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중국 ‘길들이기’냐, 아니면 중국의 미국 ‘되치기’냐. 지난해부터 조짐을 보이던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타이완에 무기를 판매하기로 결정한 데 이어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공식 접견하기로 하자 중국은 곧바로 양국관계의 심각한 파장을 경고하며 미국과의 군사교류 중단을 비롯한 일련의 강수를 뒀다.

세계 경제위기 극복과 기후변화협약, 이란 핵문제와 아프가니스탄 테러 문제 등 국제 현안을 놓고 중국의 협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이즈음 미국이 이처럼 강수를 둔 것을 놓고 “오마마 행정부가 드디어 중국에 본때를 보여주려는 것 같다”라는 관측이 일부 미국 전문가 사이에 나돌고 있다. 그런가 하면  “중국이 달라진 국제 위상에 걸맞게 미국에 대해 할 말을 하기 시작했다”라는 시각도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중국이 타이완과 티베트 문제처럼 주권과 관련된 사항 외에도 기후변화협약이나 이란 핵문제 등과 관련해 미국에 맞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의도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지난해 11월17일 베이징에서 만난 오바마 미국 대통령(왼쪽)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오른쪽).

중국은 역사적으로 새로 출범하는 미국 행정부와는 처음에는 다소 껄끄러운 관계로 출발하는 경향이 있었다. 한 예로 빌 클린턴 민주당 행정부는 중국의 인권 문제를 강하게 거론하며 무역상의 최혜국 지위를 중국의 인권 향상과 연계하겠다고 해 중국 정부의 반발을 샀다. 조지 W. 부시 공화당 행정부도 출범 첫해에 미국 정찰기가 중국 영토에 불시착한 사건으로 중국과 관계가 매끄럽지 못했다.

그렇지만 오바마 행정부 들어서는 달라졌다. 중국은 지난해 1월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한 뒤에도 세계 경제위기와 기후변화협약, 이란 핵개발 문제 등 주요 국제 현안에 관해 협조적인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중국의 태도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덴마크 코펜하겐 기후변화협약 정상회의에서 미국이 탄소배출량을 감시하기 위한 국제 모니터링 체제를 요구하자 중국이 거부한 것이다. 중국은 특히 세계 정상이 모이는 이 자리에 원자바오 총리를 파견해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회동 모양새를 구겼다. 중국은 나중에  탄소배출량의 국제감시체제와 관련한 타협안에 동의하긴 했지만, 외교가에서는 중국이 의도적으로 미국을 경시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중국의 반발을 예상하면서도 달라이 라마(위)를 접견하기로 했다.
유사한 사례는 또 있다. 지난해 11월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해 후진타오 주석과 긴밀한 협조를 다짐했지만, 미국이 최대 외교 현안으로 간주하는 이란의 핵개발 문제에 관해서는 아무런 합의점을 끌어내지 못했다.

중국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란을 비난하는 결의안에는 찬동했지만, 미국이 요구하는 대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에서의 대이란 제재는 국익상 동의해주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미국은 요즘 유엔 안보리에서 이란을 제재하는 추가 결의안이 나와도 러시아의 거부권을 걱정하던 과거와 달리 중국의 거부권을 가장 우려한다. 

중국, 넘치는 자신감으로 미국에 ‘맞장’

미국이 중국의 심기를 결정적으로 건드린 것은 타이완에 대한 무기 판매 선언이다. 타이완에 파는 무기는 ‘자위용’이긴 해도 패트리어트 요격 미사일을 비롯해 블랙호크 헬기, 하푼 미사일 등 최첨단 무기가 망라돼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이번에 타이완에 판매하기로 한 무기는 전임 부시 행정부가 약속한 110억 달러 무기 판매의 일부라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또 미국은 1979년 타이완관계법에 따라 ‘자위용’ 무기를 타이완에 공급해야 할 의무가 있고, 이 점을 중국도 잘 안다. 그런데도 오바마 행정부 고위 관리는 뉴욕 타임스와 한 인터뷰에서 “무기 판매 결정은 중국에 아무런 까닭이 없는 메시지가 아니라 우리의 강경한 입장을 전하려는 데 있다”라고 말해 이번 무기 판매가 중국 길들이기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설상가상으로 오바마 대통령이 중국의 강력한 반발을 예상하면서도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를 접견하기로 한 것도 미국이 중국과의 관계가 일정 부분 손상되더라도 이를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문제는 중국이 미국의 강경 카드에 대해 똑같이 강경책으로 맞선다는 점이다. 중국은 타이완에 대한 무기 판매 결정이 나오자 즉각 미국과의 군사교류 중단과 군축 등에 관한 차관급 대화 연기, 무기를 판매하는 미국 기업에 대한 제재 등 강경 대응책을 발표했다. 또 오바마 대통령이 달라이 라마를 접견할 경우 “미·중 관계의 정치적 기반을 심대하게 약화시킬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미국은 패트리어트 미사일·블랙호크 헬기·하푼 미사일 등 최첨단 무기를 타이완에 판매하겠다고 발표했다. 오른쪽은 패트리어트 미사일 앞에 서 있는 타이완 군인.

브루킹스 연구소의 중국 문제 전문가 케네스 리버설 박사는 중국의 이런 태도가 ‘자신감’의 발로에서 나온 것이라고 본다. 즉 중국이 지난 수십 년간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다 근래  경제대국으로 떠오르면서 자신감을 얻었고, 그에 따라 국제무대에서도 미국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중국 전문가인 밍신 페이 박사의 견해도 비슷하다. 페이 박사는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선 뒤 지난 1년 동안 가치관과 이해관계가 다른 미국과 중국 간에 아무런 마찰음이 없었던 게 오히려 비정상이다. 정상적인 관계라면 마찰음이 나게 마련이다”라고 말했다.

양국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가지는 않을 듯

페이 박사는 특히 지난 20년간 미·중 관계는 주로 미국 측 관점에서 형성돼왔지만, 이런 낡은 관점으로는 본질적으로 달라진 오늘의 미·중 관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고 분석한다. 중국은 더 이상 20년 전의 힘없고 경제력도 미약한 나라가 아니라 오늘날 미국 다음의 강국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중국은 기후변화협약이나 이란 핵개발 등 주요 국제 현안에 관해 그들의 협조 없이는 아무 일도 되지 않는 정치 대국으로 성장한 나라라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에게 미국의 협력이 필요한 만큼이나 미국에게도 중국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동등 의식’이 중국 지도부의 뇌리에 자리 잡았고, 이 같은 인식이 미·중 관계의 본질적인 변화에 깔려 있다는 얘기이다.

페이 박사의 지적이 옳다면 올해 미·중 관계의 앞날은 순탄하지 않을 것 같다. 타이완에 대한 무기 판매에서 달라이 라마와의 회동, 중국과의 무역 불균형에 따른 통상마찰과 중국 내 인권탄압 문제, 이란과 북한의 핵문제 등 양국 간에 쟁점 현안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미국과 중국이 서로 이처럼 으르렁거리면서도 여러 국제 현안에서 공통의 이해를 위해 필요한 분야가 많은 만큼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가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기자명 워싱턴·권웅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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