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노동계의 ‘춘투’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야 했던 이명박 정부가 올해는 문화예술인들의 ‘춘투’를 맞이하게 될 것 같다. 해임되었다 복직 판결을 받은 김정헌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 ‘출근 투쟁’을 벌이고 있고 ‘한국작가회의’ 소속 작가들은 ‘저항적 글쓰기’를 시작했고 ‘한국독립영화협회’ 감독들은 정부가 빼앗아간 상영관에서는 자신의 영화를 틀지 않겠다며 ‘자학투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2월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실에서는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문화예술위원회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였는데 복직한 김정헌 위원장과 오광수 위원장이 나란히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위원장이고 누구에게서 보고를 받아야 할지에 대해 결론을 내지 못해 업무보고를 연기하는 모습은 진짜 남편과 가짜 남편을 가리느라 우왕좌왕하는 영화  〈마르탱 게르의 귀향〉을 연상시켰다. 

국회에서 사진 기자들을 향해 ‘사진 찍지 마 ××’라고 막말을 했던 유인촌 장관은 거침없는 언행으로 계속 구설에 올랐다.
문화예술인들의 투혼을 깨워준 일등 공신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다. ‘좌파 문화예술인 적출’ 등 그의 밀어붙이기식 문화행정은 논란을 낳고 있다. 최근 유인촌 장관은 두 가지 기록을 세웠다. 하나는 이어령 전 장관을 제치고 역대 최장수 문화부장관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고 다른 하나는 ‘최악의 공직자’에 선정된 것이다.

참여연대는 2월24일 ‘이명박 정부 2년, 기억해야 할 고위 공직자 40인’을 발표했는데 ‘임기가 보장된 산하 단체기관장 사퇴 종용해 졸속·불법 교체, 국회에서 “사진 찍지 마 ××”라고 욕설, 연예인 응원단에 예산 낭비, 영화진흥위원회의 독립영화전용관·영상미디어센터 사업자 선정 조작 의혹 등 문화계 파행행정’의 책임을 물어 유 장관을 강희락 경찰청장과 함께 ‘부적격 등급’으로 분류했다. 

문화예술인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갈등이 증폭되는 또 다른 이유는 이렇게 해서 빼앗은 운영권을 ‘문화예술 떴다방’으로 불리는 뉴라이트 문화단체 등 우파 단체에 넘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현장문화예술인들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시사IN〉은 한국작가회의 고영직 대변인의 ‘저항적 글쓰기 1호 글’과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의 글, 그리고 김정헌 문화예술위원장의 구술을 정리해 유인촌 장관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문화계와 영화계 동시에 봉기

문화예술계가 유 장관과 각을 세운 것은 벌써 여러 번 있었다. 지난해 여름에는 문화연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 그리고 젊은 미술인과 음악인 등 현장 예술가들이 주축이 되어 ‘문화행정 정상화와 예술자율성 회복을 위한 문화예술인 모임(문화예술인모임)’을 발족하고 유인촌 장관 퇴진을 주장하는 ‘하투’를 벌였다. 젊은 현장 예술가들은 ‘상상력에 자유를’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매주 문화부 청사 앞에서 1인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이번 ‘춘투’의 중심에 서 있는 문학계와 영화계는 당시 ‘하투’에서는 비켜 서 있었다. 당시 젊은 작가를 주축으로 ‘6-9 작가선언’을 낸 문학계는 용산참사에 천착했고, 영화계는 각종 영화제 및 정부지원 사업에 대한 대규모 감사가 진행되고 있어서 운신의 폭이 좁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문학계와 영화계가 앞장섰다.  

문학계를 봉기시킨 것은 한 장의 각서였다. 문화예술위원회가 한국작가회의(이사장 구중서)에 계간지 〈내일을 여는 작가〉 발행비용 2000만원, 세계 작가 교류사업 1000만원, 4·19 50주년 심포지엄 사업비 400만원 등 총 3400만원을 지원하면서 시위불참 ‘확인서’를 요구했다. 작가회의는 군사정권 시절에나 있을 일이라며 강력히 항의했다. 김병익 전 문화예술위원장은 후배들에게 양심의 자유를 지키라며 3400만원을 쾌척했다. 이후 백무산 시인 등 문인을 비롯해 일반인의 성금이 답지하기 시작했다.  

2월20일, 작가회의 연례총회 장소에는 격앙된 표정의 작가 200여 명이 모였다. 평소보다 30% 정도 많은 숫자였다. 젊은 작가와 원로작가 할 것 없이 MB정부의 문화정책을 비난했고 ‘저항적 글쓰기’를 결의했다. 김은경 젊은작가포럼 대표는 “작가회의뿐만이 아니다. 작가회의 소속이건 아니건 소식을 들은 작가들이 분노하고 있다. 저항적 글쓰기에 다양한 참여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말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 동시에 출석한 오광수(왼쪽)·김정헌 두 문화예술위원장.

문단 원로들까지 가세하자 문화부도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실무자가 찾아와서 유감표명을 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해 유인촌 장관이 작가회의 전 사무총장 도종환 시인을 통해서 사과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작가회의의 태도는 단호하다. 김남일 사무총장은 “이 문제는 사과를 넘어선 제도와 철학의 문제다. 그런 부당한 서약서를 쓰게 하는 제도를 없애고 예술활동에 대해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천명하지 않는다면 의미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우인촌(유인촌), 좌희문(조희문 영화진흥위원장)’ 체제에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는 영화계도 ‘봉기’했다. 지난 2월18일 참여연대에서 열린 ‘불공정한 독립영화전용관 선정에 반대하는 독립영화감독 100인 기자회견’이 그 시작이었다. 〈워낭소리〉의 이충렬 감독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 등 독립영화 감독들이 “우리의 공간인 인디스페이스가 아닌 불공정한 공모로 선정된 시네마루에서는 영화를 상영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독립영화 감독들의 이런 선언에도 불구하고 시네마루는 상영을 강행했다. 그러자 자신의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1인 시위를 벌이는 기괴한 장면이 연출했다. 영화 <어떤 개인 날>을 연출한 이숙경씨는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우리 영화가 도둑질한 극장에서 상영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라는 푯말을 들고 항의 시위를 했다.

인디스페이스 외에도 미디액트가 운영하던 영상미디어센터도 공모 1차 심사에서 꼴찌를 한 단체가 2차 심사에서 이름만 바꿔 공모해 1등으로 둔갑하는 기괴한 심사로 운영자가 바뀌었다. 여기에 정부가 예산의 30%밖에 지원하지 않는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마저 운영자를 공모한다고 통보하고 영화인들의 재교육 기관인 한국영화아카데미도 원장 선임이 안 되는 등 파행을 겪자 감독들이 메가폰을 놓고 나선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한 독립영화 감독은 “정부가 독립영화인들의 독립정신을 길러주고 있다. 이제 독립영화 감독들은 독립영화를 독립군들이 독립운동 하듯이 찍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라고 풍자했다. 독립영화인들의 단체인 ‘한국독립영화협회’를 불법 폭력단체로 규정하고 있는 정부는 ‘독립영화’라는 단어 자체를 막고 ‘다양성영화’ 혹은 ‘비상업영화’로 부르게 하고 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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