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를 청탁하려다보니 아차 싶었다. 막걸리 애호가에게 좋아하는 술을 ‘하나만’ 꼽아달라는 건 아무래도 폭력이다. 그들은 노심초사하다 힘겹게 한 가지, 혹은 두 가지를 꼽았다.

그중에는 강원도 어느 시골마을의 무인 판매대에서 맛본 막걸리도 있고, 유명 백화점에서나 구할 수 있는 프리미엄 막걸리도 있다. 막걸리가 진화함에 따라 그들의 ‘완소’ 막걸리도 차츰 그 이름을 달리할 것이다. 그 또한 ‘주당’들의 즐거움이리라.

호랑이막걸리에는 별다른 안주가 필요 없다. 술만으로 족하다.

스파클링 와인 같은 과실향 ‘호랑이막걸리’

“막걸리 색깔이 뭐 이래요? 이거 우윳빛이네요?” 유명 갤러리 관계자가 배혜정 누룩도가의 ‘호랑이 막걸리’ 병을 보고 한 말이다. 쌀누룩에 햅쌀을 써서 막걸리를 빚으면 누런 빛깔이 아니라 우유 빛깔이 난다. 700㎖ 원통형 유리병에 든 생막걸리를 잘 흔들었다. 참고로 가라앉은 막걸리 지게미를 잘 섞는 요령은 병을 흔들거나 뒤집는 것이 아니라, 요즘 텔레비전 막걸리 광고에서 윤종신이 하는 대로 병목을 잡고 돌리는 것이다.


    
호랑이막걸리에는 별다른 안주가 필요 없다. 술만으로 족하다.
“스파클링 와인도 아니고 무슨 막걸리가 이래요?” 호랑이 막걸리를 처음 맛본 후배가 하는 말이었다. 좋은 쌀로 제대로 빚어 잘 숙성시키면 발효 때 생긴 탄산 덕분에 그 맛이 스파클링 와인 뺨친다는 설명을 해줬다. 호랑이 막걸리의 뒷맛은 그동안 우리가 마셔온 막걸리의 맛이 아니다.

과실향이 입 안에서 풍겨 오른다.막걸리는 쓴맛·신맛·단맛의 삼미를 갖추고 있다. 우리 입맛은 맵고 짠 두 가지 맛이 더해져 오미(五味)가 조화를 이룰 때 맛있다고 반응한다. 그래서 막걸리와 가장 궁합이 잘 맞는 안주는 맵고 짠 김치이고, 그보다 더 좋은 건 삽미, 즉 떫은맛을 포함한 굴젓이다.

그중에서도 서산 어리굴젓이 최고다. 하지만 호랑이 막걸리는 그런 안주도 필요 없다. 와인이나 코냑처럼 그저 술만으로도 훌륭하다. 그래서 호랑이 막걸리를 맛본 갤러리 관계자는 새 화랑을 열 때 오프닝주로 호랑이 막걸리를 쓰겠다고 했다. 그런데 배혜정 누룩도가의 호랑이 막걸리에 결정적인 문제점이 있다. 값이 비싸다는 점이다. 공장 출고가가 5000원이라고 했다. 그리고 서울 몇몇 유명 음식점이나 술집 외에는 현대백화점에서나 유일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통 저잣거리의 술에서, 갤러리 오프닝주가 된 막걸리. 이게 그동안 우리가 천대하고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막걸리의 저력이다.
박경덕·방송작가(〈싱글벙글쇼〉 등 집필)

첫맛보다 끝맛이 좋은 ‘송명섭막걸리’ 

송명섭막걸리(왼쪽)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맛이 변한다.

“막걸리는 겉절이다.” 전통주 부문 무형문화재인 송명섭 장인의 말이다. 무슨 말인가? 두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겉절이는 갓 담갔을 때가 가장 맛있다. 막걸리도 갓 담갔을 때가 맛있다. 막걸리는 살아 있는 술이기에 시시각각 맛이 변한다는 얘기도 된다. 송명섭 명인이 빚는 막걸리가 그렇다. 갓 담근 막걸리는 느낌을 깨우는 감미로움이 존재한다. 하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날수록 감미는 줄어든다.

대신 발효된 쌀의 아미노산, 즉 감칠맛이 올라간다. 이 단계가 되면 장인의 손길도 자연의 일부분이 되어 술에는 순수함 외 어떤 욕망도 남지 않는다. 마시는 이 또한 세 치 혀로 맛을 재단한다면 이 술을 마실 자격이 없다. 음식도 마찬가지겠지만 좋은 술이란 첫맛보다 끝맛이 좋아야 한다. 여운이 길어야 한다. 비단 음식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인간 역시 첫 만남의 끌림보다 오래될수록 진국 같은 이가 가치 있는 인간이다. 한잔 두잔 마시다보면 어느새 술에 동화되고 만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쯤 되면 절로 느껴지는 게 있다. “허, 거 참 좋은 술이군” 하고 말이다.

전북 정읍시 태인면에 있는 태인양조장. 이곳에서 송명섭 명인은 오랜 세월 고집을 부려왔다. 좋은 술을 만들고자 하는 일념 하나로 쉬운 길을 걷지 않았다. 막걸리의 주재료인 쌀을 얻기 위해 직접 농사를 짓는다. 정부미나 수입쌀로 빚는다면 비용이 햅쌀의 5분의 1밖에 안 든다. 직접 농사를 짓지 않는다면 떨치기 힘든 유혹이다.

하지만 쌀을 내다팔 때보다 막걸리로 가공하면 더 많은 이윤이 남기에 유혹을 이겨낼 수 있다고 웃음 짓는다. 속된 질문을 했다. 쌀은 내다팔고 값싼 쌀로 술을 빚으면 되지 않으냐고. 장인은 이렇게 답했다. “나는 거기까지는 생각 못해.” 그는 천생 장인이다. 장인은 이윤보다는 품질에 목숨을 건다. 그렇기에 송명섭 장인의 막걸리는 한국에서 가장 맛있는 막걸리는 아니지만 ‘가장 좋은 막걸리’라고는 감히 말할 수 있다.
김용철·맛 전문 블로거(맛객)

모자람도 더함도 없다 ‘덕산막걸리’ ‘서울장수막걸리’

덕산막걸리는 단맛·신맛·탄산감 등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막걸리에 맛을 들인 뒤부터는 어디 잠깐이라도 여행을 가게 되면, 그게 그래도 풍류랍시고 그곳에서 나온 것을 먹어보자는 게 불문율이 되었다. 짬이 좀 나면 술도가를 찾아가 20ℓ들이 한 통 받아다 마시는 맛은, 계곡 바위 위나 나무 그늘 밑이 아니더라도 그냥 운치가 느껴진다. 3년 전 이맘때 강원도 용평에 갔을 때에도 막걸리 생각에 코가 싸했다. 그런데 몇 군데 식당과 가게를 돌아다녀도 엉뚱한 곳에서 난 것뿐이고 그곳 막걸리는 없었다.

어느덧 해가 지고도 한참이 지난 시각, 수소문한 끝에 어느 가게의 아저씨로부터 “술도가는 닫았겠지만, 그 앞 ‘무인 판매대’에서는 구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찬 소식을 들었다. 오호라 그거 참 재미지네, 하며 어두운 밤길을 조금도 개의치 않고 돌고 돌아 드디어 길가에 나앉은 냉장고를 발견했다. ‘이거 한 통 다 먹을 수 있을까, 뭐 남으면 가져가지’ 하며 들여온 막걸리가, 남기는커녕 단숨에 뚝딱 사라졌다.

지금 그 맛을 정확히 기억해내기는 어렵지만, 당시에 연방 “야 이거 맛나는데~” 하며 마신 것은 뚜렷이 떠오른다. 당시 시·공간적 감각과 분위기가 그 맛에 그림자처럼 배어 있었기 때문이리라.

나는 막걸리의 맛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감각적으로 느낄 뿐이다. 나에게 그 감각의 기준이 되는 게 서울장수막걸리와 충북 진천 덕산막걸리다. 먹어본 게 그리 많지 않아서도 그렇고, 생막걸리는 역시 사는 언저리에서 구하기가 쉬워서이기도 하다.

진천 덕산막걸리를 요즘은 백화점 같은 데서 구할 수 있지만, 4~5년 전만 해도 맛보려면 따로 발품· 손품을 팔아야 했다. 그걸 쉽게 맛볼 수 있게 해준 데가 서울 종로구 내수동에 있는 ‘김씨도마’다.

간판의 범상치 않음에 이끌려 들어간 그곳은 국수와 수육, 문어에 상어 돔배기의 맛도 일품이지만, 널찍하고 가벼운 알루미늄 술잔에 막걸리를 부어 마시는 풍경이 가히 절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덕산막걸리의 균형미야 두루 알려져 있어 무어라 하지 않더라도 그 맛의 무게를 손바닥과 손끝으로도 느끼게 배려한 마음씀이 그 맛을 더 묵직하게 했다. 우리 정통 막걸리의 맛을 모르는 나로서 그 묵직함은 서울장수막걸리를 주로 먹던 그 시절에 하나의 전범으로 다가왔다.

누가 뭐래도 서울장수막걸리는 막걸리 대중화의 일등공신이다.

최근엔 막걸리의 선택 폭이 넓어졌지만, ‘평범한 골수’ 주가(酒家)들은 여전히 그 단심(丹心)을 흩뜨리지 않는 것이 있다. 무어라 해도 이즈음 막걸리 열풍의 일등 공신 서울장수막걸리이다. 서울장수막걸리가 깔아놓은 멍석은 그 재료가 좋은 것이 아니더라도, 그 방법이 예전 것이 아니더라도 앉기에 넓고 놀기에 모자람이 없다.

최소한 나에게 안주를 가리지 않고 막걸리를 먹을 수 있게 해준 것은 장수막걸리이다. 8년 전 장수막걸리를 알게 되면서부터 가장 즐겁게 많이 찾았던 곳이 성북동 ‘덴뿌라집’이다. 일명 ‘덴뿌라 없는 덴뿌라집’에서 우리는 과메기도, 김치찌개도, 잘 두드린 노가리도, 돼지목살구이도, 민어회도, 송이도, 옛날 소시지도 모두 장수막걸리와 함께 먹었다.

그러고 보면 모든 술이 그렇겠지만, 막걸리는 ‘사람 맛’이다. 그 사람이 있는 곳에 풍경이 있고, 사연이 있고, 사랑이 있다. 어떤 막걸리를 마시든 내 그 사람이 같이 있을 때, 그때 그 막걸리는 최고가 되리라.

박상일·수류산방 방장(북디자이너)

기자명 박경덕·방송작가(〈싱글벙글쇼〉 등 집필)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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