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경제적 능력이나 사회적 지위는 부동산 자산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느냐로 결정된다.”

필자가 2008년에 부동산을 키워드로 한국 사회를 분석한 〈부동산 계급사회〉를 펴내면서 서문에 쓴 내용이다. 하지만 솔직히 그때 충분히 따져보지 않고 설익은 얘기를 한 것 같아 마음에 오래 남았다. 정말 어떤 집에 사는지만 봐도 어떻게 투표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까? 해답을 찾으려 2009년 내내 이 문제에 매달렸다. ‘어떤 집에 사는지’에 대한 최신 통계인 ‘2005년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 2004년 17대 총선, 2006년 지방선거 등을 읍·면·동 단위로 비교 분석해봤다. 지금까지 서울·경기·인천 61개 시·군·구에 속한 1164개 읍·면·동을 들여다봤는데 어느 정도 해답의 실마리를 찾았다.

먼저 어떤 집에 사는지만 봐도 ‘투표를 하는 지 안 하는지’ 알 수 있을까 따져봤다. 결과는 집 가진 사람이 많이 사는 동네일수록, 그중에서도 집을 두 채 이상 소유한 사람이 많은 동네일수록 열심히 투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무주택자가 많은 동네일수록 투표장에 아예 가지 않은 사람이 많았다.

(반)지하·옥탑·비닐집·쪽방 등에 사는 사람과 ‘나 홀로 사는’ 1인 가구가 많은 동네일수록 투표율과 한나라당 지지율이 낮다.
잘사는 동네일수록 한나라당 지지율 높아

서울의 경우 분석 가능한 518개 동 중에서 주택소유가구 비율이 평균 이상인 242개 동네의 투표율이 64%인 데 비해 평균 미만 276개 동네는 59%로 5% 포인트 차이가 났다(이하 2004년 총선 기준). 518개 동네를 주택소유가구 비율을 기준으로 다섯 묶음으로 나눠본 결과도 같았다. 그중 집 가진 사람이 가장 많은 5분위(상위 20%) 104개 동네의 투표율은 66%였다. 그런데 4분위는 63%, 3분위는 61%, 2분위는 59%로 주택소유가구 비중이 낮아질수록 투표율이 떨어졌고, 1분위(하위 20%)에서 57%로 가장 낮았다.

집 가진 사람이 평균 이상인 242개 동네 안에서도 집을 두 채 이상 가진 가구가 평균 이상으로 많은 104개 동네에서는 67%가 투표한 반면, 평균 미만 138개 동네는 62%에 그쳤다. 다주택자가 가장 많은 5분위(상위 20%) 50개 동네의 투표율은 68%인 데 비해 4분위 66%, 3분위 64%, 2분위 63%, 1분위 60%로 집을 여러 채 가진 사람이 많을수록 더 열심히 투표했다. 또 (반)지하·옥탑·비닐집·쪽방 등에 사는 사람과 ‘나 홀로 사는’ 1인 가구가 많은 동네일수록 투표율이 낮고, 그런 가구가 적은 동네일수록 투표율이 높았다.

이 같은 현상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도 다르지 않았고, 경기도 507개 읍·면·동과 인천시 129개 읍·면·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향란18대 총선 당시 ‘최고 부자 의원’인 정몽준 후보(왼쪽 세 번째)가 서울 동작구의 서민을 만나고 있다.
다음으로 어떤 집에 사는지만 봐도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지 알 수 있을까 따져봤다.
결과는 집 가진 사람이 많이 사는 동네일수록, 그중에서도 집을 두 채 이상 소유한 사람이 많은 동네일수록 한나라당을 많이 찍었다. 반대로 무주택자가 많이 사는 동네일수록 새천년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을 많이 찍었다.

서울에서 주택소유가구 비율이 평균 이상인 242개 동네의 한나라당 지지율은 40%인 데 비해 주택소유가구 비율이 평균 미만인 276개 동네의 한나라당 지지율은 34%였다(2004년 총선 기준). 한나라당은 집 가진 사람이 평균 이상인 동네에서 6% 포인트를 더 얻은 것이다. 반면 무주택자가 평균보다 많은 동네에서 새천년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지지율은 각각 43%와 48%였다.

또 주택소유가구 비율이 가장 높은 5분위 104개 동네에서 한나라당은 44%를, 민주(+열린우리)당은 40% 지지를 각각 얻었다. 반면 무주택자가 가장 많은 1분위 104개 동네에서 한나라당은 33%를, 민주(+열린우리)당은 49% 지지를 얻었다. 집 가진 사람이 많은 동네일수록 한나라당을, 무주택자가 많은 동네일수록 민주(+열린우리)당을 많이 찍는 현상은 2∼4분위 동네에서도 그대로 확인되었다.

또한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많을수록 한나라당을 많이 찍고,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이 많을수록 민주(+열린우리)당을 많이 찍었다. 서울에서 아파트 거주 가구 비율이 평균 이상인 204개 동네의 한나라당 지지율은 40%인 데 비해, 평균 미만 314개 동네는 34%다. 반면 민주(+열린우리)당 지지율은 각각 43% 대 48%였다.

또 (반)지하·옥탑·비닐집·쪽방 등에 사는 사람과 ‘나 홀로 사는’ 1인 가구가 적은 동네일수록 대체로 한나라당 지지율이 높고, 민주(+열린우리)당 지지율이 낮았다.

어떤 집에 사느냐를 보면 어떤 정당을 찍었는지가 대체로 보이는 현상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수도권 전체를 대상으로 한 분석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06년 지방선거 역시 마찬가지다. 거꾸로 특정 정당 지지율 분포별 주거 상태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높은 상관관계가 나타났다. 다만 두 차례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득표율은 ‘어떤 집에 사느냐’와 상관관계가 불투명했다.

투표율이 가장 높은 10개 동네와 낮은 10개 동네를 비교해 느낀 ‘부동산 계급 투표’의 생생한 현실은 섬뜩했다.
2004년과 2006년 선거를 통틀어 서울에서 투표율이 가장 높은 10곳과 낮은 10곳의 선거권자 수는 28만명과 29만명으로 거의 차이가 없다(오른쪽 표 참조). 그런데 투표율은 각각 67%와 44%로 실제 정치에 참여한 투표권자는 19만명 대 13만명으로 벌어졌다. 투표를 적게 한 10개 동네에 비해 많이 한 10개 동네의 민의가 6만 표나 더 현실 정치에 반영된 것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투표율이 높은 10곳에서, 반대로 민주(+열린우리)당은 투표율이 낮은 10곳에서 훨씬 높은 득표율을 각각 기록했다. 그 결과 투표율이 높은 곳에서 한나라당이 얻은 표는 12만 표로 낮은 곳에서 얻은 6만 표의 두 배에 달한다. 그러나 민주(+열린우리)당이 얻은 표는 별 차이가 없다. 이 점은 민주노동당도 마찬가지였다.

 
점점 더 분명해지는 ‘부동산 계급투표’

이 같은 투표 참여와 정당 선택의 차이는 동네별 부동산 계급 구성의 차이와 떼어 설명하기 어렵다. 투표를 가장 많이 한 10개 동네는 85%가 집을 소유하고 있고 그중 14%는 두 채 이상 소유하고 있다. 또한 98%가 아파트에 산다. (반)지하 등에 살거나 ‘나 홀로 사는’ 가구는 각각 1%와 5%에 불과하다.

반면 투표를 가장 적게 한 10개 동네는 무주택자가 74%에 달하고 다주택자는 3%에 그치며 76%가 단독주택에 산다. (반)지하 등에 살거나 ‘나 홀로 사는 가구’는 각각 17%와 43%에 달한다.

결국 부동산을 많이 소유한 계급이 열심히 투표에 참여해 주로 한나라당을 찍는 데 비해 ‘집도 절도 없이 사는’ 가난한 사람들은 한나라당을 잘 찍지도 않고 투표장에 열심히 가지도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동산 부유층들은 투표를 열심히 하는데 왜 가난한 이들은 투표 자체를 포기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일까. 많은 설명이 필요한 대목이지만 부동산 문제와 연관해서는 국민이 이사를 너무 많이 다닌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전체 국민 기준으로는 55%가, 셋방 사는 국민 기준으로는 80%가 한집에 5년 이상 살지 않고 있다. 특히 셋방 사는 가구 중 절반 이상은 최소 2년에 한 번 이사를 다닌다. 2년에 한 번씩 떠돌며 사는 것 자체가 고역이지만, 투표 참여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런 조건에서는 현재 살고 있는 동네는 ‘우리 동네’가 아니라 곧 떠나야 할 곳일 뿐이다. 특히 지방선거는 물론이고 총선조차 지역 발전을 내건 지역선거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셋방을 떠도는 가난한 사람들로서는 투표장에 가야 할 이유가 약할 수밖에 없다.

또 한 가지는 어느 정당도, 집 없이 셋방에 살거나 혼자 살거나 심지어 (반)지하나 비닐집에 살아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진정으로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이들이 투표를 아예 포기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정치 의사를 표현하는 것 아니냐 하는 점이다. 흔한 말로 ‘그놈이 그놈인데 뭣 하러 투표를 하냐’는 정서인 것이다. 문제는 국민이 아니라 투표할 이유 자체를 만들어주지 못하는 정치에 있는 것이다.

2010년은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해다. 벌써부터 정치권은 선거 준비가 한창이다. 그런데 1000개가 넘는 이번 수도권 동네 분석에서 확인된 ‘부동산과 투표 사이의 법칙’으로 보면 투표를 아예 포기해온 가난한 사람들에게 투표할 이유를 만들어주는 게 선거 준비의 핵심이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 투표를 열심히 했을 경우 한나라당에 비해 민주(+열린우리)당이나 진보 정당을 더 많이 찍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점에서 현재의 야당들이 그동안 가난한 사람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해왔다는 아픈 성찰이 필요한 대목이 아닌가 싶다.

기자명 손낙구 (〈부동산 계급사회〉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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