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칠레·파키스탄·필리핀·대만…. 올해 들어 무시무시한 강진이 발생한 나라들이다. 연초부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지진이라니, 전례 없는 일이다. 바다 건너 일이지만 불안한 의문이 커진다. 지구의 지각 운동에 드디어 이상이 발생한 건가? 한반도는 지진에 안전한가?

결론부터 말하면, 최근의 강진들은 지각의 이상 운동 탓에 발생한 게 아니다. 단지, 우연의 산물일 뿐이다. 지구의 지각 운동은 몇 년 사이에 급격히 변화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지각 변동은 몇십만 년 주기로 움직인다. 때문에 지진이 갑자기 늘거나, 강도가 갑자기 강력해지지 않는다”라고 신진수 지진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말한다. 실제, 지난 30여년간 지구에서는 매년 17~20여 차례 강진이 발생했다. 그런데도 피해가 적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지진이 사람이 없는 수백km 해저나 지하에서 일어난 덕이다.

올해 큰 지진이 유난히 잦을 것이라는 전망도 없지 않다. 홍태경 교수(연세대·지구시스템과학)에 따르면, 강력한 지진이 일어나면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발생하고, 그 에너지가 진앙 주변 지역에 축적되어 지진 발생 확률이 올라간다. “1960년대와 2004년에 실제 그같은 일이 일어났다”라고 홍 교수는 말했다.

그렇다면 한반도는 지진에 안전할까. 단답식로 답하면 “그렇다”가 맞다. 그러나 ‘지금은’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가까운 미래 혹은 먼 미래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한반도가 판과 판이 마찰하는 지역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 안온함이 불안감으로 바뀌고 있다. 태평양판가 필리핀판이 한반도가 속한 유라시아판 밑으로 파고들고(태평양판은 백두산 밑에까지 들어와 있다), 인도·호주판이 유라시아판을 동쪽으로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27일 발생한 규모 8.8의 칠레 지진(사진)은 아이티 지진보다 800배나 강했다. 그러나 내진 설계를 잘한 덕에 비교적 피해가 적었다.
이처럼 판과 판이 자꾸 마찰하거나 비껴가면 에너지가 발생하고, 그 에너지는 각 판에 축적되어 결국 언젠가 지진 등으로 해소되어야 한다. 그같은 큰 움직임으로부터 한반도도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게다가 한반도가 속한 유라시아판과 그 주위의 필리핀판·남태평양판·북미판의 ‘4각 구도’가 만들어내는 응력(서로 미는 힘)도 언제 어떻게 한반도에 압력을 가할지 모른다.

만약 가정이 현실이 되어 한반도에 지진이 일어난다면 어느 지역이 가장 먼저 뚫릴까. 지진 전문가들마다 꼽는 지역이 다르다. 지질구조학적으로 분석하는 학자들은 활성단층이 있는 양산, 울산, 부산, 경주 일대를 위험 지역으로 꼽는다. 그러나 강진이 일어난 곳을 위험하다고 보는 학자들은 규모 5.0 이상의 지진이 발생했던 백령도·지리산·영월·속리산·울진 일대를 지진에 가장 취약한 지역으로 꼽는다(전문가들은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반면, 필리핀판의 강력한 추력을 걱정하는 학자들은 그 힘의 영향을 받는 충남·경기·서울·강원 일부 지역을 짚는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인구의 5분의 1 이상이 몰려 있는 서울은 비교적 안전하다는 사실이다(게다가 지반 대부분이 화성암으로 되어 있어 지진이 일어나도 비교적 흔들림이 적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지금까지의 자료를 근거로 한 추정일 뿐이다. 예측을 불허하는 지각 운동이 서울을 뒤흔들 경우 그 피해가 어느 지역보다 심할 것이다. 만에 하나 그럴 경우 가장 취약한 지역은 어디일까?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강 수계를 따라 형성된 단층 지역이다. 특히 요즘 최고가 아파트들이 줄지어 서 있는 ‘퇴적토 지역’이 가장 위험하다. 퇴적토 위에 형성된 멕시코시티가 비교적 작은 규모의 지진에도 크게 요동치듯. 1999년 서울시가 작성한 ‘지진 재해도’에 따르면, 서울에는 한강 수계를 따라 형성된 단층과 서울 동북부를 가로지르는 남북 단층(의정부-중량천-한강-성남시)이 있다. 이중 위험한 단층은 한강변 단층으로 특히 퇴적층이 많은 지역이 위험하다. 멕시코시티처럼 약한 지진에도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서울 한강변의 ‘강남 부자 동네’도 더 크게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규모 5.0 이상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 그렇다는 말이다.

아이티처럼 규모 7.0 지진이 나면 서울도 아비규환 그 자체이다. 시뮬레이션 결과 27만여명이 병원이나 구호 시설로 몰려 든다
규모 7.0 지진 나면 이재민만 27만명

그래도 만에 하나 수도권에서 지진이 나면 피해 규모는? 최근 소방방재청이 남한산성 인근(경기 광주 초월읍)에서 강진이 발생했다는 가정 아래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는 비극적이었다. 일단, 1월19일 12시 위도 37.4°N 경도 127. 3°E에서 규모 5.0 크기의 지진이 발생했을 경우. 이 규모에서는 다행히 그 피해가 크지 않았다. 지진 영향권에 놓인 37만4450명 중에서 사망자는 단 1명. 부상자와 이재민 수도 각각 31명·55명에 불과했다. 건축물(161만6070동) 피해 역시 비붕괴 전파(全破) 1동, 반파 9동뿐이었다.

같은 지역에서 같은 시간대에 규모 6.0짜리 지진이 발생하면 상황이 다르다. 지진 규모가 1등급 상승할 때마다 에너지 크기가 32배 커지는 바람에 지진 영향권에 놓인 서울(993만81112명 기준)에서만 79명이 사망한다. 부상자와 이재민도 급격히 늘어나 각각 2179명·3100명 발생한다. 건축물 역시 30동이 붕괴 전파하고, 108동이 비붕괴 전파한다. 광주가 속한 경기도의 피해도 만만치 않아서 지진에 노출된 475만9830명 중에서 79명이 무너진 건물이나 벽에 깔려 목숨을 잃는다. 부상자·이재민 수도 서울 못지않아서 1938명과 2541명을 기록한다. 건물 붕괴·비붕괴 전파는 약 138동 발생.

규모 7.0의 지진은 한 마디로 아비규환 그 자체이다. 일단, 전국이 지진의 영향권에 놓이면서 사망자가 서울(3199명), 경기(5944명), 인천 등지에서 9248명 발생한다. 부상자와 이재민 수도 엄청나 서울(13만7885명)과 경기도(13만2천216명)에서만 27만여명이 병원이나 구호 시설로 몰려 든다. 건축물도 사상누각처럼 무너져 무려 2988동이 붕괴하고, 1만여 동이 전파되어 붕괴 직전에 놓인다. 정길호 소방방재청 연구관은 “가상이기는 하지만 끔찍하다. 지금으로서는 지진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오윤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nom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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