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올리언스 시 시장이 연단에 섰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휩쓸고 간 피해 지역을 복구한다는 핑계로, 멀쩡한 서민 공공임대주택을 허물고 재개발사업을 밀어붙이는 시 행정을 변호하고 싶었나 보다. “우리 시는 지금 사상 초유의 전환점을 맞아 임대주택 전면 개선을 추진 중입니다. 지금 온갖 풍문이 떠돌지만 저는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습니다.”

건설업계 ‘업자’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시장은 ‘진실’이라는 단어를 힘주어 말했다. 시장이 개발 이익에 눈이 멀었다는 건 ‘온갖 풍문’일 뿐이고, 서민에게 더 나은 주거 환경을 제공하려는 선한 의도야말로 앞으로 밝혀지게 될 ‘진실’이라는 주장이다.

시장과 함께 재개발사업을 주도해온 미국주택도시개발청(HUD) 사무총장을 대신해 보좌관이 다음 연사로 나왔다. 자신을 ‘르네’라고 소개한 이 남자가 깜짝 발표를 했다. “우리 생각이 틀렸습니다. 임대주택을 허물고 다양한 소득층이 섞인 아파트를 짓자 기존 주민은 대부분 다시 입주하지 못했고 심지어 노숙자로 전락한 주민도 있었습니다. 이런 실수가 반복되어선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부터 뉴올리언스 내 저소득층 임대주택 사업을 재개할 것입니다.”

장내가 술렁이고 언론이 바빠졌다. 재개발 정책 전면 중단이라니. ‘업자’들을 다 굶겨 죽일 셈인가? 르네 주변으로 사람이 모여들었고, 질문이 쏟아졌다. 기자 정신 투철한 몇몇 기자는 얼른 본사에 확인한 뒤 따져물었다. “댁이 HUD 소속도 아니고 발표도 거짓이라는데요?” 그제서야 르네는 또 한 번 깜짝 발표를 한다. “뻥이요~.”


이것이  ‘예스맨’이 세상을 바꾸는 방식이다. 도무지 ‘예스’라고 말할 줄 모르는 정부와 기업을 대신해서 통 크게 ‘예스’라고 말하고 다닌다. 잘못했지? 예스! 다 보상해줄 거지? 예스! 우리가 늘 간절하게 듣고 싶은 기업의 대답을 예스맨이 대신해준다. 물론 그런다고 당장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허리케인도 견뎌낸 튼튼한 서민 임대주택이 재개발 광풍에 휩쓸려 결국 힘없이 철거되는 걸 막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럴듯한 도시 재건 사업 이면에 숨은 업자들의 흑심을 온 세상이 손가락질하는 계기는 만들었다. 시장이 힘주어 강조하던 ‘진실’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말발’이었는지 눈치채는 기회도 제공했다. 이 정도면 ‘뻥친’ 보람이 있다.

시민단체가 저지른 ‘뻥이요’ 프로젝트

겨우 시장님 상대로 사기 치는 건 사실 이들에겐 ‘껌값’이다. 전 세계를 상대로 뻥친 적도 있으니까. 2004년, 거대 다국적기업 다우(DOW) 케미컬의 대변인을 사칭하고 BBC 생방송에 출연했을 때 일이다. 유독가스 유출 사고로 1만8000명이 죽었는데도 제대로 보상 한번 받지 못한 1984년 인도 보팔 참사 피해자들에게, 수십조원에 달하는 보상금을 당장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전 세계 시청자 3억명이 그 방송을 보았고, 1시간 만에 다우 케미컬 주식가치 20억 달러(2조3000억원)가 증발했다.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은 지 2시간 만에 예스맨이 내놓은 해명은 역시 간단했다. “뻥이요~. 오늘 우리의 거짓말은 겨우 2시간뿐이었지만 다우가 준 고통은 무려 20년입니다.”

2009년 베를린국제영화제가 관객상을 준 다큐멘터리 〈예스맨 프로젝트〉는 이런 속시원한 ‘뻥이요’ 프로젝트 6건의 기록이다. 모두 지난 10여 년간 온갖 기발한 아이디어와 뻔뻔한 거짓말로 다국적 악덕 기업들 골려주는 데 힘써온 미국 시민단체 ‘yes men’이 저지른 일이다. 세상의 큰 거짓말을 폭로하는 작은 거짓말의 기운 센 반란. 그래서 유쾌한가? 예스! 통쾌한가? 예스! 부러운가? 예스, 예스, 예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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