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은 만약 내가 빛의 속도로 날아가면서 손 거울을 꺼내 눈 앞에 쳐든다면 내 얼굴이 보일까, 안 보일까’ 골똘히 고민했다고 한다.

여러분은 16살 때 무슨 생각을 했는가. 나는 평생 그 때만큼 거울을 많이 들여다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틈만 나면 거울 앞에서 여드름을 짜면서 억지로 쌍꺼풀을 만들고는 했다. 예쁜 여학생에게 다가가 매력적인 눈으로 바라보며 기발한 대사를 읊어 ‘뿅가게 만드는’ 상상을 하면서.

2005년 과학잡지 〈Newton〉이 상대성 이론 발표 100주년을 기념해 펴낸 특별판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상대성 이론〉(뉴턴 코리아에서 번역했다)을 보니 반갑게도  아인슈타인도 그 나이 때 나만큼이나 거울보기를 좋아했던 모양이다.  그는 ‘만약 내가 빛의 속도로 날아가면서 손 거울을 꺼내 눈 앞에 쳐든다면 내 얼굴이 보일까, 안 보일까’ 골똘히 고민했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이 열여섯 살 때 품었던 의문은?

물론 나처럼 눈꺼풀을 뒤집고 인상을 써보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나의 상상은 묻어버리고 싶은 사춘기의 부끄러운 추억이 됐지만 그의 고민은 물리학을 뿌리부터 뒤흔드는 시간과 공간의 이론인 상대성 이론을 정립하는 첫 걸음이었다. 과연 몸뚱이가 빛의 속도로 날아가고 있는데 똑같은 빛의 속도로 얼굴에서 떠나간 빛은 거울에 반사돼 다시 그 몸뚱이에 붙은 눈에 도달할 수 있을까.

앞서 얘기한 책 〈누구나...〉는 아인슈타인의 의문을 하나하나 풀어가면서 상대성 이론을 설명하는 형식인데 정답은 ‘보인다’이다. 왜냐고는 제발 묻지 말아 달라. 얘기하자면 길고 머리가 복잡해진다. 감히 ‘상대성 이론을 이 책보다 쉽게 설명할 수는 없다’는 부제를 달 만한 자격이 있는 책이라는 말씀은 드릴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한 말 중 가슴에 꽂혀서 잊혀지지 않는 한마디가 있다. “이 우주에서 우리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우리가 우주를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버지가 어느날 자전거 뒷꽁무니에 학원사에서 출간한 소년 소녀 세계명작전집 50권을 싣고 신작로를 달려와 삽짝에 들어섰을 때 우리 집 5남매의 운명은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그 50권을 단 꿀 빨듯했다. 틈만 나면 어머니나 누이들에게 읽어달라고 졸라댄 덕분에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글도 못 읽는 주제에 50권의 책을 거의 다 줄줄 외우는 경지에 도달했다.

소공자, 소공녀, 톰소여의 모험, 삼국지, 서유기처럼 널리 알려진 것도 있었지만 후로쓰의 남매, 숲속의 7형제, 마경천리 같이 지금도 원작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는 것들도 적지 않았다. 겉 표지가 나달나달 다 떨어져 나가고 본문 색이 누렇게 바랬지만 우리 남매의 ‘곤때’가 묻은 것이어서 셋방을 전전하면서도 열심히 끌고 다니다가 몇 년 전에야 버렸는데 얼마 전 인터넷에 들어가보니 한권에 4만5천원씩 팔리는 게 아닌가. 아이고 아까워라. 어쨌건 그 책들 덕분에 5남매 중 2명은 작가가, 1명은 기자가 됐으며 교사가 된 2명도 일 삼아 글을 읽고 쓴다.

우리말도 모르는 ‘삐리리’가 작가를 해먹는다고?

집안 분위기가 이렇듯 지나치게 문과 쪽이다 보니 텔레비전을 볼 때도 말들이 많았다. 누구 하나 문자 속이 기특하지 않은 사람이 없어 드라마 대사 하나 하나에 시비를 걸어 내용에 몰입하기 힘들었다. 팔순이 넘은 부친은 지금도 드라마 작가가 ‘엎드려 절받기’와 ‘옆찔러 절받기’란 속담을 헷갈려 쓰면 불같이 화를 낸다. ‘우리 말도 모르는 삐리리’가 작가를 해먹는다고. 편집부도 거쳤고, 오랜 동안 기자들 기사를 보며 닦달하는 데스크 자리에 있었던 탓에 생긴 직업병이 있다. 증상은 맞춤법이 틀렸거나 어법이 맞지 않는 글을 보면 바로 혈압이 치솟는 것이다. 텔레비전이나 영화 자막을 볼 때 이 병은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자기도 모르게 빨간 펜을 찾게 된다. 선배 중에는 맞춤법과 어법이 제멋대로인 자막이 보기 싫어 텔레비전을 아예 치워버린 이도 있다.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 이런 문사 분위기가 어쩐지 공허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특히 화장실이 막힌달지, 갑자기 전기가 나간달지 ‘실용적’ 행동을 요구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우리 식구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취약했다. 입만 분주하고 손발은 어지러운 나를 비롯한 우리 식구를 바라보노라면 한숨이 나올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모두들 마치 괴물이라도 대하듯 새로 사온 가전제품에는 될 수 있으면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려고 했다. 

고등학교 2학년 올라갈 때 나는 식구들이 믿기 힘들어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과에 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입으로만 세상을 다 안다고 떠드는 ‘문발이’가 아니라 기초과학이나 고고학을 전공하는 과학자가 되거나 쇳덩어리나 전기를 떡 주무르듯 하는 엔지니어가 되리라고 굳게 마음을 먹었다. 특히 인간을 비롯한 살아 있는 것에 관심이 커 생물학자가 되고 싶었다.

식구들이 처음에는 의아해했지만 나중에는 참신하게 받아들였던 나의 시도는 참담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생물만 빼놓고 거의 모든 과목을 이해하지 못했다. 화학은 주기율표를 채 못 외우고 손들었고, 물리는 무수한 법칙과 정리와 공식에 갇혀 멀미를 내다가 포기했으며, 지구과학과 수학 2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기 싫을 정도이다. 결국 고 3 때 이과에서 홀로 문과 공부를 해서 대학을 갔다. 아마 어른이든 아이든 앞서 내가 열거한 과목 이름을 듣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이들이 적지 않으리라. 대학 시험을 본 지 30년이 넘었지만 학기 초가 시작되는 3월이면 악몽 같던 그 때 생각이 떠오른다.


과학에 울렁증이 있는 분들게 강추하는 책

나처럼 과학에 울렁증이 있는 분들에게 널리 권하고 싶은 책이 바로 〈원더풀 사이언스-아름다운 기초과학 산책〉(2010, 지호)이다. 지은이 나탈리 엔지어는 〈뉴욕타임스〉에 생물학 기사를 쓰고 있으며 퓰리처 상을 받은 미국의 대표적인 과학 작가이다. 그녀는 수많은 과학자를 만나 인터뷰한 뒤 그들에게서 받은 정보와 지식과 영감뿐 아니라 농담까지도 세심하게 담아내려고 애썼다.

그녀가 얼마나 고생했는지는 책 말미 감사의 글에 절절이 나타난다. 그녀는 반 이상 작업을 진행한 순간에도 몇날 며칠을 매일같이 작업을 그만두고 하드디스크를 깨끗하게 포맷한 뒤 가족까지 팽개치고 도망칠 구실을 찾으려고 노력했다고 적었다. 확실히 작가가 괴로우면 독자는 즐겁다. “그녀는 시인을 무색케 하는 언어 능력으로 과학자만이 알리라 생각했던 과학이 주는 즐거움을 전해준다”는 노벨상 수상자 레온 레더만의 찬사는 결코 과장된 게 아니다. 일찍이 그녀와 같은 선생님을 만났다면 나는 어쩌면 정말 생물학자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탈리 엔지어에 따르면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미국에서조차 과학은 그다지 인기가 없다. 몇 년 전 〈뉴욕 타임스〉 과학 담당 편집자가 신문사 편집국장에게 과학부서 직원의 사기를 진작하기 위해 격려사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편집국장은 과학부서로 매주 수요일 과학 기사를 읽는 순간을 학수고대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뉴욕 타임스〉 과학 섹션은 매주 화요일 실린다. 현재 미국에선 최신 과학 및 공학 분야의 학위를 받기 위해 훈련하는 사람의 수가 심각할 정도로 줄어들고 있다. 우수한 학생은 모두 증권 브로커가 된다. 한국에서도 이공계 대학은 인기가 없다. 이공계 지망생 중 상위권은 모두 의대로 가버린다.

나탈리 엔지어가 이 책을 쓴 까닭은 과학에 대한 관심을 환기해 미국이 중국이나 인도에 뒤처지기 않게 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과학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노래를 부르고 놀이를 하고자 하는 이유와 같다. 이런 것은 재미있고, 재미있는 것은 좋다. 과학은 인류의 경험으로 이루어진 거대하고 광대한 바다이며, 인류가 행성 지구에 사는 생명체 가운데 가장 깊은 뇌의 주름을 가지게 되면서 나타난 결과물이자 그 목적이다. 우리는 우주의 일부이며,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과 똑같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고, 우주 전역에 작용하는 동일한 법칙대로 행동하는 우주의 일원이다. 우리는 별의 부스러기이다. 

우주와 생명을 이해하려면 물리를 먼저 공부하라

우주를, 지구를, 그리고 생명을 이해하기 위해 기초과학 중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일리노이 대학의 명예교수이자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레온 레더만은 물리를 먼저, 생명과학은 나중에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나탈리 엔지어도 전적으로 동감이다. 물리학은 까다롭긴 하지만 중심탑과 같은 학문으로, 다른 학문은 물리학을 토대로 쌓여 올라간다. 안타깝게도 미국이나 한국의 학교에선 이런 식으로 가르치지를 않는다.

위대한 물리학자이자 재담꾼인 리처드 파인만은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인류문화 유산 가운데 반드시 보존해야할 가치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짧게 대답했다. “나는 그 지식이 원자에 대한 가설, 혹은 원자에 대한 사실, 또는 어떤 이름으로 부르건 간에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내용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약간 떨어진 거리에 있을 때면 서로 끌어 당기고 아주 가까이 다가가면 서로를 밀어내며 영원히 움직이는 작은 입자들.”

물리학의 영역에서 가장 기본은 바로 원자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모든 원자는 물질의 궁극이다. 물질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것이라 해도 계속 쪼개다 보면 결국 마지막은 원자로 발가벗겨진다. 과학도감 같은 곳에 실린 원자의 모형도는 우리의 태양계처럼 핵이 가운데 있고 그 주위를 전자가 마치 행성처럼 돌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원자는 일반 시공간 이미지로는 도저히 그 모양을 묘사할 방법이 없다. 원자는 너무 작아서 이른바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가 지배하는 위태로운 영역에 속한다.

원자핵은 전체 원자 부피의 1조분의 1밖에 되지 않지만 그 속에는 원자 질량의 99.9%를 차지하는 무거운 소립자인 양성자와 중성자가 들어 있다. 핵 바깥 쪽에는 거대한 텅빈 공간이 있으며 핵과 아주 멀리 떨어진 외곽에서 전자가 돌고 있는 분리된 개체로 존재한다. 그러니 이를 형상화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나탈리 엔지어는 우리가 들이마시는 상쾌한 공기부터 마시는 물까지, 그리고 우리의 몸까지 세상의 모든 것이 내부가 텅 빈 입자로 구성돼 있다니 정말로 놀라운 이야기가 아니냐고 묻는다(우리 우주도 원자 못지않게, 스티븐 킹의 장편 소설 〈다크 타워〉에 나오는 황무지보다 1조배의 1조배 이상 더 적막하고 황량하고 무료한 공간이다). 물리를 겸손의 미학을 배우는 학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물질의 대부분은 텅 빈 공간인데 우리는 왜 느끼지 못할까

물질의 대부분이 텅 빈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우리는 어째서 의자에 앉을 때 허공의 심연에서 표류하지 않고 엉덩이를 걸칠 수 있는 걸까. 김연아 선수의 스케이트 날이 얼음 판으로 빠져들어가지 않고 얼음가루를 흩날리며 미끄러지는 이유는 뭘까. 우주를 움직이는 네 가지 힘인 중력, 전자기력, 강한 핵력, 약한 핵력 가운데 두 번째로 강한 힘인 전자기력에 의해 반발하거나 끌어당기며 안절부절 끊임 없이 움직이는 전자 덕분이다. 우리 눈에 탁자가 보이고 만져지는 것은 전체 원자 무게의 0.1%밖에 되지 않는 전자가 가볍게 진동하기 때문이다. 생명을 빼앗아가는 날카로운 칼이나 총알, 부드럽기 짝이 없는 두부 같은 것들을 감지하게 해주는 것이 부피로 보나 무게로 보나 원자 가운데서는 가장 존재감이 없는 전자라니 정말 원더풀 사이언스이다.

나탈리 엔지어의 얘기는 물리학에 이어 화학, 생명, 지구, 천체로 흥미진진하게 이어지지만 여기서는 그만 줄이기로 하겠다. 분량이 한정없이 늘어질 것 같기도 하고(독서 여행이 너무 길다고 불평하는 분들이 있어 송구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원문의 훌륭함을 너무 훼손할까 두려워서이다. 다만 여기서는 아인슈타인도 리처드 파인만도 매료됐던 바로 그 원자에 대해 조금만 덧붙이기로 하겠다.

일본의 저명한 분자 생물학자 후쿠오카 신이치 씨가 2007년 쓴 〈생물과 무생물 사이〉(은행나무)은 과학서로서는 이례적으로 50만부나 팔렸다. 그 뒤 그는 현대 생물학에 관한 몇 권의 저서를 더 썼는데 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그는 도대체 생명과 생명이 아닌 것은 무엇인가란 화두에 천착했는데 쉬운 듯하면서도 어려운 문제이다.

현대 생물학을 인도한 물리학자 에어빈 쉬뢰딩거

후쿠오카 신이치에 따르면 현대 생물학에 서광을 비춘 사람은 생물학자가 아니라 아인슈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양자 물리학의 대가 에어빈 슈뢰딩거였다. 말년에 주류 물리학계와 담을 쌓고 지내던 그는 1944년 갑자기 얇은 책 한 권을 냈는데 제목이 〈생명은 무엇인가〉였다. 그는 이 책에서 “앞으로 물리학은 가장 복잡하고 불가사의한 현상을 규명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생명이다”라고 예언했다. 그는 “생명 현상은 결코 신비롭지 않다. 모든 현상은 물리학과 화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호언하기도 했다.

쉬뢰딩거는 이 책에서 두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졌는데 첫째는 “유전자의 본체는 혹시 비주기성 결정이 아닐까” 예측한 것이었다. 10년 뒤 유전자가 이중 나선 구조라는 것을 밝혀내 노벨상을 받은 제임스 왓슨, 프랜시스 크릭, 그리고 모리스 윌킨스는 자신들에게 생명의 비밀을 탐구하게 해준 계기를 마련해준 존재는 쉬뢰딩거의 책이었다고 밝혔다. 유전자의 본체가 단백질이 아니라 디옥시리보핵산이라는 화학물질이며 그 이중나선 구조는 유전자의 복제를 전담한다는 그들의 발견을 쉬뢰딩거는 멋지게 예측했던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은 조금 기묘하게 들리는데 “원자는 왜 이렇게 작을까?”라는 것이었다. 분명 개개의 원자는 아주 작다. 원자의 지름은 대체로 1~2옹스트롬이다. 옹스트롬이란 1미터의 100억분의 1이다. 생명 현상을 관장하는 최소 단위인 세포의 지름은 30만~40만 옹스트롬이고 여기에는 어마어마한 수의 원자가 들어간다. 그렇더라도 새삼스럽게 물리학의 대가가 할 질문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다음 얘기를 들어 보면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자, 원자는 왜 이렇게 작은 것일까요? 

이는 분명 교활한 질문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사실 지금 제가 문제 삼는 것은 원자의 크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가 궁금한 것은, 사실은 생명체의 크기, 특히 우리 몸의 크기에 대해서입니다.
(중략)
이처럼 내 질문의 진정한 목적은, 두 개의 크기 - 우리 몸의 크기와 원자의 크기 - 를 비교하는 데 있다는 것이 밝혀졌으니, 독립적인 존재로서의 원자가 엄연히 먼저 존재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좀 전의 질문은 사실 이렇게 바뀌어야겠지요. “우리 몸은 원자에 비해 왜 이렇게 커야만 하는가?”라고 말입니다.

쉬뢰딩거가 자신이 던진 질문에 대해 스스로 찾은 대답은 생명 현상에 참여하는 입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오차율을 떨어뜨릴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는 생명 현상에 필요한 질서의 정밀도를 높이기 위해 원자는 그렇게 작고, 우리의 몸뚱이는 이렇게 커야할 필요가 있다고 이해했다.

생명과 환경의 상호작용은 접힌 색종이 같아서 그에 대한 개입은 파탄을 부를 뿐이라는 후쿠오카 신이치의 지적을 4대강 사업을 추진하는 한국 토건족은 꼭 새겨들어야 한다.

생명은 폭포처럼 순간 순간 새로운 물질로 대체되는 형상일 뿐

후쿠오카 신이치에 따르면 생명이란 무엇인지 좀 더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또 한명의 고독한 천재인 루돌프 쇤하이머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1930년대 후반 생명이란 여러 가지 요소가 모여 생긴 구성물이 아니라 요소의 흐름이 유발하는 효과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얘기가 좀 어렵긴 하지만 뒤의 설명을 들으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실험 쥐에 추적이 가능한 중질소로 표시된 로이신이라는 아미노산을 함유한 사료를 먹였다. 그 다음 쥐를 죽이고 모든 장기와 조직을 대상으로 중질소의 행방을 찾았다. 쥐의 배설물까지 모두 회수해 조사했다. 실험 쥐가 성숙한 어미였기 때문에 쇤하이머는 당초 먹이가 대부분 생명 유지를 위한 에너지원으로 연소됐으리라고 여겼다.

하지만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쥐를 구성하는 몸의 단백질은 겨우 사흘만에 사료를 통해 섭취한 아미노산의 약 50%에 의해 완전히 대체돼 버렸다. 쥐의 몸은 하나의 구조물이 아니라 흐름일 뿐이라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새것으로 대체되는 것은 단백질뿐만이 아니었다. 체지방조차 이 다이내믹한 흐름의 한가운데 있었다. 언뜻 보기에 고정적인 구조처럼 보이는 뼈나 치아에서, 그리고 뇌에서조차 내부에서는 끊임 없는 분해와 합성이 반복되고 있었다.

쥐의 몸은, 결국 우리 몸은 폭포처럼 흐름만 있는 형상인 것이다. 쇤하이머는 자신의 실험 결과를 근거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맺었다. 생물이 살아있는 한 영양학적 요구와는 무관하게 생체 고분자든 저분자 대사 물질이든 모두 변화하지 않을 수 없다. 생명이란 대사의 계속적인 변화이며, 그 변화야 말로 생명의 진정한 모습이다.

이렇듯 생명에 대한 막연한 고정관념이 깨진 지는 7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생명이 흐름이란 걸 모르는 이들이 많다. 생물학자들은 천문학적 숫자, 아니 생물학적 숫자의 원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이런 정밀하고 열정적인 순환(곧 생명)을 동적 평형이라고 부른다.

후쿠오카 신이치에 따르면 이런 시스템에 혼란을 야기하는 인위적인 개입은 동적 평형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힌다. 그는 만약 표면상으로는 동적 평형이 크게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이는 유연하고 부드러운 동적 시스템이 일시적으로 조작을 흡수했기 때문이고 그 안에서는 무언가가 변형되고 손상을 입는다고 엄숙히 경고한다. 생명과 환경의 상호작용은 이미 접힌 색종이 같아서 그에 대한 개입은 파탄을 부를 뿐이다. 그는 일본의 토건족을 겨냥해 이런 말을 했겠지만 우리나라 4대강 훼손을 추진하는 이들에게도 꼭 들려주고 싶은 얘기이다. 생명에는 보가 필요 없다.


나탈리 엔지어의 실용정보

영화 '콘택트'의 한 장면

1. 혹시 푸에르토리코에 갈 일이 있으면 그곳 북서쪽에 있는 아레시보 전파 망원경을 꼭 보고 오라. 세상에서 가장 큰 망원경 가운데 하나이고, 일반인도 가서 볼 수 있다. 아름답고 멋진 데다 벼랑 끝에 서 있는 모습이 마치 거울로 만든 거대한 1960년대 사탕접시 같다. 조디 포스터가 주연한 영화 〈콘택트〉의 촬영지이기도 하다(나탈리 엔지어는 미용실에서 헤어스타일리스트에게 이런 충고를 했다가 머리가 엉망이 됐지만 매력있는 정보이다). 

2. 세상을 보는 시각을 바꾸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현미경에 투자하는 것이다. 장난감 가게에 진열된 조잡한 것도 아니고 전문가용도 아닌 교재용 해부 현미경, 혹은 입체 현미경이라는 것을 사라. 해부 현미경은 꽤 비싸서 2백~3백 달러 든다(우리나라 제품을 알아봤더니 30만에서 45만원 사이였다). 그렇지만 해부 현미경이 가져다줄 놀라운 계시, 거대한 혁명, 좁은 상자 속에 틀어박힌 우리를 구해줄 것을 생각하면 그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내 딸 아이가 선물로 받은 해부 망원경으로 함께 일상의 표면들을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해부 현미경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지 못했다.

큰 어치의 깃털, 양치식물의 소엽, 결국 노린재의 알집으로 밝혀진 의자에서 긁어낸 조각 등등. 현미경 앞에서는 작은 것들이 그 존재를 뽐내며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배율이 40배만 되어도 소금 입자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유리 기둥처럼 보이고 딱정벌레 유충이 러시아의 유명한 보석인 파벨제 달걀 같다. 모기를 싫어하지만 그런 모기도 해부 현미경 속에서는 ‘바이올린을 켜는 가느다란 남자’처럼 보인다.
 

기자명 문정우 대기자 다른기사 보기 w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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