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포경을 반대하는 해양동물 보호단체 ‘시 셰퍼드(Sea Shepherd Conservation Society·SS)’에 정면으로 선전포고를 하고 나섰다. 일본 정부는 지난 2월15일 아침 남극 바다에서 조업 중이던 일본의 조사 포경선 ‘쇼난마루(召南丸) 2호’에 무단 침입한 SS 소속 피트 베든 선장(뉴질랜드인)을 일본으로 압송해 선박침입죄로 기소할 방침이다. 만약 베든 선장이 일본으로 압송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만 엔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가능성이 크다.

베든 선장이 쇼난마루 2호에 침입한 것은 지난 1월6일 그가 몰던 소형 고속선 ‘애디 길’ 호가 쇼난마루와 충돌해 침몰한 데 대한 일종의 보복 행위이다. 베든 선장과 SS 측은 이 충돌 사고가 일어난 직후 “애디 길 호에 타고 있던 선원 6명을 죽이기 위한 계획된 음모다”라고 일본 측을 비난하면서 배 값 300만 달러를 변상하라고 요구했다.

일본은 고래 자원을 과학적으로 조사한다는 명분 아래 ‘조사 포경’을 하는데, 사실상 ‘상업 포경’에 가깝다. 위는 일본 포경선 닛신마루 호의 고래잡이 모습.
그뿐 아니다. SS 측은 2월11일 밤 부티르산 (버터 등에 들어 있는 질이 낮은 지방산)탄을 장전한 로켓 포로 쇼난마루 2호를 공격했다. 이 공격으로 쇼난마루의 선원 3명이 안면이 붓는 등 경미한 피해를 입었다고 전해진다. SS 측은 또 모선 ‘스티브 어윈’ 호와 새로 도입한 ‘밥 바거’ 호를 동원해 남극 바다에서 조업 중인 일본의 포경 선단을 집요하게 공격 중이다. 헬리콥터로 선단의 진로를 가로막는 일은 다반사이고, 일부러 충돌 사고를 일으키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포경 선단의 스크루를 파괴하기 위해 바다에 밧줄을 던지거나, 선원들을 향해 레이저 광선을 쏘고 화학약품을 투척하는 것도 SS 측이 주로 공격하는 방법이다.

일본 정부는 SS 측의 공격이 날로 격렬해지자 그들을 ‘에코(환경) 테러리스트 집단’이라고 비난하면서, 그들의 집요한 ‘가미가제식 공격’을 차단할 묘안을 강구 중이다. 물론 남극 바다, 즉 공해상에서 일본 선단이 피해를 볼 경우 ‘선박침입죄’ 등 일본 국내법을 적용해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견해이다. 그러나 2008년에도 일본 선단에 침입한 SS 멤버 두 명을 오스트레일리아에 인도한 것처럼, 문제는 간단치 않다. 우선 베든 선장을 일본으로 압송해 재판에 회부할 경우 SS 측의 집요한 보복 공격을 감내해야 한다. 또 조사 포경(고래 자원 조사를 위한 고래잡이)에 반대하는 나라들의 비난 여론도 고려해야 한다.

쇼난마루 2호(뒤)의 고래잡이를 방해하다 충돌해 침몰하는 SS의 소형 고속선 애디 길 호(앞).
일본, 대형 고래만 연 1200마리가량 잡아

현재 국제포경협회(IWC)에 가입한 나라는 73개국인데, 포경 반대국과 포경 찬성국의 세력 분포는 반반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949년 IWC가 설립됐을 당시에는 반포경국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그래서 IWC는 1982년 ‘상업 포경 모라토리엄’을 결의하고 1986년부터 상업 포경을 전면 금지했다. 그 대상은 고래 84종 가운데 길이 30m, 무게 100t에 달하는 긴수염고래(장수경), 길이 15m 전후인 참고래, 10m 전후인 밍크고래 등 대형 고래 13종이다. 1~5m 크기의 돌고래나 자국 연안에서의 고래잡이는 가맹국 판단에 맡기기로 했다.  

일본도 IWC의 결의에 따라 1986년부터 ‘상업 포경’을 전면 금지했다. 그러나 일본은 고래 자원을 과학적으로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명분을 내걸고 1987년부터 남극 바다에서 ‘조사 포경’을 개시했다. 1994년부터는 조사 포경 해역을 북서태평양으로 확대했다. 참고로 일본이 국제적 비난을 무릅쓰고 조사 포경을 계속하는 근거는 국제포경단속조약(ICRW) 제8조에서 과학적 조사를 목적으로 한 고래의 포획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조사 포경 선단이 남극과 북서태평양에서 포획하는 대형 고래는 처음에는 연간 300~400마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남극 바다의 대형 고래 포획량을  밍크고래 850마리, 흑고래 50마리, 긴수염고래 50마리로 늘렸으며, 북서태평양의 밍크고래 포획량은 220마리로 늘렸다. 

지난 1월6일 SS 소속 스티브 어윈 호(애디 길 호 모선)의 피트 베든 선장이 일본 포경선 쇼난마루 2호에 침입(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를 비롯한 반포경국들은 ‘과학적 조사라는 가면을 쓰고 자행하는 대량 살육 행위’ ‘실질적인 상업 포경’ 따위로 비난을 퍼붓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스티븐 스미스 외무장관은 2월21일 오카다 가쓰야 외무장관과 회담한 자리에서 “일본이 조사 포경을 단계적으로 중지하지 않는다면 오는 6월 모로코에서 열리는 IWC 총회에 이 문제를 주요 의제로 상정하겠으며, IWC에서 결판이 나지 않을 경우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뉴질랜드의 존 키 총리도 “포경 시즌이 시작되는 올해 11월까지 조사 포경 중지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라”고 일본을 윽박질렀다. 반포경국들은 일본 선단이 포획한 대형 고래를 배에서 해체한 후 고기를 시장에 내다 파는 행위도 크게 문제 삼는다.

이에 대해 일본은 고래의 성·길이·체중·내장·생식기능·태아 등 100개 항목 이상에 달하는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서는 포획한 고래를 해체해 내부를 구석구석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또 조사를 마친 고래고기를 시장에 내다 파는 것은 국제포경단속조약 제8조 2항에서 인정하는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연간 70억 엔에 달하는 조사 경비의 대부분을 고래고기 판매 대금에서 충당한다고 항변한다.  

일본 정부가 ‘에코 테러리스트 집단’이라고 비난한 SS는 베든 선장이 구속됐다고 해서 간단히 물러설 상대가 아니다. SS는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의 멤버이던 캐나다인 폴 왓슨이 고래·바다표범 등 해양 동물을 보호할 목적으로 1977년에 설립한 환경보호단체이다. 본부는 미국 워싱턴 주에 있으나, 그들에게 우호적인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등지를 활동 거점으로 삼고 있다. 왓슨은 옛 소련의 포경선에 실려 있던 빈사 상태의 고래를 목격하고 ‘시 셰퍼드’, 곧 ‘바다의 보호자’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SS 소속 스티브 어윈 호(애디 길 호 모선)의 피트 베든 선장.
SS, 포경선·고래 해체 공장 격침·폭파

SS가 강령에서 “우리는 혁신적인 직접 행동 전략을 사용한다”라고 선언한 것처럼 그들은 온건한 환경보호단체가 절대 아니다. SS는 1980년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폭약으로 포경선을 격침한 것을 필두로 1986년 아이슬란드에서 포경선과 고래 해체 공장을 폭파했다. 이어 1992년에 노르웨이에서 포경선을 침몰시켰으며, 2003년에는 일본 와카야마 현 다이지(太地·일본의 포경 발상지로 유명)에서 돌고래 어망을 절단했다. 

SS가 일본의 조사 포경을 표적으로 삼기 시작한 것은 2007년이다. SS는 그해 2월 일본의 조사 포경 선단의 모선인 ‘닛신마루’에 화학약품이 들어 있는 병을 투척한 것을 시작으로 닛신마루의 스크루에 밧줄을 감으려다가 멤버 두 명이 바다에 추락하는 사건을 일으켰다. 또 지난해 1월에는 닛신마루가 충돌 사고를 일으키려 하는 SS 측에 불쾌한 감정을 일으키는 음파를 발사하는 등 양측 간의 갈등이 극도로 고조됐다. 그 연장선상에서 올해 1월 애드 길 호가 침몰하고 선장이 일본 선단에 무단 침입한 것이다. 

SS는 막대한 활동비를 어디서 조달하는가. SS는 현재  ‘해신의 해군(Neptune’s Navy)’이라 부르는 배 3척을 소유하고 있다. 그중 올해 1월에 침몰한 소형 고속선 ‘애디 길’ 호는 100만 달러를 희사한 미국의 독지가 애디 길 씨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또 ‘밥 바거’ 호는 미국의 유명한 텔레비전 사회자 밥 바거 씨가 기증했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미국 배우 숀 펜,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 오스트레일리아의 이언 캠벨 전 환경장관 등 세계적인 명사들이 SS를 지원하고 있어 SS의 모금액은 연간 200만 달러를 넘는다.

일본의 조사 포경 문제는 결국 오는 6월 모로코에서 열리는 IWC 총회에 상정되어 일본이 조사 포경을 10년간 중지하는 대신 남반구와 일본 연안에서 행하는 고래잡이를 부분적으로 인정한다는 절충안이 제출될 전망이다. 그러나 어떤 식의 절충안이 제출되든 일본이 23년간이나 강행해온 조사 포경에서 선선히 물러설 나라는 아니다. 오카다 외무장관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스미스 외무장관과 회담하는 자리에서 “포경은 고대부터 내려오는 일본의 전통 문화다”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오카다 외무장관이 말한 것처럼 포경이 일본의 전통 문화라는 증거는 많다. 예컨대 일본 각지의 고대 유적에서 고래뼈가 대량으로 발견되고 있으며, 712년에 편찬된 일본 최고의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에도 고래 얘기가 등장한다. 고래잡이가 성행한 것은 포경술이 발달한 에도(江戶) 시대 때부터이다. 이때 70가지에 달하는 고래고기 요리법을 기술한 〈고래고기 조리 방법〉이란 책이 출판되기도 했다. 지금의 일본인들도 고래고기를 즐겨 먹는다. 

일본 전문가들은 일본 선단이 남극 바다와 북서태평양에서 조사 포경을 실시한 결과 고래 자원이 대폭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며, 대량으로 물고기를 집어삼키는 고래 무리를 이대로 방치할 경우 해양 생태계가 파괴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IWC가 적당한 양의 고래를 잡는 것을 가맹국에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일관된 주장이다.

그러나 일본 사회에서도 “왜 국제적 비난을 무릅쓰고 고래잡이를 계속하느냐”라는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고래고기 대신 쇠고기나 돼지고기, 닭고기를 먹으면 될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반면 야생동물인 캥거루를 잡아먹는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이 고래잡이를 비난할 자격이 있느냐는 반감도 만만치 않다. 

일본 정부는 반포경국·반포경단체와 벌이는 ‘고래 전쟁’에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으려 할 것이다.

기자명 도쿄 채명석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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