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렬 소식’이 전해지기 전만 해도 유시민 전장관의 표정은 밝았다. ‘연대만 성사’되면 야권이 이길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인터뷰 도중 4+4 연대가 최종 서명에 실패했다는 전화를 받고는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내내 안 태우던 담배까지 꺼내 물었다. 그와의 인터뷰는 3월16일 일산의 한 음식점에서 진행됐다. 5개월간의 노무현회고록 집필, 그리고 경기도지사 출마 선언 후 지면 인터뷰에는 처음 등장하는 터라 주제를 넓혀 장시간 얘기를 나눴다.

이번 지방선거 판세를 어떻게 보고 있나?
야당이 다 이긴다.

근거가 뭔가?
연합으로 이길 수 있다.

ⓒ시사IN 안희태1959년 경북 경주 출생. 대구 심인고,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독일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대학 경제학 석사. MBC 〈100분 토론〉 진행자, 16,17대 국회의원, 보건복지부 장관, 국민참여당 중앙선대위 위원장.
여론조사로 보면 연합해도 지는 지역이 많다.
말로 뭐가 되는 정부가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말을 안 하는 거다. 괜찮은 야당이 있으면 확 밀어줄텐데 마음에 드는 야당이 없으니깐 더 입을 닫고 있는 거다. 그래서 지금 진행중인 연합이 굉장히 중요하다. DJP연합이나, 노무현 정몽준 단일화는 있었지만 그건 연합이 아니고, 실체를 가진 정당들이 정책을 기반으로 해서 유권자 의견을 모으고 연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진보신당이 연대에 비판적이다.
진보신당이 빠져도 4+4가 합의되면 연대가 되는 거다. 사람들 사이에 안될 거라는 전망이 우세한데, 되면 생각 밖으로 되는만큼 효과도 크다. 보궐선거를 보면 여론조사 추이하고 실제 투표결과가 12% 가량 차이가 났다. 자발적 동원력이 야당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15%까지는 지고 있어도 이길 수 있다고 본다. 한명숙 전 총리가 무죄 선고를 받고 단일후보가 되면 여론조사 상에서는 비슷비슷해질 거다.

경기도에서 단일 후보가 나와도 김문수 지사에게 20% 포인트 이상 지던데.
우리가 (받아) 보는 여러 여론조사로는 단일후보가 되면 10%포인트 정도 진다. 김진표로 해도 10% 차이, 나로 해도 10% 차이. 10% 차이면 실제로는 이긴다. 문제는 연합이 되느냐 안되느냐지.

영남도 이긴다는 건가?
울산 민노당, 마산․진해․창원 민노당, 경남은 친노 무소속 후보. 그렇게 나가면 이길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한나라당이 이길 수 있는 데가 거의 없다. 국민참여당이 창당할 때부터 연대를 외친 이유가 바로 이런 가능성 때문이다. 창당은 해야 하는데 겁이 더럭 났다. 고민 끝에 “좋다. 창당은 하되, 처음부터 끝까지 민주대연합, 진보개혁연합을 밀고 나가자. 그래야 우리가 고립을 면하고 국민과 대화를 할 수 있다”라고 방향을 잡았다. 참여당이 없었으면 이 연합이 되었을까? 난 회의적이다. 민노당 진보신당만 있었으면 민주당이 깔아뭉갰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나는 참여당이 당은 조그맣지만 접착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 자뻑하는 건가? 

참여당을 분열의 주역으로 보는 민주당이 들으면 기가 찰 논리다.(웃음)
연합을 안 한다고 하는 순간, 우리가 죽기 살기로 출마를 시킬 거다. 그러면 민주당도 힘들어진다. 지지기반이 많이 겹치니까.

ⓒ시사IN 안희태유시민 전 장관은 이번 지방 선거에서 '노무현 바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역단체장은 경쟁력으로, 기초단체장은 민주당이 10여곳 양보한다는 잠정안에 동의하나?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여러 세력이 모여서 이 정도 합의를 했다는 건 대단히 큰 진전이다. (진보신당이) 경쟁 방식 자체를 안 받아들인다는 건 곤란하다.

노회찬 심상정 두 후보가 양보하면 얻을 수 있는 자리가 마땅치 않다고 보는 것 같다. 
그건 얼마든지 협의할 수 있다. 이를테면 7월 은평을 재선거를 진보신당에 맡기는 방법도 있다. 그게 밀실야합인가? 연대라는 큰 틀에서는 어떤 논의도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있다.

은평을 심상정 전 대표에게 주자는 건가?
심상정 대표가 되었든 노회찬 대표가 되었든. 진보신당이 이런 얘기 들으면 화낼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것도 하나의 안이 될 수 있지 않겠나.

완주의 유혹이 강할 수도 있다.
연합에 들어오지 않으면 완전히 고립될 거다. 득표율도 아주 미미할 거고. 지금 국민 여론은 이런 거다. “이명박 정권이 뭘 잘못한 것 같기도 하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지금이라도 잘해주길 바라고.. 그런데 국회의원도 많이 주고 지방자치도 다 내주니깐 너무 하는 것 같다. 이번에 견제를 하거나 최소한 혼은 좀 내야한다.” 그래서 야권에 대고 막말로 “야 단일화해, 그럼 찍어줄게. 아니면 너희 다 죽어.” 이런 건데, 이걸 합당한 이유 없이 정면으로 거부한다면 몰매를 맞을 거다. (진보신당) 광주시당의 윤난실 위원장이 ‘난 도청에 남겠습니다’라는 글에서 연합을 하지말아야 할 이유 5개 썼던데, 지금 연합하지 말아야할 이유를 찾으라면 100개는 될 거다. 해야할 이유는 딱 하나고. 그런데 그 한 개의 이유를 국민이 절실히 원하기 때문에 100가지 다 제끼고 연대를 해야 하는 거다.

유시민 전 장관도 은평 출마설이 나왔었는데.
호사가들 얘기다. 대권 나가려면 은평을에 나가서 원내로 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할 생각도 없고 의미 있다고 보지도 않는다. 게다가 은평으로 가려면 이사까지 가야 하는데, 사천부터 가능하겠나?

사천?
사모님 공천. 참여당은 공천은 쉽고 사천은 어려운 당이다. 공천은 후보가 워낙 없어서 누가 나가겠다고 하면 박수치고 돈 모아주겠다는 분위기고, 사모님 공천은 작은 정당이라 당선 가능성이 약하기 때문에, 사모님들이 반대를 한다. 그러니 지금 사는 데서 경기도지사 나가는 것도 사모님 공천 받기가 쉽잖은데, 이사까지 하면서 나간다? 그거는...(웃음)

이제는 경기도지사 단일화 방식이 문제다.
이리하나 저리하나 비슷하지 않겠나. 지금까지 ‘희망과 대안’에서 잘 조율을 해왔기 때문에 믿고 가면 된다. 나는 거기에서 합의가 나오면 무조건 따를 생각이다. 결과도 무조건 따른다.

왜 경기도지사로 나왔나?
일단 재미있을 것 같다. 경기도가 농촌․도시․대북접경지역․바다 등이 다 있는 대한민국 축소판이기 때문에 일도 많고, 도지사가 국회의원이나 장관 보다 의사결정권의 범위가 훨씬 넓기 때문에 보람도 더 클 것 같다. 두 번째는 국민참여당을 여하튼 비바람이 쳐도 떠내려가지 않을 정도로 키워야 한다. 그러려면 유권자에게 어느정도 호소력 있는 후보가 선거에 모두 나가야 한다. 그리고 세 번째는, 경기도를 이대로 놔두면 질 것 같았다. 서울은 한명숙 전 총리로 커버가 되는데, 경기도는 기존에 하시던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아무 쟁점도 변화도 없이 쭉 가다가는 김문수 지사에게 내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시사IN 윤무영유시민은 고심 끝에 경기도지사 출마를 결심했다. 그에게 요즘 최대 화두는 야권 연대이다.
준비 안된 출마 아닌가? 당에서는 서울시장 후보로 이름을 올렸었는데. 
난 오래전부터 한다면 경기도가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왔다. 그런데 당에서 하도 서울 나가라고 해서 말은 못하고 끙끙 앓다가 3월초에 “서울은 죽어도 못하겠다. 아무리 정당의 논리가 있지만 한 전 총리가 어려움에 처해있는 판국에 이거는 도저히 안 되겠다”라고 당에다 선언했다. 그때서야 당에서도 경기도를 검토하기 시작했고, 당초 3월10일로 출마 후보자들 발표가 잡혀 있어 급하게 함께 하게 된 거다.

왜 대구가 아니라 경기도냐는 공격이 많다.
그 이야기는 안 하는 게 좋을 거 같다. 대구에서 출마하길 바라는 분들께는 못 나가서 죄송하다고 말하고 끝내야지.

민주당에 안티 유시민 정서가 강한데, 과연 후보를 내줄 수 있을까?
약속을 하고 경쟁을 하면 그 결과를 받아들일 것이다. 정치인들이 그렇게 엉터리는 아니다.

참여정부에서 함께 일한 김진표 전 부총리도 공격에 나섰다.
그 분 진짜 점잖은 분인데, 깜짝 놀랐다. 김 의원 처지에서 보면 참 억울할 거다. 총선 끝나자마자 캠프 꾸려서 1년6개월 동안 준비를 해왔는데, 뜬금없이 2월에 창당한 당이 후보를 내고 지지율도 더 나온다하면 이해도 안 되고 용납도 잘 안 될 거다. 하지만 정치가 그런 거다. 이걸 이겨내야 진짜 위력 있는 김진표가 된다. 유시민을 이겨서 유시민이 선대본에 있는 김진표 하고 그냥 김진표는 급이 다르다. 나 역시 그냥 유 아무개가 아니라, 김진표 의원을 이겨서 단일후보가 되고 그 분이 선대본에 오시면 훨씬 더 경쟁력 있는 후보가 된다. 피차간에 비슷하니깐 리스크를 걸고 경쟁을 해보는 거다.

‘유시민은 충성표도 있지만 안티가 더 많아서 득표에 한계가 있다’는 게 경쟁자들의 논리다.
그건 내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선거전은 그걸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고. 선거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평가를 다 끝내서 ‘누구는 이만큼이고 누구는 이만큼이다’라고 규정하려면 선거를 뭐하러 하나.

경기도선거의 핵심 쟁점은 뭐가 되리라고 보는가? 무상급식이 이미 떠올랐는데.
무상급식이라는 게 보편적 복지인데, 그게 쟁점이 될 거다. 교육뿐만 아니라 보육, 노인복지 등 전반적으로. 균형발전 문제도 있고.

무상급식 논란은 오늘 김상곤 교육감을 만나 ‘찬성’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종결된 건가?
아니 어떻게 무상급식을 당장 전면적으로 실시할 수 있나. 돈도 문제려니와 학교에서 급식을 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 인프라를 갖추는 데 시간이 굉장히 걸린다. 그래서 ‘점진적’이란 표현을 쓴 건데, 이종걸 의원이나 심상정 후보가 그 뜻을 몰라서 날 공격한 게 아니다. 뻔히 알면서 너무하대. 친구 사이에.

보건복지부 장관까지 했지만 복지 이슈를 선점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참여정부가 통째로 복지한 게 없다고 부정을 당하는데 어찌 하겠나? 요새 역동적 복지국가니 한겨레신문에서 엄청 띄우는 복지국가 소사이어티니 하는 내용이 대부분 사회투자정책과 관련된 거다. 그런데 내가 2030 정책에서 그걸 발표했을 때는 진보학자들이 다 밟아버렸다. 그래놓고 지금은 참여정부가 낸 정책을 거의 그대로 쓰고 있는데, 글쎄 좀 더 두고 봐야겠다 그런 방식으로 될지.

ⓒ시사IN 윤무영‘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재단’출범 축하 공연을 연습하는 유시민 전 장관.
지금 진행되는 복지 담론에 불만이 많은 듯하다.  
아니 해밀턴 보고서가 별건가? 그게 2030이랑 뭔 차이가 있나. 다 같은 문제의식인데, 자기 나라 대통령이나 집권당이 만든 건 아주 쓰레기 취급하고 우리한테 직접 원용할 수도 없는 것들은 굉장히 떠받들고 있다. 미국에서 그 책 쓴 사람들은 대부분 클린턴 행정부나 고위직에 있다가 퇴직한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이 쓴 책은 대단한 정책보고서인 것처럼 하고, 보건복지부 장관이 쓴 책은 정치인이 쓴 거니깐 믿지 말라고 하고. 그게 무슨 태돈가? 내용을 들여다봐야겠지만, 나는 그런 방식으로 의제화하는 건 별 효과가 없다고 본다. 확고한 정치세력이 없으면 담론이라는 건 금방 흘러간다. 

참여정부 때 2030 정책을 집행 못한 것도 정치세력의 뒷받침이 없어서인가?
물론이다. 왜 사회투자 정책으로 바꿨겠나? 진보는 ‘사회’라는 걸 좋아하고. 보수는 ‘투자’를 좋아하고. 그래서 “어떻게하면 보수담론이 지배하고 있는 미디어 환경을 뚫고 복지지출 확대를 도모할 거냐”는 고민을 하다 프레임을 그렇게 짠 거다. 보건정책도 건강투자정책으로 바꾸고,  복지정책도 사회투자정책으로 바꾸고. 어떻게든 우파 쪽에서 경계심을 덜 가지게 하려고. 그것 때문에 내가 시장주의자로 찍혀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는데, 나는 진보 쪽이 균형 감각이 부족하다고 본다. 의료보험 가지고 의료단체 200개가 최악의 복지부장관으로 선정하고, 국민 불신임장을 주고. 의료 급여 약간 불편해진 거 있지만 거기서 무슨 문제가 있었나? 거기서 연간 1조원 넘게 절감이 되어 아동복지 같은 쪽에 얼마나 돈을 많이 썼는데. 진보는 정권을 잡고 있는 사람들의 말을 무조건 안 믿는다. 장관실에 모셔다가 1시간씩 2시간씩 토론을 하는데 “그런 걸 어떻게 믿냐”고 한다. 그럼 가시라고, 내 말을 못 믿으면 뭘 이야기하러 오셨냐고 하면서 목소리를 높이곤 했는데, 다수가 반대하면 정말 어렵더라.

“좌측 깜빡이 넣고 우회전한다”는 게 진보진영의 비판이다.
좌측 깜빡이 넣고 우회전한 게 아니고, 좌회전을 하긴 했는데 90도로 못하고 직진 비슷하게 좌회전을 한 거다. 이게 진짜 그 사람들 말처럼 잘못된 거라면, 참여정부가 망했을 때 좌파가 떠야지 왜 안 뜨냐고. 그리고 노무현이 지지율 낮아서 실패한 대통령이면, 지지율이 5%도 안 되는 정당은 뭔데. 그런 기준을 가지고 성공과 실패를 논하지 말자는 거다.

도지사가 되면 다음 대선 후보는 안 나간다고 봐야 하나?
되면 어렵다고 봐야지. 근데 뭐, 대선을 꼭 해야 하나?

야당의 유력 후보인데?
도지사도 이렇게 시끄러운데, 내가 대선후보 한다고 하면 어쩌겠나? 끔찍하다(웃음).

경기도지사 출마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유시민의 다음 목표는 대선’이라고 본다.
(노무현 전) 대통령 돌아가시고 갑자기 지지율이 두 배로 뛴 건데, 도지사 출마를 했으니 이제 내려갈 거다. 기대조정이 되니깐. 대선 지지율은 내려가고 도지사 지지도는 올라가고. 근데 대선, 그거 참 생각하기도 무섭다. 사람들은 이미지 관리 잘해서 2012년에 어쩌고 하는데, 그 지지율이 그거 하라는 주신 지지율일까? 유산인데, 그걸로 재테크하라고 주신 걸까? 많지도 않다. 15% 왔다갔다하는 지지율이면 (대통령이) 될 수도 없고, 무시하기도 아까운 수준이다. 한 6개월 고민했는데, 이걸로 이미지 관리하고 개인 지지율 관리하는 건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거랑 똑같고, 진짜 투자는 실물분야의 기술력이라던가 이런 걸 개척해야 되는 거라고 결론 내렸다. 사실 참여당 만들 때 난 “엄두가 안 난다.

이런 당이 필요하긴 한데 일을 벌였다 잘 안되면 누가 책임지나. 나는 못 하겠다” 했더니, 우리끼리 시작할 테니까 될 법하면 오라더라(웃음). 그래서 당이 만들어지긴 했는데 이게 영 비실비실했다. 당원도 한 5~6천명 밖에 안 되고. 그 무렵 확실하게 판단한 게 “(이 지지율은) 재테크하라고 준 게 아니고 사업을 하라고 준 거다.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드는 데 이걸 쓰자” 였다. 그런데 그 지지율이 유시민 이름으로 등기가 되긴 했지만 나 혼자 받은 게 아니잖은가. 집단으로 받은 종가 땅 같은 걸 지가 홀랑 벤처에 투자해버리니까 다른 분들이 화가 나신 거다. 화를 내시는 게 너무나 당연한데, 그래도 할 수 없다.(웃음)

그렇게 투자한 벤처가 아직은 지지를 별로 못 받고 있다.
지금은 장외 거래 단계니깐. 이번 지방선거에서 처음으로 코스닥에 상장해보려는 거고, 앞으로 코스피까지 가려는 거다. 그래도 액면가보다는 거래가가 높지 않나.

이번 지방선거에서 ‘노무현 바람’이 불 거라고 보나?
현상적으로 노무현 바람이 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현상을 만들어내는 흐름은 좀 다른 거다. 우리 마음 속에는 사실 노무현도 있고 이명박도 있고 다 있다. 때론 노무현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때론 이명박이 팍 터져 나와서 압승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자기 마음속의 자신과 싸우는 것일 수도 있는데,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가 각자의 마음 속에서 벌어지는 싸움의 양상을 변화시킨 거다. 중요한 건 사람들은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하고, 더 좋은 사회를 바라고, 사회도 잘 되고 나도 잘 되기를 바라는 건데,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지금 이대로는 아닌 것 같다’라는 번민, 고민, 성찰 등이 종합적으로 표출되지 않을까싶다. 그게 1주기를 맞아서 노풍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런 건 비단 노무현 대통령 하나만으로 일으킬 수 있는 건 아니고,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재해석, 민주정부 10년에 대한 재평가 이런 것들이 다 함께 진행되면서 흐름이 만들어지는 거다. 정확히는 반 MB도 아닌 것 같고, 뭐라고 잘 표현이 안 된다.

ⓒ뉴시스유시민 전 장관은 곧 노무현 재단이 엮고 자신이 쓴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를 출간할 예정이다.
야권에서는 노무현 바람에 큰 기대를 거는 듯하다.
나는 없을 거라고 본다. 노무현 대통령이란 존재는 이제 많은 국민들 가슴 속에서 정리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 이 분의 등장과 퇴장 그리고 죽음의 전모를 다 알지는 못하지만 각자가 목격하고 겪었던 부분을 통해 나름대로 소화하고 정리하고 해석하고 그렇게 애도와 작별을 조금씩 해나가는 과정에 있다. ‘수백만으로 부활하라’는 칼럼도 봤지만, 절대 그렇게 되지는 않을 거다. 

노무현 정신의 계승자가 누구냐를 놓고 민주당과 국참당이 싸우는 것도 큰 의미가 없겠다?
의미가 없다. 민주당이 먼저 노무현 가치에 대한 공격을 했는데, 두 달 넘게 공격을 받으면서 한마디도 안했다. 그러다가 라디오 인터뷰 중에 무심코 “민주당은 노무현 정신과 별로 상관이 없는 정당”이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온 거다. 표현이 지나쳤는데, 하지만 민주당이 노무현 정신의 계승을 이야기 하려면 좀 더 엄정한 자기 성찰이 있어야 한다. 나는 대중적인 행사나 정치 발언을 할 때 오히려 노무현 정신을 입에 잘 안 올린다. 그런데 민주당 분들은 입만 열면 노무현 정신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를 공격한다.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한다는데,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다는데, 제대로만 하면 왜 안 고맙겠는가. 하지만 제대로가 아니니까 난 그런 소리 들을 때마다 모욕감을 느낀다.

‘노무현’이란 상징을 서로 독점하고 싶은 거 아닌가? 
우리만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다고 주장한 적도 없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각자 나름의 방식대로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면 된다. 참여당은 오히려 우광재 좌희정도 없고, 참여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분들도 없다. 이름 없이 자원봉사했거나 2002년 이후 대통령을 돕게된 사람들이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한 노무현을 구현해보려는 거다. 유시민이 없어도 이 당은 노무현 당이다. 이 말도 참 조심스럽다. 또 민주당 공격으로 보일까봐. 한참 연대하고 있는데(웃음).

‘노무현 자서전’ 집필은 끝났나?
원고는 끝났고, 제작 과정에 들어갔다. 4월26일경 나올 예정이다. 지난 5개월동안 노 대통령의 각종 녹취자료, 자필기록 등을 계속 들여다보려니까 굉장히 우울해지더라. 눈 덮인 펜션에 처박혀 3~4일 햇반만 데워먹으며 버틴 적도 있는데 아예 밖에 나오고 싶지가 않았다. 누가 특별히 밉거나 원망스럽다기 보다 그냥 세상이 싫었다. 그 와중에 자꾸 서울시장 나가라니깐 참...

제목은 정해졌나?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 노무현 재단 엮음, 유시민 정리.

노 전 대통령과 다시한번 대화를 하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겠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나, 어머니 배에서 나올 때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쭉 추적을 했는데, 세상이 참 비정하더라. 세상이 너무 너무 무섭다는 느낌을 굉장히 강하게 받았다. 비슷한 표현을 문재인 실장님도 한 적이 있는데, “사람들의 악의가 무섭다”라고, ‘악의’까지는 안 가더라도 암튼 (세상이) 굉장히 무섭다. 그래서 예전과 같은 몰입은 안될 것 같다. 2002년 그때는 참 열정이 있고 낭만적이었는데, 그런 열정과 낭만이 다시 살아나기는 어려울 거 같다.

너무 비관적 아닌가?
낭만이 좀 부적절한 표현 같은데, 한마디로 로맨티시즘이다. 우리말로 하면 폭풍과도 같고 성난 파도와도 같은.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의 등장과 서거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가 나이가 팍 들어버렸다는 느낌이 든다. 대한민국이 한 단계 늙어버렸다. 내부의 에너지가 팍 꺼져버린 것 같은. 내 자신도 좀 그렇고. 예전에는 사람들이 돌을 던지면 막 분이 나서, “이 사람들이 왜 이러지”하면서 끝까지 따지고 들었는데, 지금은 ‘저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며 상처를 별로 안 받는다. 예전에는 그 사람 입장에 서 봐도 이해가 안 되었는데.

유시민다움이 없어지는 건가?
2002년 대선 때나 2004년도 총선에서는 무엇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꾀를 내고 전략을 짜서 지금의 약한 흐름을 강화시켜내고 없는 걸 만들어 내야한다는 조바심이 강했다. 지금은 그럴 힘도 없고 그럴 세력도 없다. 이제는 이미 국민 속에 존재하고 있는 어떤 것에 부응하면 된다고 본다. 이미 존재하는 어떤 큰 흐름과 교감하면 내가 될 것이고, 거기에 부적합하면 안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해보는 거다.

이빨 빠진 유시민, 매력 없는데...(웃음)
좋게 말하면 성숙해졌고, 뉴트럴(중립)하게 말하면 기가 죽은 거(웃음). 도지사가 꼭 되고 싶은데, 그 조류를 타고 싶은 거다.

(4+4 연대 결렬 소식이 전해진 후) 합의문 서명이 민주당의 거부로 미뤄졌다고 한다. 
서울 경기도 후보 결정 방식에 구체적인 게 없다는 것이 이윤데, 광역 경쟁에서 걸리는 데가 사실상 경기도 밖에 없지 않나? 나 때문인가? 유아무개를 연합의 걸림돌로 만들기 위해?

민주당의 기득권 포기가 쉽지 않을 거다.
경기지사 단일화가 진짜 볼만한 게임인데. 흥행도 되고. 참 난감하네. 다 된 걸로 생각했는데.

단일화 전망이 어두워진 건가?
아이고~ 안 되면 다 죽는다. 이 만큼 온 것도 민심이 무서워서다.

기자명 이숙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ok@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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