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삼성전자. 하지만 ‘또 하나의 가족’이 그곳에서 죽어가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2009년 12월까지 확인된 백혈병·림프종 등 조혈계 암 발병자만 22명.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조사 결과에서도 2007년까지 기흥공장 14명, 온양공장 4명, 수원사업장 1명이 조혈계 암에 걸렸다. 기흥공장 6명, 수원사업장 1명이 사망했다.

집단 발병은 우연일까? 이건희 회장이 복귀한 삼성. 삼성은 언제까지 침묵할 것인가? 삼성이 침묵하는 사이 희생자들은 계속 늘고 있다. 스물세 살 박지연씨가 또 다시 사경을 헤매고 있다.


글 싣는 순서
1) 꿈의 공장에서 죽어가는 또 ‘하나의 가족’ 
2) ‘두근 두근 투모로우’만 보면 부글부글 끓는 ‘또 하나의 가족’



“아빠는 매운 거 잘 먹었어요?”
“아빠는 더하기 잘 했어요?”

정애정씨(34)의 여덟 살 난 아들 경민군(가명)의 질문은 요즘 들어 더 구체적이다. 교회 주일학교에서 ‘하나님에게 바라는 소원’을 적어오라는 숙제를 내주자, “아빠가 빨리 우리한테 오는 것”이라고 적어 정씨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정씨는 “아빠에 대해 묻는 경민이를 볼 때마다 어떻게 답을 해야 좋을지 난감하다”라고 말했다. 아빠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설명하고 이해하기에는 경민이가 아직 너무 어리기 때문이다.

ⓒ시사IN 장일호
정애정씨는 삼성전자 기흥공장 사내커플로 남편 황민웅씨를 만나 결혼했다. 남편 황씨는 2005년 7월 10만명당 2명 꼴로 걸린다는 백혈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정애정씨의 남편 고(故) 황민웅씨는 경민이가 네 살 되던 해인 2005년 7월, 급성림프구성백혈병으로 사망했다. 발병한지 불과 9개월만의 일이었다. 남편의 병과 함께 배 속의 둘째 아이도 커가고 있었다. 남편 황씨가 백혈병 진단을 받고 일주일 뒤 정애정씨는 둘째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정씨는 “배 속의 아이가 건강하게 커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남편의 병도 곧 나을 것 같다는 희망을 가졌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남편 황씨는 보름 뒤 골수이식 수술 날짜를 받아놓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갔다. 둘째 소연이(가명)가 태어난 지 한 달 만의 일이었다.

눈을 감기 며칠 전, 황씨는 병원으로부터 어렵게 외출 허락을 받아 소연이의 얼굴을 딱 한 번 봤다고 했다. 황씨는 병원으로 돌아가기 전 동사무소에 들러 소연이의 출생신고를 직접 하기도 했다. 아빠 얼굴을 전혀 모르는 소연이가 아빠를 보고 싶다고 하면 정씨는 “아빠가 보고 싶으면 사진 보면 되지. 엄마도 아빠가 보고 싶으면 사진 봐”라고 말했다.

황민웅씨는 반도체를 생산하는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설비엔지니어로 1, 5라인을 유지·보수하는 일을 1997년부터 7년간 해 왔다. 삼성 백혈병 집단 발병 사건을 문제 제기하고 있는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 따르면 황씨가 일한 기흥공장 1라인은 가장 노후한 라인으로, 그는 라인을 셋업(set-up)하고, 에틸렌글리콜 따위 유기용제를 사용하고 주기적으로 세정 업무 따위를 담당했다. 

부인 정애정씨는 사내 커플이다. 사원 친목도모 합창대회를 통해 만난 황민웅씨와 정애정씨는 2001년 결혼했다. 정씨는 1995년 고등학교 3학년 때 입사해 11년간 기흥공장 5라인에서 주로 근무해 왔다. 정씨는 “11년간의 현장 경력이 있다. 반도체 공정은 화학물질을 많이 쓴다. 우리가 써왔던 용액들이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해도 현장의 상황과 주변 사람들의 건강 상태 따위의 사정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씨는 첫째 경민이를 낳기 전 유산을 경험한 바 있다. 결혼하자마자 들어선 아이는 배 속에서 자라지 않았다. 건강보험료를 내는 게 아까울 정도로 건강해 병원 한 번 다니지 않았던 정씨였다. 병원에서도 아이가 자라지 않는 이유를 모른다고 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이 정씨만이 아니었다. 유산은 물론 생리불순도 허다했고 코피나 하혈을 하는 동료도 있었다.

그래도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회사와 집만 오가는 단순한 삶의 사이클, “‘밥줄’ 앞에서 노동자는 약자였다”라고 정씨는 말했다. 회사와 집만 오가는 생활을 하다, 결혼 3주년 기념일 하루 전날인 2004년 10월27일 황민웅씨는 아주대병원 응급실에 입원했다. 단순 감기인 줄만 알았다가 입원한 황씨는  급성림프구성백혈병 진단을 받고 9개월 만에 숨졌다. 유산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당시에도 산업재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드라마 소재라고만 생각했던 백혈병, 박지연씨처럼 황씨도 가족력은 없었다. 그런데 청장년층에서 10만 명당 2명 정도 걸린다는   백혈병에 정씨는 그만 남편을 잃었다.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었다. 정씨는 ‘먹고 살기 위해’ 남편 황씨가 숨지고도 1년을 더 삼성전자 기흥공장 5라인에서 일했다. 

ⓒ시사IN 장일호
남편이 남긴 유일한 유품. 남편 황민웅씨가 회사에 다니며 가지고 다니던 가방. 가방 안에 든 수첩에는 남편이 마지막으로 부탁한 '보석' 아이 사진이 담겨 있었다.

자신의 유산과 남편의 백혈병이 산업재해일 수 있다고 의심하게 된 것은 같은 공장에서 일했던 故 황유미씨(급성백혈병으로 2007년 3월 사망)의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난 뒤였다. 정씨는 “늦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이해할 수 없었고 뜬금없었던 남편의 죽음의 이유를 알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당시를 다시 기억하고 떠올려야 한다는 두려움도 컸지만, 반올림을 만나보기로 했다. 2008년 봄의 일이었다.

다른 유족들과 반올림에 함께 하고 있는 노무사·의사들을 만나면서 정씨는 “현장에 11년을 있으면서도 내가 만지는 용액들이 유해한지 무해한지도 몰랐던 걸 알게 됐다”라고 말했다. 그 뒤로 정씨는 삼성 광고를 안 본다. 정씨는 “광고에서 보여지는 깨끗하고 희망적인 내용을 보면 화가 난다”라고 말했다.

김현주 단국대 의과대학 산업의학 전문의는 황씨를 비롯해 기흥공장에서 숨진 이들의 의견서를 통해 “황민웅씨의 경우 장비의 유지·보수 과정에서 에틸렌옥사이드에 상당한 고농도로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라며 백혈병과 업무연관성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황씨 뿐 아니라 백혈병으로 숨진 황유미씨나 이숙영씨 모두 기흥공장 1~3라인에 근무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올림에 따르면 이들 외에도 1~3라인 근무자 가운데 관리직 1명과 여성노동자 1명도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정씨는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을 시작했다. 정씨는 지난 1월11일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청구소송’에 함께 참여 했다. 요즘 정씨는 보육교사자격증을 취득해 집 근처 어린이집에서 일하고 있다. 일도 하고 아이도 키우면서 소송까지 해야 할 일은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정씨는 아이 둘을 바라보며 마음을 단단히 다졌다. 정씨는 아빠를 궁금해 하는 경민이와 소연이가 언젠가 아빠의 죽음을 이해할 날 그 날이 오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소송을 시작한 건 내 남편과 아이들의 아빠를 빼앗아 간 정신적 보상을 받고 싶은 거다. 직업병으로 인정받는다는 의미가 있으니까. 산재 승인이 목적이지만, 그 과정 역시 충실히 하고 싶다. 그 과정에는 세상에 삼성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려야겠다는 다짐도 포함 돼 있다”

 

 



마음이 저리도록 아픕니다!
지그시 감은 님의 눈에는
한 방울의 눈물이 맺혔습니다.

그 한 방울의 눈물은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미안해!
울 보석들을 부탁해!
많이 고맙고 사랑해!

그리고 못다 한 한마디
나 억울해 미칠 것 같아!
내 고막이 터지도록
고래고래 소릴 지르고 있었습니다.

삼성에 희망을 걸고
내 꿈을 키운 대가치곤
너무 무섭다고
인정받기 위해
무리한 잔업도
위험한 작업환경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난 그렇게 죽어라 일한 죄밖에 없다고…
님은 그렇게 억울한 마음을
한 방울의 눈물에 담고 있었습니다.

항암 치료에 민둥머리가 되어도
참 멋있는 31세의 님이었습니다.

(중략)

지난해 남편 4주기를 맞아 정애정씨가 쓴 시 ‘님’ 中에서 (출처: 삼성 반도체와 백혈병)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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