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5일 열리는 ‘복지국가 제안대회’는 이 행사를 주관한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기획한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의 출판 기념회이기도 하다. 한 민간단체에서 자율적으로 준비한 ‘복지 청사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에서 보육-교육-의료-재정 부문의 내용을 살펴봤다.

최근 아이를 낳은 29세 커리어 우먼 김성실씨는 직장복귀를 앞두고 고민 중이다. 출산휴가 3개월이 거의 지났는데 아이를 키울 뚜렷한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출산 직후엔 2주간 산후조리원에 요양했다. 350만원이란 만만치 않은 돈이 들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산후조리원을 나온 뒤엔 시댁 및 친정 모친이 2달간 번갈아가며 도와주었다.
 

한국에서 아동 1인당 복지 지출비는 연간 44000원 수준이다. OECD 국가평균 2.4%의 24분 1 수준이다.
그러나 김씨가 직장에 나가기 시작하면 누가 아이를 돌볼 것인가. 인근에 구립 어린이집이 있긴 하다. 그러나 생후 1년도 안된 아이를 맡길 수도 없고 등록하기도 힘들며 왠지 미덥지도 않다. 남편은 “이제 직장 그만두라”고 무책임한 소리를 한다. 물론 육아휴직 1년과 월 급여 50만원은 보장되겠지만, 이후의 생활비와 주택융자금 등을 감안하면 어림없는 금액이다. 그래서 ‘아이를 괜히 낳았다’는 죄받을 생각이 들곤 하고…, 정말 한국의 여성 직장인은 사면초가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발간 예정인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의 한 예화지만, 주변에 너무나 흔한 이야기다. 출산율이 현격히 떨어진 10여 년 전부터 정부는 육아휴직제 등의 ‘삐까번쩍한’ 정책 몇 개 내놓고 “낳기만 하면 국가가 키워준다”고 큰소리친다. 그러나 당사자들로서는 정말 가소로운 이야기다. 50만원은 직장인 월 평균 급여의 20%를 조금 넘는 금액인데다, 한국의 기업문화에서 1년 휴직은 치명적이다. 그래서 2006년의 경우, 취업여성 중 23만 명이 출산했으나 육아휴직을 받은 여성은 이중 3.9%에 불과하다. 월 50만원을 그냥 주겠다는데도 직장에 아득바득 나가며, 각자 알아서 보육 문제를 처리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여성들에겐 이나마의 혜택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출산율이 높을 수 있겠는가. 높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점점 더 부부가 모두 일해야 생계를 꾸릴 수 있는 한국에서는 ‘출산포기’가 강요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비해 ‘보편적 복지’의 본고장인 북유럽에서는 출산한 여성 직장인 중 90% 이상이 육아휴직을 누린다. 충분한 이유가 있다.

덴마크 직장여성 올레씨는 산전 6주 전에 직장에서 휴가를 받았다. 이에 더해 산후 1년간 유급휴가를 사용할 예정인데(덴마크는 2년으로 연장할 예정), 평소 월급의 80%가 정부에서 나온다. 또한 성평등 차원에서 유급휴가 1년 중 일부를 남편과 나눠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올레씨의 경우 남편이 3개월 정도의 육아휴가를 사용토록 할 예정이다. 이 기간 동안 남편은 아이를 돌보며 올레씨의 직장복귀를 ‘외조’하게 된다. 직장 복귀 이후에도 크게 걱정이 없다. 매달 아동수당이 나올 것이고, 아이를 맡길 공공 보육원도 많다. 이 보육원에 근무하는 보모들은, 지방자치단체에서 교육과 월급을 받는 준공무원이다. 역시 준공무원인 파견 보모를 집으로 부르는 방법도 있다. 그래서 덴마크에서는 육아가 노인들의 몫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별로 없다. 아이 키우는 일은 국가와 아이의 부모가 할 일이란 것이 상식이다.

이 정도는 되어야 ‘낳기만 하라. 국가가 책임진다’고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러나 한국의 아동복지 예산은 매우 열악하다. 참야정부 당시 GDP 대비 0.2%에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엔 0.1%로 오히려 떨어졌다. 이는 OECD 평균 2.4%의 1/24 수준이다. 아동 1인당 복지 지출비도 한국은 연간 40달러로 프랑스 2162 달러, 독일 1707 달러, 영국 913 달러, 스웨덴 3961 달러에 비해 너무 작다. 이런 상황에서 저출산은 이상한 일이 아니고 당연한 일이다. 북유럽의 출산율이 1.8명인 반면 한국은 세계 최저인 1.19명에 머무르는 충분한 이유다. 이런 ‘강요된 출산포기’를 넘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출산 여성이 편안하게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하는 것이다. 예컨대 ‘일과 돌봄의 양립’을 가능하도록 하는 획기적 사회보장의 확충이다.

그래서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산전․산후 휴가와 육아휴직제를 비정규직 여성으로까지 확대하는 동시에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육아휴직 급여도 단번에 80%까지는 아니라도 최소 생계가 가능할 정도로 ‘현실화’해야 한다는 것. 있으나마나한 육아휴직제에 존재 근거를 부여하자는 소리다.

또한 초등학교 입학 전의 영유아들을 마음 놓고 보낼 수 있도록 보육시설의 질을 높이자고 제안한다. 현재 한국의 보육시설 중 국공립은 5.5%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사설기관들이다. 문제는 사설기관들이 대다수 영세하고 보육의 질도 높지 못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사설기관들은 가격 낮추기 경쟁을 하면서 보육교사의 인원과 처우를 떨어뜨리고 이에 따라 보육 수준까지 낮추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프랑스의 아동 1인당 복지비는 연간 240만원에 달한다. 사진은 프랑스 유치원 모습
이에 대해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내놓는 대안은 우선 공공보육시설의 확대다. 지자체 장에겐 일정한 공공보육시설을 확보하고 이를 공시할 의무를 지우는 것이다. 이렇게 공공시설이 늘어나면 민간시설 역시 보육의 질 향상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부실한 보육시설에 대해서는 퇴출 명령을 내릴 수 있을 정도로 평가인증제를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평가의 주요 기준 중 하나는 보육 교사에 대한 처우다. 임금 수준이 다른 직종의 60%에 불과하고 초과근무 수당도 못 받는 보육교사들이 질 높은 보육 서비스를 제공하기는 어렵다. 이는 제대로 된 사회적 일자리를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다.

 

또한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아동수당의 신설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월 10만원 정도의 아동수당을 단계적으로 확대하자는 것이다. 아동수당은 해외에서는 아동복지의 핵심적 정책수단이라고 한다. 정부 당국자들이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출산과 육아가 정말 시급한 일이라면 전면적 국가지원을 시행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대다수의 선진국은 물론 아시아에서도 심지어 태국, 스리랑카, 이란, 이라크까지 아동수당을 지급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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