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가 제일 듣기 싫은 말 가운데 하나가 ‘88만원 세대’란다. 김연아가 금메달을 따면서 붙기 시작한 ‘G세대’니 ‘88둥이’도 정작 20대는 시큰둥한 표정이다. 386세대가 익숙했던 잣대로 88만원 세대니, G세대니, N세대니 따위로 자신들을 규정짓는다며 20대는 달갑지 않은 표정이다. 규정 당하기를 거부한 20대가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고려대 김예슬씨 자퇴 선언을 시작으로 20대 노조인 청년유니온이 결성됐고, ‘마포는 대학’ 이나 ‘율면은 대학’ 등 돈에 구애 받지 않는 행복 직업 찾기도 시작됐다. 도대체 20대 넌 누구냐? 20대 기자가 20대의 다양한 삶 속으로 뛰어들었다.

글싣는 순서 1)“386세대! 지갑은 열고 입은 닫아”

2)깨어라 20대! 굴레를 벗어 던져라! 3)농촌에 취직한 리얼 청춘불패!

대학 이름, 자격증, 토익 점수…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 고민할 틈도 없이 바쁘게 살아 왔는데도 정작 일할 곳이 없다. 경쟁에 내몰려 소통 할 사람도 없이 외롭고 고독한 채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을 얻었다. 청년 실업률이 사상 최고라는 뉴스를 보며 “나만 이렇게 사는 건 아니구나”라고 자조하는 것도 하루 이틀. 그러고 보니 이건 모두 ‘도시’에서 생긴 일들 이었다. 뜨악.

하자센터가 인큐베이팅 한 예비 사회적 기업 콩세알ⁿ(시민지원농업·kong3al.net 참조)이 그런 ‘88만원 짜리’ 청년들에게 물었다. “율면은 대학(yul-univ.tistory.com)으로 올래?” 그래 어느 광고 카피처럼 생각을 뒤집자 ‘올레!!’

콩세알ⁿ농장이 있는 경기도 이천 율면을 ‘대학’으로 만드는 ‘두근두근 프로젝트’가 첫 발을 뗀다. 율면에서 살 한옥을 고치고 있다.
이 거대한 도시의 사이클에서 빠져나온 청년들이 농촌으로 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콩세알ⁿ농장이 있는 경기도 이천 율면을 ‘대학’으로 만드는 ‘두근두근 프로젝트’가 첫 발을 뗀다. 율면이라는 지역에서 만나는 사람과 공간을 이용해 농사를 배우고, 청년들의 네트워킹도 이뤄지게 된다.

‘율면은 대학’의 두 기획자 임나은(29)·박진경(31)씨의 마음도 한껏 부풀었다. 율면은 대학은 ‘촌에서도 먹고 살 수 있다’를 보여주려 한다. “20대를 ‘88만원 세대’라고 하잖아요. 88만원밖에 못 벌어서 불행한 게 아니라, 88만원만 벌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어요. 짱돌 대신 ‘농기구’를 드는거죠” 윤나은·박진경씨가 입을 모아 말했다.

3월20일 신고식 겸 마을잔치를 시작으로 청년 10여 명이 율면으로 간다. 이들을 맞을 율촌에 사는 귀농 15년차 ‘농부 교수님’인 권순호씨는 4월부터 11월까지 수업계획서(농사계획서)를 짜느라 여념이 없다. 여느 시골과 똑같이 노인들이 70~80%인 율면은 도시 청년들의 이주에 반가운 기색이란다.

이들은 주로 농사를 배우고 짓겠지만, 마을 인문학 강좌도 열 계획이다. 율면에 있는 중·고등학생 20여 명과 ‘마을 캠프’ 따위를 열어 재밌게 놀 수 있는 방법도 생각하고 있다. 지역농산물로 음식을 만들어 파는 ‘율면 레스토랑’은 또 어떨까? 도시를 떠나 농촌에서 살겠다고 하니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그러나 일단 개강달인 4월에는 마을 어르신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마을 길 구석구석을 걷는 등 ‘마을과 사귀는 일’을 주로 할 작정이다.

3월17일 오후 콩세알 준비모임에 참여한 ‘학생’들은 기대감과 두려움을 숨기지 않았다.
3월17일 오후 열린 준비모임에 참여한 ‘학생’들은 기대감과 두려움을 숨기지 않았다. 등록금 빚만 2500만원이라는 대학 졸업반 홍선미씨(24)는 “농사지어서 먹고 살 수 있을까? 내가 농촌으로 가는 건 도피성이 아닐까? 농촌에서 지낼 수 있을지 고민해 보고 싶다”라며 속내를 털어 놨다. 고등학교 졸업 후 주로 ‘공돌이’로 살아 온 염 아무개씨(31)는 “도시에서 이룬 게 없다. 비슷한 또래와 함께 일을 벌려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신선한 시도다”라고 말하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너른 땅에 일할 곳도 있고, 마을에서 제공하는 마을회관에서 잘 수도 있다. 그러나 당장 수입을 내는 일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1년 농사를 지어봐야 알 수 있다. 박진경씨는 “쓰는 비용을 최소화 할 겁니다. 시간이 좀 지나면 배운 농사기술로 우리만의 텃밭을 가꿔 도시와 직거래를 할 수도 있을 것이고, 막걸리를 만들어 판매할 수도 있겠죠?”라고 말했다.

율면은 대학은 청년 귀농 프로젝트이다. 농촌에서 떼돈을 벌겠다는 게 아니다. 도시에서 길들여진 삶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돈으로 움직이지 않는 삶을 살아보려 한다. 마종기 시인의 〈이 세상의 긴 강〉은 어쩌면 율면의 대학이 지향하는 삶의 모습이다.

나는 몸을 송두리째 내어놓고 무성한 나뭇잎의 호흡법을 흉내 내어 숨쉬기 시작했다. 마침내 나는 내 살까지도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숨 쉬는 몸이, 불안한 내 머리의 복잡한 명령을 떠나자 편안해 지기 시작했다. (마종기, 〈이 세상의 긴 강〉 中)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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