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MBC 〈100분 토론〉 작가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교육 비리를 이번 주 토론 주제로 잡았는데 출연해줄 수 있느냐고. 상대 패널은 교육과학기술부 이주호 차관과 대학교육협의회에서 파견 근무하는 성균관대 양정호 교수라는 것이다. 준비할 시간이 별로 없긴 하지만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전화를 끊으려 하니 방송 대본 작성을 위해서인지 이것저것 물어보아 한참 동안 통화했다. 다음 날 오후 작가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정말 미안한 말씀을 드려야겠다고. 교육과학기술부 차관 측에서 김용일 교수가 나오면 이주호 차관은 나오지 않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득이 좀 더 ‘부드러운 사람’을 섭외해야 할 형편이라고. 자신들도 말이 안 되는 일인 줄은 알지만, 내일 방송을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어쩔 수 없노라고. 그러니 널리 이해해달라는 얘기였다.

학기 초여서 강의하랴 행정업무 처리하랴 눈코 뜰 새 없던 차에 ‘잘됐다’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공중파 방송의 교육정책에 관한 공론의 장에서 상대 토론자를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이 골라잡겠다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말랑말랑한’ 상대로만. 언론 통제도 이 정도면 막장 수준이라 할 만하다. 정신이 퍼뜩 났다.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래서 작가에게 말했다. 잘 알겠다. 당신이 어쩔 수 있겠느냐! 그러나 나는 내 할 도리를 하겠다.

마침 〈시사IN〉의 지면이 내게 허락되어 있었고, 교육 비리를 주제로 글을 쓰려던 참이었다. 이주호 차관이 정정당당했더라면, 〈100분 토론〉에서 마주하고 했을 얘기를 여기서 해야겠다. 막장 수준의 언론 통제를 감행한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의 답변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하려 한 얘기 가운데 일부만이라도 기록해두자. 2010년 교육과학기술부의 참담하고 부끄러운 모습까지도. 역사의 기록이 얼마나 냉정한 것인지 곧 알게 될 테니.

최근의 교육 비리는 종합선물세트와도 같다. 자율형 사립고 입시 비리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학교 당국이 사회적 배려대상자 전형을 이용해 부잣집 아이 300여 명을 부정 입학시켰기 때문이다. 대학입시 비리 역시 가진 것 없는 이들을 절망케 한다. 이명박 정부가 입만 열면 내세우는 입학사정관제도가 그야말로 입시 브로커의 먹잇감이 되고 만 것이다. 정부의 어설픈 일방통행식 입시정책이 판을 깔아주고, 학교 당국과 입시 브로커 그리고 부유층이 ‘돈놀음’에 나선 꼴이다. 이래저래 죽어나는 것은 뒷돈을 감당할 능력이 없는 중산층과 서민이다.

서울시교육청의 인사 비리는 점입가경이다. ‘리틀 MB’로 통하던 공정택 교육감이 선거 비리로 물러난 뒤 인사 비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교육감을 정점으로 장학사, 장학관, 교감, 교장 어느 하나 비켜갈 줄을 모른다. 이주호 차관의 엄호 아래 국제중 설립과 일제고사를 밀어붙이고 정부의 교육정책에 비판적인 교사 탄압을 일삼던 서울시교육청의 모습이 생생하다. 16개 시·도를 대표해 이명박 정부의 부자 교육정책 수행에 앞장서온 것이다. 인사 비리와 이명박 정부의 부자 교육정책이 동행해온 형국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사태가 우연이 아니라 ‘부자의, 부자에 의한, 부자를 위한’ 교육정책의 또 다른 모습임을 깨닫게 되는 대목이다.

부자의, 부자에 의한, 부자를 위한 교육정책

이 정도만 하더라도 교육 비리 한가운데 이주호 차관이 버티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부자들의 안정적인 계급 재생산을 위해 자율형 사립고를 도입한 사람이 바로 그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공론의 과정 없이 ‘대입 3단계 자율화’라는 미명 아래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한 사람도 바로 그다. 대학으로 하여금 점수와 가정 배경이 좋은 학생을 골라 뽑을 수 있도록 하고, 부유층에게 유리한 입시환경을 마련해주자니 ‘시선 돌리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최근 그는 교육감 선거 개입 파문의 몸통으로 지목되고 있다.

다시 생각해보니 〈100분 토론〉 작가와의 통화 내용에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다. 방송시간을 물었더니 녹화방송이 될 수도 있다고 답했다. 생방송 아니냐고 물으니 출연자의 귀가 편의를 위해 녹화방송을 하지만 편집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심야토론 일정에 조금 익숙한 나로서는 이상한 느낌을 떨칠 길이 없었다. 혹시 상대편 토론자를 마음대로 골라 정하는 것에 더해 여차하면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을 편집하려 한 정부의 속셈이 도사리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기우이길 바라지만, 최근의 MBC 사태가 자꾸 떠오른다.

기자명 김용일 (한국해양대학 교수·교직과)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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