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가 제일 듣기 싫은 말 가운데 하나가 ‘88만원 세대’란다. 김연아가 금메달을 따면서 붙기 시작한 ‘G세대’니 ‘88둥이’도 정작 20대는 시큰둥한 표정이다. 386세대가 익숙했던 잣대로 88만원 세대니, G세대니, N세대니 따위로 자신들을 규정짓는다며 20대는 달갑지 않은 표정이다.

규정 당하기를 거부한 20대가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고려대 김예슬씨 자퇴 선언을 시작으로 20대 노조인 청년유니온이 결성됐고, ‘마포는 대학’ 이나 ‘율면은 대학’ 등 돈에 구애 받지 않는 행복 직업 찾기도 시작됐다.

도대체 20대 넌 누구냐? 20대 기자가 20대의 다양한 삶 속으로 뛰어들었다.


글싣는 순서

1)“386세대! 지갑은 열고 입은 닫아”
2)깨어라 20대! 굴레를 벗어 던져라!
3)율면은 대학-행복 직업 찾기에 나선 20대


청년유니온 김영경 대표(왼쪽)

“청년세대의 권익을 위해 행동 하겠다”
처음으로 직종이 아닌 세대별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이 떴다. 지난 3월13일 창립총회를 열고 첫발을 디딘 청년유니온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김영경 대표(29)의 수첩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방송사부터 일간지·주간지 릴레이 인터뷰 약속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김씨는 “‘언론폭탄’을 맞고 있다”라고 말하면서도 싱글벙글했다.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을 온 김영경씨는 자취생활을 했다. 값싼 자취방을 구하다보니 외풍이 심했다. 빠듯한 생활비에 보일러를 켤 수도 없어 전기장판에 누워 자다 보면 코가 시려왔다. 마땅한 반찬도 늘 부족했다. 고추장·간장에 밥 비벼 먹는 일은 일상이었다. 생활비와 등록금에 질식해 꿈꾸는 것도 힘들었다. 누군가에게는 유행가 가사처럼 낭만적인 대학생활이 김씨에게는 ‘악’ 소리 나는 ‘표류기’였다. 만성적인 청년 실업난에 김씨 표류기는 지난 2005년 졸업 후에도 계속됐다.

‘번듯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그녀가 사회에 둥지를 튼 곳은 학원가였다. 어느덧 학원 강사로 일 해온 지 6년째. 생활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고, 불안정한 노동의 강도는 점점 더 김씨를 짓눌러 왔다. 김 씨는 “나만 그럴까? 주변을 둘러보니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청년실업과 아르바이트 같은 불안정노동에 내몰린 청년들의 현실을 ‘우리 힘으로’ 바꿔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5월부터 지인들 10여명과 준비모임을 갖고 공부해왔다. 카페·트위터를 개설해 회원을 모집하는 한편, 청년인턴 실업급여 문제를 놓고 캠페인도 벌여왔다. 한낱 구직자와 ‘알바생’에게도 ‘노동권’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거리 캠페인과 같은 일회적인 운동보다는 20대 노동조합 결성에 눈을 떴다.

“기존의 노동조합 혹은 시민단체들은 청년이 ‘당사자’가 아니다. 정규직 중심에 연령도 높고 … 아무래도 청년세대에 대한 고민이 적을 수밖에 없고, 그런 기존의 틀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겠구나 생각했다. 청년들이 스스로 참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고 싶었고, 그 결과물이 청년유니온이다.” 20대를 ‘루저’로 만들고 있는 사회도 문제지만, 당사자가 나서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자각도 들었다. 그래서 일을 냈다.

청년유니온이 창립한 지 일주일도 안 됐지만 20대 동지들 지지가 뜨겁다. 카페 노동 상담 코너(익명게시판)에는 아르바이트 급여를 떼인 사연부터, 직장 내 문제까지 다양한 상담 글이 올라오고 있다. 청년유니온의 뜻에 공감한 두 명의 노무사가 이들의 상담을 돕고 있다. 김 대표도 직접 상담에 나선다. 학원 강사로 일하는 와중에 틈틈이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한 김 대표는 회원 2명을 대상으로 진로 상담을 하고 있었다.

청년유니온이 올해 40여개 시민단체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문제는 ‘취업 사교육비’다. 영어 학원비 등 20대 어깨를 짓누르는 취업 사교육비 짐을 덜어보자는 것이다. ‘취업준비생들에게 구직급여를 지급하라!’ 386세대가 보면 기가차고 허무맹랑하게 보이는 구호지만 20대에게는 그만큼 절박하다.

김영경 대표는 “청년유니온의 역할이 투쟁이 중심이 아니었으면 한다. 물론 단체교섭을 하는 등 노조로서의 역할도 해야 되는 순간이 오면 할 것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발전한 나라일수록 개인상담, 맞춤형 서비스가 잘 돼 있지 않나. 노동상담, 직업상담 등 청년 개개인이 처한 문제는 몰라서 겪는 게 많은데, 그런 걸 돕는 역할을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보다 많은 청년들의 ‘아우성’과 ‘상상력’이 세상을 바꿔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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