했다. 혹시 내가 강해서 약한 상대를 죽인 것은 아닌지, 작을지언정 내가 서점을 차리지 않았고 책을 조금 덜 팔았으면 그들이 가게 문을 닫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자책했다.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은 숫자가 증명한다. 1996년 서울에는 서점이 1140여 개 있었지만 2009년 다시 세어보니 380여 개가 고작이었다(서울시서점조합 자료). ‘10평 미만 서점’으로 범위를 좁혀 보면 상황은 더 참담하다. 2003년 전국에 914개였던 소형 서점이 2007년에는 138개만 남았다.

동네 구석구석에 들어서 있던 작은 서점들이 사라져가는 동안 인터넷 서점과 대형 서점은 더 커지고 많아졌다. 2004년 전체 도서 시장(2조3485억원)에서 15.9%를 차지하던 인터넷 서점의 매출이 2008년에는 전체 시장(2조5804억원)의 31.9%로 크게 늘었다. 오프라인 서점 가운데에서도 교보문고처럼 큰 서점 하나가 시장 점유율 17.3%를 차지할 정도로 양극화가 심해졌다(2009 한국출판연감 자료). 그렇게 많이 책을 파는 대형 서점이 전국에 60여 곳 이상 체인망을 깔았다(2009년 12월 말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집계).

동네 서점에 위기는 여러 차례 다가왔다. 다른 소매업과 마찬가지로 1990년대 후반 IMF 구제금융 시기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후 인터넷 서점이 생기고 대형 서점들이 전국에 지점을 늘리면서 젊은 손님들이 동네 서점으로 향하는 발길을 끊기 시작했다. 작은 서점들의 모임인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이창연 회장 말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크고 작음의 문제는 어쩔 수 없다고 치자.” 문제는 가격이다.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 홈쇼핑에서는 동네서점이 도매상으로부터 도저히 납품받을 수 없는 가격으로 소비자들에게 책을 팔고 있었다. “차라리 우리도 인터넷이나 홈쇼핑으로 책을 사서 팔자”라는 말이 직원들 입에서 나올 정도였다.    

악순환이 이어졌다. 동네에서 책을 사가는 사람이 주니 동네 서점에 책을 주려는 출판사와 도매상도 줄었다. “책을 받아가려면 정가의 90%에 현금으로 직접 와서 사가라”라고 요구하는 곳이 늘었다. 10%의 마진에 매장 운영비와 인건비를 제한 다음 “인터넷에서는 5천원인데 여긴 왜 만원이냐, 완전 도둑놈 아니냐”라고 따지는 손님들에게 5~10% 할인 혜택까지 주고 나면, 장사꾼 말이라 아무도 안 믿는다지만, “정말 남는 게 없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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