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 스님만큼 평가의 양 극단에 서 있는 승려도 드물다. 지지하는 이들에게 지율 스님은 생명을 구원하러 온 생불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국고를 낭비한 요승’일 뿐이다. 심지어는 일부 진보 논객마저 지율을 ‘고집불통 원리주의자’라 비판한다.

한동안 천성산 ‘도롱뇽 소송’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지율 스님이 세속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낙동강 일대에 지율이 나타났다더라, 상주 어딘가에 빈집을 얻어 산다더라, 하던 얘기가 풍문처럼 들린 지 1년 만이다. 지난 3월29~30일 이틀간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낙동강 숨결 느끼기 사진전’에서 지율 스님은 지난 1년간 자신이 쌓아온 행업을 사부대중 앞에 드러냈다. 이곳에서 만난 지율의 사진들은 세속이 스님에게 덧씌운 선입견을 한 방에 날려버릴 만큼 강렬했다. 한마디로 ‘설득하는 힘’이 느껴졌다.

ⓒ시사IN 조남진지율 스님(왼쪽)이 낙동강 도보 순례단을 인솔하고 있다.
지율 스님의 사진들은 결코 감상적이지 않다. 낙동강 20여 개 지점을 거점 삼아 저널리스트처럼 냉정하게 4대강 사업 착공 이전과 이후를 비교하고 기록한다. 요령이나 기교도 없다. 대신 화면을 채운 것은 정직한 발품과 집요한 문제의식으로 건져낸 ‘팩트’들이다. 이 사진들을 얻기 위해 지율 스님은 지난 봄부터 겨울까지, 총길이 300여km에 이르는 낙동강 본류와 지류를 다섯 번 답사했다고 한다. 한 번 답사하는 데 한 달 보름씩 걸리는 길을 때로는 두 발로, 때로는 자전거로 쉼 없이 밟아 나갔다.

덕분에 관람객들은 진초록빛 융단 같던 자연습지가 메마른 준설토로 뒤덮이고(〈구담습지〉), 한때 주모가 살았다는 강가 주막이 있던 자리에 시멘트 제방이 쌓이는가 하면(〈본포 나루터〉), 봄볕 아래 백발의 촌부가 한가롭게 밭을 갈던 강변 농지가 콘크리트 보로 바뀌는 모습(〈칠곡보 현장〉)을 한눈에 관상할 수 있다. 그리고 직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이것이 강을 살리는 길인지 아닌지.

이번 사진전 포스터.
이날 조계사에 전시된 사진은 모두 지율 스님 혼자 찍고 편집한 것들이었다. 전시회장 입구에서 상영 중인 10분 길이 동영상 또한 직접 음악과 자막을 입혀 만든 것이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컴맹이었다. 내가 평소 쓰던 것과 다른 포털 사이트가 컴퓨터 화면에 떠 있으면 딴 사람을 불러 도움을 청할 정도였다. 그런데 절박해지니까 다 배워지더라”라고 스님은 말했다. 일단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가는 낙동강 모습이 지율을 압박했다. 어디에선가 착공식이 있었다는 뉴스를 듣고 달려가면 이미 강의 절반이 사라져 있는 식이었다.

지율 스님을 더 절박하게 만든 것은, 거창하게 말하자면 일종의 시대적 소임이었다. “천성산 때만 해도 어찌 보면 나는 세속의 잣대로 저항한 셈이었다”라고 스님은 뜻밖의 얘기를 꺼냈다. 비록 도롱뇽을 상징으로 내세우기는 했지만 당시는 개인적인 생명관이나 세계관 때문이라기보다, 환경영향평가 등 세속의 법으로 정해진 절차마저 정부가 무시하는 것을 보며 ‘한 사회인으로서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극단적인 저항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사회 전반의 흐름을 반드시 되돌려야 한다”라는 절박감을 느낀다고 지율 스님은 말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맨위는 낙동강 상류 구담습지의 본래 모습. 맨위는 4대강 사업이 시작된 뒤의 구담습지.


낙동강 마지막 나루였다는 ‘본포 나루터’ 모습. 옛 주막이 있던 자리(맨위)에 제방을 새로 쌓았다(위).


칠곡보의 어제(맨위)와 오늘(맨위). 농지는 사라지고 강을 가로질러 대형 보가 놓였다.


달성보 공사 현장. 한때 전답이었던 곳(맨위)이 현재는 시커먼 퇴적토로 덮여 있다(위).

그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 지율은 확신한다. “사라지는 것들을 기록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했다면 이렇게까지는 못했을 것이다”라고 스님은 말했다. “조만간 4대강을 복원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그때 자료가 될 수 있게끔 현장을 꼼꼼히 기록해놓으려 한다.” 지율은 4대강 사업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스님이 보기에, 베어지는 나무를 보며 인간이 아픔을 느끼는 것은 그것이 구석기부터 우리 유전자에 전해져 내려온 ‘지구적 본능’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해야 산다는 본능을 파괴된 4대강이 깨우쳐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는 지율 스님은 “싸워 이기려는 게 아니라 깨달으라고 지금 이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낙동강 숨결 느끼기 사진전〉은 조계사 외 서울 명동성당과 서울대 광장에서도 열릴 예정이다. 부산·대구·광주·청주·상주·수원 등에서도 동시 사진전이 계획돼 있다. 자세한 내용은 낙동강 도보 순례를 진행 중인 ‘낙동강 3·14’ 홈페이지(nakdongkang314.org)에서 볼 수 있다.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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