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는 캔버스(Canvas)다.” ‘대어링 파이어볼(Daring Fireball)’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유명 블로거 존 그루버는 이렇게 썼다. 아이패드는 마치 도화지와 같다. 아이패드는 어떤 앱(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하느냐에 따라서 그 모습이 180도 달라지며 그 앱 자체로 변신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이 아이패드가 가진 가능성을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개인용 컴퓨터인 애플II, 오늘날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쓰는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를 채용한 첫 번째 컴퓨터인 매킨토시, 음악 플레이어의 혁명을 일으킨 아이팟, 그리고 요지부동의 한국 시장까지 흔들며 전 세계를 석권한 아이폰. 이 모든 제품이 단 한 사람의 리더십 아래에서 나왔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살아 있는 전설, 스티브 잡스.

더는 성취할 것이 없을 듯한 그가 “내 평생의 최고 역작이 될 것이다”라며 들고 나온 제품이 ‘아이패드’다. 4월3일 토요일 미국 전역에서 첫 선을 보인 아이패드는 주말 동안 30만 대를 판매하며 전 세계 IT 팬들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스티브 잡스의 이 ‘평생의 역작’에 대해 궁금증을 도저히 참을 수 없던 필자도 그날 아침 일찍 애플스토어에 나가 아이패드를 바로 구입했다. 구입 후 간단한 소감을 트위터와 블로그에 올리자 금세 한국인 수백명이 관심을 갖고 말을 걸어왔다. 덕분에 주말 내내 열심히 사용해보고 블로그에 리뷰를 올렸으며 이 글이 주말 동안 몇 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아이폰 성공 이후 한국에서 얼마나 많은 이가 애플의 향후 행보에 주목하는지 직접 피부로 느꼈다.

이 폭풍의 진원지인 미국은 지난 연말부터 ‘애플 태블릿’ 루머가 무성하게 돌면서 미디어 업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온갖 예측이 난무했다. ‘애플 태블릿’이 수렁에 빠진 신문·출판 업계를 구하는 구세주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부터, 그건 말도 안 된다는 부정론까지 그야말로 온갖 토론이 오갔다. 결국 1월 애플이 ‘아이패드’를 공식 발표하면서 이 제품에 대한 기대와 실망 등으로 거의 매일처럼 온갖 미디어와 블로그에 아이패드 기사가 넘쳐났다. 막상 제품이 선을 보이자 주요 언론과 인터넷은 대체로 긍정적인 리뷰로 넘쳐났다. 빠르다, 터치감이 매우 좋다, 배터리가 기대 이상으로 오래간다, 변강쇠다…. 엄청나게 높았던 기대치에도 불구하고 “역시 애플이다”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뉴시스미국 최대 DVD 대여 회사인 넷플릭스가 아이패드에 앱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미국 방송사들, 아이패드에 콘텐츠 제공

과연 아이패드가 미디어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어떻게 될 것인가? 미디어 업계를 흔들 만한 파괴력이 있는가? 내 생각은 ‘예스’다. 아이패드로 대표되는 새로운 포터블(휴대형) 컴퓨팅 트렌드가 앞으로 10년간 미디어 업계의 모습을 송두리째 바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이패드가 미디어 업계의 블랙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앞서 존 그루버의 이야기처럼 아이패드는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캔버스다. 카멜레온이다. 필자는 아이패드를 구입하자마자 바로 아이북스(iBooks)와 킨들 포 아이패드(Kindle for iPad) 앱을 설치했다. 아이패드를 책으로 바꿔주는 앱이다. 아이북스 스토어에는 현재 전자책 6만 권이 판매되고 있다. 또 아마존 킨들에는 전자책 46만 권이 들어가 있다. 이 책을 온라인으로 구입해서 아이패드에 집어넣기만 하면 아이패드는 책으로 변모한다.

아이패드는 잡지이기도 하다. 5달러를 주고 ‘타임’ 앱을 다운로드했다. 타임 앱을 실행하는 순간 스티브 잡스가 표지인물로 나온 커버가 뜨며 아이패드가 〈타임〉으로 변한다. 〈와이어드〉 등 유명 잡지가 아이패드 데뷔를 준비 중이다.

아이패드는 신문도 된다. 뉴욕 타임스 앱과 월스트리트 저널 앱은 마치 종이신문을 보는 것 같은 경험을 아이패드 사용자에게 제공한다. 웹사이트처럼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3단 편집인 종이신문과 유사한 느낌을 태블릿 화면으로 제공한다. 그러면서도 기사 안의 사진을 터치하면 비디오가 재생된다거나 사진 슬라이드 쇼가 나오는 방식으로 온라인의 장점을 십분 활용한다.

아이패드는 미래의 텔레비전이기도 하다. 아이튠스에서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를 구매해서 다운로드해 보거나 팟캐스트를 통해서 동영상 뉴스 등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뿐이 아니다.

ABC·ESPN·CBS 등 미국 유수의 방송사가 아이패드를 위해서 자사의 귀중한 콘텐츠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비즈니스 모델은 텔레비전처럼 광고다. 거기다 미국 최대 DVD 대여 회사인 넷플릭스가 아이패드에 앱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넷플릭스 유료 회원이라면 넷플릭스의 방대한 영화 라이브러리에서 무제한으로 온라인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유튜브를 마음껏 보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 밖에 아이패드는 만화책도 될 수 있고 그림책도 될 수 있고, 게임기도 될 수 있다. 어떤 앱을 실행하느냐에 따라 기계 자체가 카멜레온처럼 변신한다.

아이패드는 기존 컴퓨터와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아이패드를 쓰고 있으면 아이패드가 ‘컴퓨터’라는 사실을 잊게 해준다는 점이다. 쓰기 어렵고 복잡한 기존 컴퓨터에서는 아무리 전자책 뷰어를 실행해도, 웹사이트로 신문을 읽어도, 동영상을 봐도 결국 ‘컴퓨터를 쓰고 있다’는 인식이 강했다. 키보드와 마우스를 통해 대개 모니터를 고정한 채 사용하기 때문이다.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스마트폰은 처음으로 지금까지 컴퓨터와는 다른 경험을 사용자에게 줬다. 하지만 화면이 너무 작고 처리 능력에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아이패드는 다르다. 거의 일반적인 종이책과 같은 널찍한 화면에 홈(Home) 버튼을 제외하고는 키보드도 마우스도 없다. 책을 보고 싶으면 손가락으로 눌러서 선택한 뒤 마치 종이책 페이지를 넘기듯 손가락으로 슥슥 넘겨가면서 읽으면 된다. 자기가 컴퓨터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인간의 상상력에 의해 얼마든지 발전해나갈 수 있는 플랫폼을 애플은 창조해낸 것이다. 이제 그 위에서 미디어 기업들은 무한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승자는 가장 뛰어난 콘텐츠를 가장 아름답게 아이패드 위에서 구현해내는 회사가 될 것이다.

종이신문 구독 취소, 아이패드판 구독 신청

2주 전부터 월스트리트 저널의 종이판과 온라인판 구독을 시작한 나는 요즘 깊이 후회하고 있다. 아이패드판 월스트리트 저널의 품질이 내 예상보다 휠씬 뛰어나기 때문이다. 기사와 종이신문을 방불케 하는 수준 높은 앱의 완성도, 24시간 업데이트를 생각하면 불편한 종이신문을 구독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종이신문 구독을 취소하고 아이패드판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할 참이다.

필자처럼 한번 새로운 매체의 장점을 경험한 독자라면 다시 기존 매체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즉, 미디어 회사가 이런 새로운 소비자 행동을 간과하면 금세 도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다. 변화에 저항하다 몰락해버린 음반업계의 교훈을 통해 미국의 미디어 회사들은 변화를 적극 수용해야 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안다. 보수적일 것 같은 뉴스코프의 루퍼트 머독이 가장 적극적으로 아이패드에 열광하는 이유기도 하다. 아이폰 등장 3년 후 바뀐 세상을 생각해보면 아이패드 등장 후 바뀔 3년 뒤의 미디어 지형도가 기대된다.

기자명 임정욱 (미국 라이코스 CEO)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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