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0일 고려대학교 캠퍼스에 대자보가 하나 붙었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씨의 ‘자퇴 선언문’이었다. 김씨는 또래 세대를 이렇게 표현했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다리기를 하는 20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 그래서 선택했다.  “다른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마지막 남은 믿음으로…(중략)… 자본과 대기업의 ‘인간 제품’을 조달하는 하청업체가 돼버린 대학을 떠나겠다.”

김씨의 대자보는 곧 세간의 화제가 됐다. 대자보 주변에 다닥다닥 포스트잇 댓글이 붙고 인터넷에서 숱한 누리꾼이 지지와 연민 혹은 (“배부른 소리 한다”라는) 비난과 (“그래도 고대니까 주목을 받는구나”라는) 질시를 표했다. 그렇게 또래 20대로 추정되는 불특정 다수가 웅얼웅얼 모아지지 않는 의견을 이야기하는 동안 기성세대는 사건에 주석을 달기 시작했다. 어느 경제지는 ‘스티브 잡스가 김예슬에게 보낸 편지’라는 칼럼을 실었다. 대학을 중퇴한 후 창조적 인재로 거듭난 스티브 잡스가 “당신도 나처럼 성공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편지를 가상으로 꾸민 것이다.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박사는 한 일간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김씨의 자퇴 선언을 두고 이렇게 환호했다. “1987년의 대학생들이 역사 속에서 돌아오고 있다.”

 

ⓒ시사IN양한모 그림

‘20대’라는 말 뒤에 ‘문제’라는 단어가 따라붙기 시작한 이래, 20대를 둘러싼 이야기는 늘 이렇게 진행돼왔다. 대학 등록금은 치솟고 일자리도 바늘구멍을 뚫어야 얻는 시대, 현실을 타개할 패기도 없이 토익 책만 들입다 파는 20대를 보고 당사자들은 자조하고 다른 세대는 손가락질을 한다. 모두가 답답해할 즈음 짜잔, 김씨처럼 ‘또랑또랑해 보이는’ 20대(들)가 나타난다. 기대를 걸며 각자 한마디씩 보탠다. “창조적 인재의 새로운 모범이다.” “대학생들이 각성하기 시작했다.” “다른 20대도 행동에 나서 세상을 바꾸면 좋으련만.” 하지만 대다수의 경우 별 변화가 없다. 그러면 실망한다. 다시 욕하거나 자조한다.

 

“동네북이 된 20대 ‘덩어리’가 제대로 된 이름조차 없는 건 너무 가여운 일이다”라며 경제학자가 붙이고 많은 이가 공감한 용어가 ‘88만원 세대’이다. 그 단어와 그것이 주도하는 20대 담론이 히트 상품이 되자 경쟁하듯 ‘실크로드 세대’ ‘G세대’ 같은 아류작이 쏟아져 나왔다. 독재 정권을 헤쳐온 운동권 선배들이 지금의 20대에게 짱돌과 바리케이드의 기술을 전수하려 부단히 노력한 것처럼, 운동을 싫어하는 보수주의 어른들도 “지금 20대는 가난했더라도 희망가를 부르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군 베이비붐 세대와 통하는 게 있다(1월27일자 조선일보 칼럼 ‘베이비붐 세대와 요새 젊은것들’)”라고 친한 척을 해왔다. 그러다 자기편이 되지 않으면 금세 토라져서 보수주의 선배들은 “역시 전교조 선생에게 배워 사상이 불순하다”라는, 진보주의 선배들은 “뭘 해도 안 되는 너희 대신 10대에게 기대를 걸련다”와 같은 악담을 20대에게 퍼부었다.

그렇게 윗세대가 ‘20대 담론’이라는 것을 만들어 지지고 볶는 동안, 정작 당사자인 20대는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아니, 내지 않았다. 자신들을 하나의 낱말로 묶어 이렇다 저렇다 인상평을 늘어놓는 담론이 조금도 흥미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대 담론이 확대되고 재생산될수록 우리 대다수는 용기가 난다기보다 자기 모습에 대한 자괴감과 불안감만 커질 뿐이었다.”(20대 저자들이 쓴 〈이십대 전반전〉에서) “무슨무슨 세대라는 이름으로 묶는 것은 거기에 속한 개인을 소외시키는 방식인 것 같았다.”(마포 FM DJ 유기림·23세)

“세대 담론이 오히려 우리를 소외시켰다”

20대 담론을 주도하는 윗세대, 특히 386 세대라 불리는 이들이 ‘알고 보니 비호감’인 이유도 한몫했다. “386 세대에 관한 환상과 부채감 같은 것을 키우다가 대학에 들어왔는데, 막상 만나보니 이분들이 진짜 이상한 거다. 자유롭게 하라고 해도 막상 자유로운 것을 못 참고 그냥 기성세대더라.”(소설가 김사과, 〈요새 젊은것들〉 인터뷰에서) 〈위풍당당 개청춘〉이라는 책을 쓴 직장인 유재인씨(29)도 “20대여, 짱돌을 들어라!”라고 주문하는 386 선배님들에게 “흥, 하고 콧바람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투쟁’과 ‘감봉’을 모두 20대 후배들에게 떠넘기고 회사에서 일 대신 정치 이야기만 하는 386 선배를 너무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걱정하는 윗세대의 목소리에 진정성이 깊지 않다는 걸 느끼기 시작한 20대가조금씩 목소리를 내는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주로 20대 담론에 대한 ‘짜증’이 촉매로 작용했다. 공동체 라디오 마포 FM에서 ‘이빨을 드러낸 20대(이드2)’라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진행하는 20대 활동가 5명(00쪽 딸린 기사 참조)은 우석훈의 〈88만원 세대〉 후속작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를 읽다가 반발심에 마이크를 잡기로 했다. “우석훈이 너무 시원찮더라고. 에이, 내가 그냥 얘기해보자 싶었다.” 20대 이야기를 20대 관점에서 다루는 독립잡지 ‘헤드에이크(00쪽 참조)’를 만드는 이들도 “우리 이야기를 왜 윗세대가 왈가왈부할까? 잡지를 나름대로의 짱돌 삼아 우리가 한번 해결해보자”라는 심정으로 일을 벌였다.

 

대학생들이 김예슬씨의 ‘자퇴 선언’ 대자보를 읽고 있다. 김씨는 대자보를 통해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과 그것을 방조한 국가·기업을 비판했다.

‘별것 아닌’ 20대가 각자의 이야기를 적어낸 책도 최근 눈에 띄게 많이 나오고 있다. 기존에는 20대가 책을 쓰려면 저자가 별난 곳을 여행하거나, 뭔가 크게 성공해 자기계발 지침을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20대 문제 등 사회 전반에 목소리를 내는 20대 칼럼니스트도 종종 책을 냈지만 기성세대가 “글 꽤나 쓰는 젊은이”라고 인정하는 저자에만 한해서였다. 그런데 지난해 말부터 출판된 〈대한민국 20대, 자취의 달인〉〈요새 젊은것들〉〈이십대 전반전〉〈위풍당당 개청춘〉 등의 책에서는 대학생, 백수, 직장인 같은 평범한 20대가 시시콜콜한 일상사에서부터 정부 정책 비판까지 주제를 가리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십대 전반전〉을 낸 출판사 골든에이지 박종평 사장은 우연히 대학의 자치언론사 잡지를 읽고 ‘매체를 통해 접한 20대 이야기는 당사자들의 것과 많이 다르구나’라는 것을 깨달아 대학생들에게 직접 책을 쓸 것을 제안했다. 〈요새 젊은것들〉도 애초 홍세화·진중권·안철수 같은 유명 인사들이 88만원 세대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담길 예정이었다. 그런데 출판사 대표가 “우리 주변 20대를 우리가 직접 인터뷰하겠다”라는 20대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인 뒤 책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다. 

“단결이나 연대는 우리에게 먹히지 않는다”

책 출판만이 아니다. 여성영상집단 ‘반이다’는 〈개청춘〉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 20대의 고민을 카메라에 담았고, ‘청년 유니온’이라는 노동조합(00쪽 기사 참조)도 출범해 20~30대 노동자 권익을 다루기 시작했다. ‘율면은 대학(00쪽 기사 참조)’ 청년들처럼 “88만원만 벌어서 문제가 아니라, 88만원을 벌어도 행복하게 사는 삶을 꿈꾸며” 곡괭이를 지고 농촌으로 가는 20대도 있다. 

이런 젊은이들의 활동에 흔히 ‘당사자 운동’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하지만 ‘운동’이란 모름지기 하나의 적과 하나의 목표가 있어야 하는 법. 옛 운동권 선배들의 눈에 지금의 20대가 하는 일은 허무하기 이를 데 없다. 20대의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 〈개청춘〉을 만든 ‘반이다’는 영화 상영회에서 이런 반응을 전했다. “선배들이 우리 영화가 약하대요.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면서요.”

20대 영화감독도, 책을 쓴 저자도, 농촌으로 가겠다는 청년도, ‘이빨을 드러낸’ 라디오 DJ는 물론 노조를 만든 활동가조차 마이크나 카메라, 펜과 곡괭이라는 각자의 짱돌을 주섬주섬 챙기기는 하되 한 번도 “다 같이 돌을 던지자!”라고 외치지 않는다. 2008년 촛불집회에서 확성기가 등장하자 젊은이들이 오히려 뿔뿔이 흩어졌듯, ‘단결’이나 ‘연대’ 같은 말이 또래에게 먹히지 않을 거란 사실을 경험으로 체득했기 때문이다.

서로의 취향과 목표가 너무 다르다는 걸 아는 이들은 그래서 집단보다 개인의 이야기를 전하려 하고, 귀를 기울인다. 청년 유니온의 김영경 대표(29)는 노조의 활동 방향에 대해 “단체 교섭이나 투쟁보다 노동·직업 상담과 같은 개인 서비스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라고 말했다. 〈요새 젊은것들〉의 20대 저자 3명도 “책을 쓰기 위해 회의를 거치면서 가장 먼저 포기한 게 ‘보편적인 20대’에 대한 집착이었다”라고 전했다. 블로거 이인씨(27)는 한의사, 사법시험 합격생부터 NGO(비정부기구) 활동가, 국토종단 대학생, 젊은 기러기 아빠, 대학 5학년생, 백수, 탈모 청년까지 다양한 20대를 만나 그 목소리를 블로그에 전하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누군가에게 가슴에 불씨가 될 만한 글을 써 변화를 일으키고 싶었지만 욕심이 지나치다 싶어 젊은이들의 생각을 날것으로 보여주자는 쪽으로 초점을 바꿨다.”

20대에겐 ‘우리의 이야기’나 ‘우리의 적’이 없다. 그래서 김예슬씨가 자퇴 선언 대자보에서 표현한 것처럼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고 “나의 적”에 대항해 각각 싸우는 것이다. 이들은 조급해하지 않는다. ‘헤드에이크’ 편집장 정지원씨(25)는 말했다. “때려치우고 부수는 혁명이 가장 쉬운 것 같다. 그것과 다르게, 지속가능한 변화로 이어지려면 스스로가 행복해져야 하는 게 아닐까? 우리는 그 방법을 찾았다.” 

기자명 변진경ㆍ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