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가 집권하면 다른 건 몰라도 국방이나 안보만은 잘할 줄 알았습니다. 지난 10년 정권에 대해 ‘빨갱이들에게 정권을 맡겨 나라가 결딴’ 난 것처럼 떠들어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제2 롯데월드 때부터 이상했습니다. 좌파의 대명사처럼 매도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조차 국가안보가 우선이라며 접었던 사업을 뚜렷한 명분도 없이 밀어붙였습니다. 애국보수를 자처하던 사람들의 우왕좌왕하던 모습, 인상적이었습니다.

천안함 침몰 사건에서 드러난 총체적 난국상은  말하기조차 민망합니다. 군이 초지일관 보여준 석연치 않은 태도나 군과 겉돌며 허둥지둥하는 청와대를 보면서 진짜 전쟁이라도 났으면 어쩔 뻔했나 싶습니다. 청와대가 북한 관련성을 일관되게 차단한 것은 그나마 잘한 일이지만, 이조차 자연스럽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천안호 침몰 소식에 대뜸 북한부터 떠올리게 한 장본인이 바로  지금까지의 청와대이기 때문입니다.

한반도 안보에 대해 보수 세력은 늘 ‘북한은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명제로부터 출발해왔습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그들의 정언명제를 듣다보면 거기서 나올 수 있는 것은 정책이 아니라 대책뿐이며, 중국이나 일본 등 주변국을 아우르는 포괄적 안보 구상은 발 디딜 틈이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지정학적으로 한반도는 국가 간 움직임이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상호연쇄적으로 일어나는 곳입니다.

화폐개혁 이후 북한 내부 혼란상이 남쪽에 대해 ‘대결이냐 대화냐’를 다급하게 묻는 물음으로 다가왔다면, 최근의 김정일 방중 움직임은 결국 남쪽과 대화를 포기하고, 생존을 위해 중국의 섭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비극적 선택의 결과이며, 그 후폭풍은 앞으로 엄청날 것입니다. 일본이 독도 문제에 한발 한발 다가서고 있는 것 역시 남북 분열로 공동 대응하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판단에서일 것입니다.

결국 남북관계가 무너지면 우리의 생존 터전 이곳저곳이 무너질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안보의 출발은 남북관계 안정에서부터라는 게 지난 10년 정권의 유산이었는데, 그 유산이 이제 빈 깡통만 남았습니다.
이 정부가 더 이상의 참상을 막으려면 지금이라도 대북관을 다시 정립해야 할 것입니다.

어제의 북한은 우리의 적이었지만, 미래에는 당연히 한 민족으로 통일해야 할 대상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북한은 뭔가? 적인가, 동반자인가, 협력의 대상인가? 북한을 동반자이자 화해·협력의 대상으로 보았던 지난 세월을 이 정권이 부정한다면, 이 정권에게 오늘의 북한은 뭔가? 적인가? 이번에 보면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도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뭔가? 지금의 혼란스러운 대북관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총체적 안보 위기를 해결할 길도 요원할 것입니다.

기자명 남문희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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