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 이충연씨는 수의 안에 다섯 겹의 내복을 입고 있었다. 평소에도 추위를 많이 타는 그였다. 지난 12월30일 오후 1시 서울구치소, 1심 재판 이후 더 말라 수척해진 이충연씨가 아내 정영신씨에게 물었다. “대충 얘기 들었어. 잘된 거야?” 아내 정씨는 대답 대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구치소 유리벽 너머, 아내의 눈물을 닦아줄 수 없는 남편 역시 눈물을 보였다. 용산참사로 숨진 이상림씨의 막내아들 이충연씨는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 등으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여전히’ 수감 중이다. 현재 서울구치소에는 용산참사와 관련, 이충연씨를 포함해 7명이 구치소 담장 안에 갇혀 있다.
‘극적 타결’이라는 뉴스 헤드라인만 본 서울구치소의 한 교도관은 정씨에게 “남편은 언제 나가기로 했어요?”라고 물었다. 그러나 이번 협상에서 구속자와 수배자 문제는 제외됐다. 합의와 별개로 기소와 재판은 사법권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교도관은 “이건희도 사면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정영신씨는 장례식 날짜에 맞춰 서울구치소에 ‘구속정지 신청’을 낼 예정이다. 그러나 남편이 나온 뒤가 더 걱정이다. 정씨는 “장례식이 끝나고 남편을 어떻게 들여보내야 할지…. 마음 같아서는 다시 들여보내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용산참사 보상에 대한 협상이 타결된 12월30일은 참사가 발생한 지 345일째였다. 꼭 1월20일 그날처럼 추웠다. 유가족 위로금과 피해보상금 장례비용 등은 재개발조합에서 부담하기로 했다. 합의 내용이 실행될 수 있도록 ‘이행위원회’도 꾸려진다. 그러나 ‘합의’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온도 차이가 있었다. 정운찬 국무총리는 “그동안 유족이 겪었던 고통을 위로하며 이런 불행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라고 유감을 표했고 정부는 ‘환영한다’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유족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시작이다”라며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다섯 유족이 함께 몸을 부리고 있었던 삼호복집과 분향소가 있는 남일당 건물, 범대위 상황실로 사용했던 고 이상림씨의 호프집 레아는 1월25일까지 비워주기로 했다. 그러나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구속자 석방 등 유족들에게는 아직 풀어야 할 과제가 남았다.
미사가 끝나자 문정현 ‘남일당 신부’는 유족과 용산4지역 철거민 한 사람, 한 사람을 꼭 안아줬다. 문 신부는 “아직 용산참사는 해결되지 않았다. 여기서 농성을 접는 것은 유족과 철거민의 뜻이지만, 문제의 본질인 재개발은 유유히 진행될 것이다. 용산참사와 같은 일이 도처에서 벌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곧 남일당은 철거되고, 그 자리에는 ‘우람한 건물’이 들어설 것이다. 12월31일 새벽, 유족들은 삼호복집으로 돌아가서도 쉬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맥주를 나눠 마시며 눈시울을 붉혔다. 권명숙씨(고 이성수씨 부인)는 차마 말을 다 잇지 못했다.
“내일이 보이지 않는 하루하루가 너무 지겨웠다. 끝나면 마냥 기쁘고 좋을 줄 알았는데. 남편은 어떻게 보내야 할지…. 형제 아닌 형제가 돼 버린 다른 유족과는 또 어떻게 헤어져야 할지…. 아직 구속돼 있는 사람들은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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