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최근 흐름에서 전에 볼 수 없던 현상들이 눈에 띕니다. 위로는 대통령부터 정부 관료 여당 의원을 불문하고 성사도 되기 전에 온갖 얘기를 꺼내놓는 자체가 전례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혹시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 있는 게 아닌가’라는 항간의 얘기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말은 무성하지만 정작 남북 간에 변한 게 뭔지 분명치 않은 점 역시 짚어볼 대목입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지난 2년간 남북관계가  단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데에는 북핵 문제에 대한 현 정부의 전략이 놓여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 정부는 정권 초의 비핵 개방3000에서 최근의 그랜드 바겐 전략에 이르기까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점을 대북정책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른바 ‘선 핵포기론’인데, 노태우 정부 말기의 ‘핵.경협 연계전략’부터 시작해 김영삼 정부 및 한나라당의 전신인 역대 보수 정당의 대북정책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핵.경협 병행전략)을 비웃으며 ‘잃어버린 10년’ 운운했던 것도 바로 이런 입장에 입각한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정권 출범 후 남북관계가 서로 한 치도 나아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어떤 변화라도 나타난 것일까요?  북한의 경우 핵 보유 의지가 더욱 강화되는 추세입니다. 최근에는 남측의 안보 위협까지 거론하며 핵보유를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최근 조짐이 더욱 안 좋은 것은 북한의 이 같은 완강한 입장을 접한 중국이나 미국이 북핵 문제를 장기해결 과제로 돌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북한을 6자회담에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이 기울여지고 있는데, 이 경우 북핵 문제가 장기 과제로 고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우리 정부는 기존의 선 핵포기론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남북 정상회담을 화두로 꺼낸 것도 6자회담이 열려 북핵 문제가 장기 과제로 고착되기 전에 북측과 직접 만나 담판을 짓겠다는 의지의 표현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북한이 6자회담 전에 남한과 따로 핵문제를 논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결국 남는 길은 6자회담 이후 만나는 것인데, 이 경우 자칫하면 이미 6자회담에서 추인된 북한의 핵전략을 다시 한번 추인해주는 꼴에 그칠 위험성이 있습니다. 즉 선 핵포기론을 수정하지 않는 한  남북 정상회담은 이래저래 딜레마에 봉착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자명 남문희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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