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선두, 한나라당 초강세, 야권 동반 하락. 지방선거를 반 년 남겨둔 12월 말 현재 서울시장 레이스 판도는 이렇게 정리된다. 〈시사IN〉과 리얼미터가 조사한 2010 지자체선거 서울시장 여론조사 결과다. 지자체선거를 꼭 1년 앞뒀던 지난해 6월2일 조사에서 오 시장이 야권 후보에 3승3패를 기록하며 맥을 못 췄던 것에 견주면 반 년 만에 결과가 확 달라졌다(〈시사IN〉 제91호 참조).

2009년 6월 조사에서 오 시장은 한명숙·유시민 ‘친노 투톱’과의 대결에서 모두 졌다(표 1). 한명숙 전 총리에게는 10%포인트, 유시민 전 장관에게는 7.7%포인트 뒤졌다. 그러던 것이 이번 조사에서는 판세가 완전히 뒤집혔다. 오 시장·한 전 총리·진보신당 노회찬 대표의 삼자 대결에서 오 시장은 26.2%포인트 차로 한 전 총리를 멀찍이 따돌렸다. 한 전 총리 대신 유 전 장관을 넣어봐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21.3%포인트 차이가 난다.

 

 

30대 유시민 지지율, 반토막도 안 남아

지난해 6월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후폭풍이 휘몰아칠 때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특히 30대의 지지후보가 바뀐 게 눈에 띈다. 30대는 지난 6월 한명숙(52.4%)·유시민(64.3%) 투톱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각각 27.5%와 23.4%만 두 사람의 손을 들어 줬다. 특히 30대를 주력 지지층으로 삼고 있는 유 전 장관에 대한 30대의 지지는 40%포인트가 넘게 빠져나갔다. 이 정도면 ‘대폭락’이라 할 만하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했던 젊은 층에서 일종의 ‘원대복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두 친노 후보 모두 20대에서만 오 시장을 앞섰을 뿐 모든 연령층에서 뒤졌다.

지자체선거의 큰 화두 중 하나는 야권 단일화다. 야권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에 뒤지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단일화 논의가 불붙을 전망이다. 서울시장 선거 역시 야권의 경쟁력에 한계가 있다는 진단이 내려진 이상 단일화 논의에서 예외가 아니다.

얼마 전 ‘삼성 X파일’ 2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서울시장 출마를 공식 선언한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10%대 초반의 지지율을 꾸준히 얻는다. 이번 〈시사IN〉 조사에서도 노 대표는 세 차례의 3자 대결에서 각각 13.3%(대 오세훈·한명숙), 12.7%(대 오세훈·유시민), 16.5%(대 원희룡·한명숙)를 얻었다. 친노 계열 후보와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가 단일화를 성사시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시사IN〉은 단일화 성사를 가정해 가상대결을 벌여봤다(표 2).

파괴력은 크지 않았다. 오 시장과 야권 단일후보의 네 차례 맞대결 결과, 가장 격차가 적게 난 대결인 ‘오세훈 대 단일후보 한명숙’ 구도에서도 17.7%포인트 차이가 났다. 야권 단일후보를 내세워도 대략 20%포인트 안팎의 차가 난다는 얘기다. 야권 단일후보는 오 시장 지지표와 부동층 표를 흡수하기는커녕 두 사람 지지표의 단순 합산만도 못한 지지를 얻었다. 실제 정치 현장에서 단일화 과정이 진행되며 얻는 지지층 결집 효과와 ‘광고 효과’가 빠진 결과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지만, 단일화 하나만으로 판세를 단숨에 뒤집을 수 있다고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결론이다.

오세훈을 기다리는 세 번의 고비

데이터만 놓고 보면 오 시장의 재선은 ‘따 놓은 당상’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여론조사 결과만으로 알 수 없는 ‘세 가지 고비’가 오 시장을 기다린다고 본다. 무슨 의미일까.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한나라당이 너무 센 것이 우선 문제다. 이번 〈시사IN〉 조사에서 서울지역 정당 지지도는 한나라당 47.9%, 민주당 21.8%로 나타났다. 이명박 정부 집권 초로 돌아간 듯한 큰 격차다. 이렇게 되면 본선보다 한나라당 예선이 더 치열해질 수 있다. 대중성에서 앞서는 대신 당내 기반이 상대적으로 약한 오 시장에게는 반갑지 않은 구도다.

오 시장은 지난 2006년 당시 서울시장 후보 당내경선 때도 당시 열린우리당에서 불어온 ‘강금실 바람’ 덕분에 취약한 당내 기반을 딛고 경선을 이겨냈다. 오 시장으로서는 ‘본선 경쟁력’을 강조할 수 있을 정도로는 야권 후보가 버텨줘야 당내경선에서 유리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해 6월 ‘친노 투톱’이 치고 나온 〈시사IN〉 여론조사 이후, 오 시장의 측근은 “우리한테는 차라리 잘 됐다. 본선 상대가 너무 약하면 이쪽(한나라당) 예선 뚫는 게 만만치 않다. 노무현 추모 열풍이야 내년 선거 때면 가라앉을 테니, 일단은 야권에 유력 후보가 떠 주는 게 좋다”라고 말했던 바 있다.

이런 구도에 비춰보면, 현재 야권 후보의 경쟁력은 오 시장에게는 ‘기대 이하’다. 〈표 3〉을 보자. 이번 조사에서 〈시사IN〉은 오 시장을 향해 날을 세우며 사실상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도 야권 후보와 가상 대결을 시켜봤다. 오 시장만큼의 큰 차이는 아니지만, 원 의원 역시 야권 후보들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야권이 한명숙 후보로 단일화를 이뤄내더라도 원 의원이 4.5%포인트 앞섰다. 야권의 최유력 카드가 현직 시장도 아닌 한나라당의 ‘잠재 후보군’에 뒤지는 것이 현주소다. 원 의원은 “한나라당 경선이 치열할 것이다”라며 결의를 다졌다.

오 시장이 경선만 통과하면 본선은 쉬운 싸움이 될까. 지금의 데이터만 보면 그렇지만, 본선이 두 번째 고비가 될 것이라는 정치권 내 분석에 여권도 동의한다. 야권 후보군의 경쟁력이 현재로서는 과소평가된 상황이라는 지적도 여야 모두에서 나온다. 한 전 총리가 총리 시절 인사 청탁과 함께 5만 달러를 받았다는 의혹을 검찰이 수사 중인 지금은 야권 후보군의 경쟁력이 바닥을 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친노 진영에서는 “검찰이 이번엔 잘못 걸렸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재판 진행 상황에 따라, 검찰이 이렇다 할 증거를 내놓지 못하면 ‘야권 죽이기용 기획수사’라는 비난에 직면할 것이라는 기대다. 여기에 내년 오는 6월의 지방선거가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와 불과 열흘 차이라는 것 역시 무시 못할 변수다.
 

한 전직 광역단체장은 지방선거 여론조사의 특징을 이렇게 짚었다. “원래 이 시점의 조사에서는 현직 프리미엄이 붙는다. 인지도와 미디어 노출량에서 비교가 안 된다. 이건 빼고 읽어야 제대로 읽는 거다. 상대 후보가 경선전에 들어가고 후보로 선출되는 과정을 거치면, 그쪽 지지층도 집결하고 미디어 노출도 집중된다. 본격 선거전에 들어가면, 현직 프리미엄은 그만큼 상쇄된다는 얘기다.” 중앙정치의 중량급 정치인이 후보로 나서는 서울은 상대적으로 이런 경향이 적기는 하지만, 이 시점에서 현직의 유리함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현재 조사에 반영된 ‘현직 프리미엄’을 얼마나 진짜 지지율 격차로 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가 오 시장의 또 다른 숙제인 셈이다. 오 시장의 시정 지지도 51.9%는 한나라당 지지도 47.9%와 큰 차이가 없다. 현재의 지지세가 정당 지지와 연동한 것이라고 볼 여지도 있다는 얘기고, 경선전에 들어가면 상대 후보들도 이를 파고들 가능성이 있다.

한나라당 경선 양상을 짐작하게 해줄 “한나라당 후보로 누구를 지지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30.1%가 오 시장을, 11.5%가 원희룡 의원을, 10.1%가 나경원 의원을 꼽았다. 출마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정두언 의원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각각 2.6%와 2.5% 지지에 그쳤다. 지난 2006년 서울시장 후보 당내경선에서 오 시장에게 밀린 당시 맹형규 청와대 정무특보는 7.5%의 지지를 얻었다.

범민주계(민주당·국민참여당 등) 서울시장 후보로 누구를 지지하느냐는 질문에는 유시민 전 장관이 첫손에 꼽혀(18.4%), 진영 내 충성도가 가장 공고함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줬다. 한명숙 전 총리(9.8%), 김한길 전 의원(7.5%), 추미애 의원(6.8%)이 뒤를 이었다. 일찌감치 출마선언을 한 김성순 의원은 5%, 이계안 전 의원은 3.5%의 지지를 받았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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