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대학생들이 있다. 방학마다 해외로 어학연수를 떠나거나, 소개팅 궁리에 푹 빠진 대중매체 속 대학생이 아니다. 날마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과외며 공장 아르바이트(알바)를 하느라 하루해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는 가난한 대학생들이다.

이들처럼 알바를 뛰어 학자금을 충당하는 학생을 일컫는 신조어가 ‘알부자족’이다. 웃고 넘기기에는 잔인한 반어법이다. 대학 졸업 후 실업자나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을 뜻하는 ‘청년실신’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가난한 대학생들이 스스로를 위무하는 방법은 이처럼 반어적이거나 희화화하는 것뿐이다.

경기도 한 사립대에 다니는 정민하씨(가명·25)는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껏 일을 쉬어본 적이 거의 없다. 고교 시절에는 학기 중에 6시부터 10시까지 일했고, 방학 때는 8~10시간씩 일했다. 시간당 2300원을 받았다. 대학 입학 후에는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시급 3800원을 받고 바텐더로 일했다. 하루 8시간, 많으면 12시간까지 일했다. 지하상가 옷가게에서도 반년을 일했다. 주말에만 일했고, 월 30만원을 받았다. 스포츠용품 매장에서는 하루 12시간 일하고, 일주일에 하루 쉬면서 100만원을 받았다. 이렇게 학비와 용돈 등 일상에 필요한 비용을 모두 정씨가 벌었다.
 


부모님은 세탁소를 운영한다. 그러나 그 수입으로는 대학 복학을 앞둔 남동생, 중학생인 여동생 등 다섯 명이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장남인 정씨가 팔을 걷어붙이고 생활전선에 나서야 했다. 항공 정비 관리직을 꿈꾸는 그가 기업이 요구하는 ‘스펙’을 갖추려면 1년 이상 따로 준비를 하거나, 학벌 좋은 대학에 편입해야 한다. 그러나 그럴 여유가 없다. 정씨는 “꿈을 꺾어야 할지, 어떻게든 도전해보아야 할지 모르겠다. 가족을 생각하면 내가 원하는 일을 하기 정말 어렵다. 내 삶에 대책이 없다”라고 말했다. 

가난한 대학생 관련 통계도 거의 없어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 신촌의 한 대학에 다니는 김아무개씨(23). 몇 해 전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집이 빚더미에 앉았다. 사업 실패 후 부모님이 힘을 합쳐 돈을 벌고 있지만, 월 소득 250만원으로는 빚을 갚고 생활비 대기에도 빠듯하다. 김씨는 과외(월 50만원)와 학내 알바(월 20만원)를 하며 스스로 생계를 해결하고 있다. 그나마 학교에서 주는 가계곤란 장학금 덕에 학비 걱정은 덜었다.

그의 꿈은 회계사다. 진작부터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고 싶었는데 생활비 버느라 학원비 등을  마련할 엄두를 못 냈다. 올 한 해 더 알바를 뛰어 돈을 모은 뒤 2학기부터 시험을 준비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하지만 시험 준비기간이 늦어질수록 친구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질 것이 걱정이다. 

그가 다니는 대학은 속칭 ‘8학군’ 학생 비율이 높기로 유명하다. 등교 시간에 운행되는 통학버스가 3호선
‘경복궁역에서만’ 운행할 정도다. 3호선을 타고 등교하는 강남구·서초구 거주 학생이 많아서다. 김씨는 “친구들이 돈 쓰면서 노는 건 크게 부럽지 않다. 하지만 (잘사는 집) 친구들이 착실하게 미래를 준비할 시간에 나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게 싫다. 결국 그런 친구들을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졸업 후 ‘전망’을 걱정할 수 있는 명문대생의 고민은 배부른 건지도 모른다. 아직 대학생활을 시작하지도 못한 ‘10학번’ 새내기 중에도 캠퍼스 빈민의 대열에 선 이가 있다. 올해 서울의 한 사립대에 입학하는 박아무개씨(22). 검정고시로 고교 과정을 이수한 그녀는 지금 식품공장에서 주야 교대로 12시간씩 일한다. 최근에는 성탄절·신정 휴무도 반납하고 일해 190만원을 벌었다. 힘들다는 생각은 뒷전이다. 겨울 내내 ‘핫초코’ 라인에서 일했는데 날이 풀리면서 일감이 줄까 걱정이다. 한번은 야간 근무 때 졸다가 컨베이어 벨트에 밀려 다리를 다친 적도 있다. 박씨는 “만약 아프다고 말했다가는 근무시간이 줄어들까봐 직원들에게 알리지도 못했다”라고 말했다. 

 

 

 

해마다 등록금을 인하하라는 학생들의 요구는 계속된다. 그러나 인하되기는커녕 동결 아니면 상승이다.

 

그녀의 집은 한부모 가정이다. 오랜 세월 어머니 수입에만 의존해 가족 네 명이 살아왔다. 몇 해 전 언니가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시작했지만, 4인 가족 생활비에 학비까지 대기에는 턱도 없다. 집이 멀어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데, 기숙사 비용만 한 학기에 110만원이다. 가장 싼 방은 55만원이지만, 경쟁이 치열해 그림의 떡이다.

박씨가 걱정하는 건 단지 학비와 기숙사비 같은 생존비용만이 아니다. 중학교 졸업 후 6년 만의 학교생활인 만큼 공동체에 잘 적응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친구들처럼 화장하고 예쁜 옷 입고, 넷북을 들고 다니며 마음껏 대학생 기분도 내고 싶다. 대학생 친구로부터 “청소년 티를 못 벗고 촌스러운 옷차림을 하면 왕따당한다”라는 말까지 들은 터라 걱정이 더 크다. 풋풋한 새내기가 되기 위해 그녀는 오늘밤도 쏟아지는 졸음을 참아가며 공장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선다.

짐작대로 지방대생의 형편은 더욱 어렵다. 2006년 전액 장학금을 받고 지방의 한 국립대에 진학한 이아무개씨(24)는 아직 3학년 1학기밖에 마치지 못했다. 부모가 이혼한 뒤 어머니와 살고 있으나 빚에 쪼들려 온 가족이 생활고에 시달렸다. 결국 입학 후 1학기를 마치고 바로 공장생활을 시작해 삼성전자 하청업체 등에서 1년 반 동안 일했다. 공장생활을 하며 모은 돈을 쪼개 학교를 다니다, 돈이 떨어지면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언니도 함께 공장생활을 했다.

이들의 사례는 그다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시사IN〉 대학생 인턴기자들이 주위 친구들을 통해 수소문했더니 순식간에 열댓 명의 사례가 모아졌다. 명문대가 아닐수록, 지방대일수록 형편은 더욱 어려웠다. 문제는 이런 ‘캠퍼스 빈민’이 얼마나 되는지 변변한 통계와 논의조차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고려대생의 사연이 화제가 됐지만, 으레 그렇듯 단발성 이슈로 그치고 말았다.

그나마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학자금 대출을 신청한 이들의 숫자를 들여다보는 것뿐이다. 교육과학기술부 자료에 따르면 2005년 18만2000여 명이던 학자금 대출자 수는 점점 불어나 25만명(2006년), 30만명(2007년), 34만명(2009년)으로 크게 늘었다. 
  
대학 측도 이런 상황을 모르기는 매한가지다. 휴학 신청이 인터넷을 통해 이뤄지는 데다  휴학 사유를 일일이 체크하지 않는 관행 때문이다. 한 사립대 관계자는 생활고 때문에 휴학하는 학생의 비율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자 “통계를 내봐야 알겠지만, 우리 학교는 장학 혜택이 잘돼 있어 그런 학생이 거의 없다”라고 답변했다. 대학 당국 눈에 이들 캠퍼스 빈민은 보이지 않는 존재다.

 

 

 


학자금 상환제에 무관심한 까닭

실제로 이들은 겉으로 봐서는 ‘눈에 띄지 않는’ 존재다. 짝퉁이나 싸구려일망정 크게 추레하지 않은 옷차림을 하고, 밤샘 알바를 뛰어서라도 MT 비용을 마련한다. 술자리 비용이 부담스러워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일이 종종 있지만, ‘돈이 없어서···’라고 해명하지 않는다. 자취방에서 홀로 눈물을 삼킬망정 가난함을 드러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서울 한 대학은 가계 곤란으로 장학금을 받은 학생에게 외부 봉사활동을 시키려 했다가 학내가 술렁인 적이 있다. 명단이 공개될 것을 꺼린 학생들이 크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의 학내 인간관계도 편협해질 수밖에 없다. 서울 한 사립대에 다니는 학생은 “월 20만원짜리 고시원에서 사는 나와 생일파티 비용으로 하루에 20만원씩 쓰는 과 동기가 똑같은 학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그들과 멀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등록금 투쟁하는 애들은 어찌 보면 별 걱정 없는 친구들이다. 진짜 어려운 친구들은 투쟁할 시간에 돈 벌러 다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학생도 있다.

이들에게 최근 논란이 된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사회생활 첫발을 빚잔치와 함께 떼느니 차라리 휴학하고 1~2년 더 일하는 게 낫다고. 졸업 후에 형편이 나아지리라는 보장이 없는 현실에서 학자금 대출을 받는 건 ‘카드 돌려막기’나 다름없다고.
앞서 소개한 새내기 박아무개씨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빚이 너무 싫다. 지금 우리 가족이 2000만원짜리 전셋집에서 사는데, 그 돈을 구하려고 은행 대출을 받았다.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도 공장과 바디숍에서 일해 700만원을 모아 그 돈을 갚았다. 그런데 그와 맞먹는 1000만~2000만원의 학자금 대출이라니, 말이 안 된다. 차라리 대학 안 가고 공장에서 일하겠다.”

 

 

 

캠퍼스 빈민의 탈출구인 취업 문도 요즘 꽁꽁 닫혀 있다.

 

대학 당국도 이번 학자금 상환제에 대해 시큰둥하다. 몇몇 사립대 관계자는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학자금 취업 후 상환제가 국민 채무자 양성에 기여할 것이다”라거나 “취업 후에 상환이 제대로 안 됐을 때 그 비용이 국민 부담이 되는 것 아니냐”라며 나라 걱정(?)을 하기도 했다.  ‘등록금 상한제’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로 반대 의견을 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대한민국 20대 절망의 트라이앵글을 넘어〉 저자 조성주씨는 20대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원인으로 높은 학비를 꼽는다. 조씨는 “부모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빈곤이 상대적 기득권층이라 여겨졌던 대학생에게까지 대물림되는 현실은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다. 대학생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사회적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 360개 대학에 다니는 학생 수는 무려 292만명에 이른다. 전체 국민의 6%가 대학생이라는 이야기다. 학벌사회가 자초한 기형적 대학 진학률의 이면에서 오늘도 ‘캠퍼스 빈민’들은 숨죽여 신음하고 있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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