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가 푹 꺾였다. 3월4일 오전 9시20분, 김재철 MBC 신임 사장은 정문 앞을 막아선 MBC 노동조합 조합원들을 향해 90도로 인사하고 3분 만에 돌아섰다. 전날 ‘천막 집무실’까지 차려 업무보고를 받던 모습과는 달랐다. 이근행 MBC 노조 위원장은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개혁 없이 낙하산 사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라며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상황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낮 12시 “MBC 노사가 합의했다”라는 소문이 트위터를 통해 퍼졌다. 저녁 7시 MBC 앞에서 열기로 한 촛불문화제도 취소됐다.
이날 오전 11시 김재철 사장은 MBC 본관 10층에 있는 사장실 ‘입성’에 성공했다. 사장실에서 김재철 사장은 이근행 위원장과 40여 분간 만났다. 그 자리에서 김 사장은 방문진이 선임한 황희만 보도본부장·윤혁 제작본부장의 보직을 철회하겠다는 ‘승부수’를 던졌다.
노조로서는 예상치 못한 제안이었다. 내부에서는 총파업을 하더라도 얻어낼 수 있는 최선이 바로 섭정 인사인 황희만·윤혁 두 본부장의 인사 철회로 여겼기 때문이다. MBC 한 PD는 “김재철 사장이 이명박 대통령과 가깝긴 하지만, ‘특보’ 같은 정치적 동지가 아닌 ‘MBC맨’이다. 사퇴까지 주장하긴 어렵지 않나”라고 말했다. 또 다른 PD 역시 “이번 싸움으로 얻어낼 수 있는 최선이 황희만·윤혁 본부장의 사퇴라는 것이 MBC 내부의 공감대였다”라고 말했다. 구성원 다수가 ‘마지노선’으로 생각하고 있던 두 본부장에 대한 인사문제를 다름 아닌 김재철 사장이 먼저 꺼낸 셈이다. 그러나 김재철 사장이 노조에 제안한 인사안은 김우룡·최홍재·차기환 등 방문진 여당 쪽 이사와도 갈등을 빚었다.
3월4일 오후 3시 열린 이사회 회의실 안은 고성이 오가는 등 소란스러웠다. 두 본부장의 보직 박탈이 방문진과 사전 협의 없이 이뤄진 김재철 사장의 ‘단독 플레이’였던 셈이다. 믿었던 김재철 사장에게 방문진 여당 쪽 이사들은 ‘뒤통수를 맞았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여당 쪽 이사들은 “사전 협의 없이 방문진이 선임한 이사를 교체하려는 것은 권한침해다”라며 김재철 사장의 인사안을 반대했다. ‘전선’은 김재철 사장 대 방문진 여당 쪽 이사들로 옮겨갔다.
방문진 여당 쪽 이사 "김재철 사표 받자"
한 방문진 이사는 “김재철 사장은 본인의 인사안이 통과되지 않아 출근하지 못하면 ‘삭발이라도 하겠다’라고 맞섰다”라고 전했다. 일부 방문진 이사들은 김재철 사장에게 ‘사표’를 받자는 말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급기야 보수단체인 MBC정상화추진국민운동연합은 “김재철 사장이 백주에 배신을 시도하고 있다. 노조와의 야합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반발과 상관없이 김재철 사장은 3월5일 MBC 전 계열 사장의 사표를 받았다. 자신의 뜻대로 인사를 하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이 같은 김 사장의 ‘단독 플레이’를 두고 MBC 한 관계자는 “방문진을 통하지 않고도 MB에게 ‘직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라고 풀이했다.
11일 방문진과 김 신임사장의 힘겨루기가 ‘실세 사장’ 판정승으로 끝났다. 김 사장은 11일 황희만 보도본부장을 특임이사로, 윤혁 제작본부장을 특임이사 및 프로덕션 사장으로 임명했다. 방문진은 김 사장이 노조와 합의한 두 본부장 교체를 문제 삼아왔다. 특히 김우룡 위원장 등 여당 쪽 위원들은 “방문진 권한을 침해한 인사”라며 반발했다. 지난 10일에도 김 사장과 방문진의 힘겨루기는 계속되어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결국 김 사장은 두 본부장의 MBC 이사직을 유지하면서도 보직을 변경하는 절충안을 택했다. MBC 노조도 정상화에 합의했다. 이르면 다음주께 김 사장의 취입식이 있을 예정이다.
이근행 위원장은 “방문진 ‘직할통치’의 상징인 두 본부장 사퇴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해 (김재철 사장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라고 ‘노사합의’의 배경을 설명했다. MBC 노동조합 앞에는 '낙하산 퇴진'보다 더 구체적인 숙제가 남았다. 김재철 사장은 〈PD수첩〉 진상조사위원회 설치 및 단체협약 개정 의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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