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든 무력을 사용하는 것이 필요할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때도 있는 법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2월1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노벨평화상을 받은 뒤 연설을 통해 밝힌 전쟁관이다. 오바마의 이 발언은 확전일로에 있는 아프간 전쟁을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실제로 오바마의 이번 발언은 1주일 전에 미군 3만명을 아프가니스탄에 증파하겠다고 천명한 뒤 나온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오슬로 연설에서 아프간 전쟁을 ‘정의로운 전쟁(Just War)’이라고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문맥을 꼼꼼히 살펴보면 발언의 기저에 이 같은 개념이 깔려 있다는 것이 정치 분석가들의 설명이다.

‘정의로운 전쟁’이란 개념이 유독 미국에서 비상한 관심을 끄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세계 평화의 수호자임을 자처하는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수많은 국제 분쟁이나 전쟁에 개입해왔고 그때마다 국내외의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대표적인 개입 예를 꼽아보면, 미국은 1991년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에 대해 유엔과 함께 무력 응징에 나섰고, 2003년에는 대량살상무기 개발 의혹을 빌미로 또다시 이라크 단독 침공을 감행했다. 또 2001년 9·11 테러 사건이 터진 뒤에는 알 카에다의 근거지로 아프간을 지목하고 지금껏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노벨평화상 증서와 메달을 받고 웃는 오바마 대통령.
이러다보니 역대 미국 지도자는 이런 전쟁에 미군을 파병할 때마다 파병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조지 H. 부시 전 대통령이 벌인 1991년의 이라크 전쟁을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믿고 있다. 당시 미국의 이라크 전쟁은 한 나라를 침공한 대가가 어떤 것인지를 명백하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필요했다는 것이 오바마의 논리였다. 그러나 오바마는 조지 W. 부시가 2003년에 벌인 이라크 전쟁은 ‘정의로운 전쟁’과는 거리가 멀다고 본다. 그렇다면 지금 그가 벌이는 아프간 전쟁은 ‘정의로운 전쟁’일까? 이번 오슬로 연설을 보면 분명 그는 그렇게 믿고 있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도 오바마의 아프간 전쟁을 ‘정의로운 전쟁’으로 보느냐 하는 점이다.

전쟁의 정당성 여부에 관한 객관적 판단 기준을 처음으로 이론화한 사람은 프린스턴 대학의 유명한 정치철학자 마이클 월저 명예교수이다. 한평생 전쟁을 연구한 월저 교수는 특히 1977년 〈정의로운 전쟁과 부당한 전쟁(Just Wars and Unjust Wars)〉을 발간해 이 분야 최고 권위자가 되었다. 월저 교수는 미군의 아프간 전쟁 개입과 관련해 자신이 공동 편집인으로 있는 정치평론지 〈디센트(Dissent)〉 최근 호에서 비교적 소상히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부시의 아프간 전쟁은 ‘정의롭지 못한 전쟁’

‘아프간 전쟁은 과연 정의로운 전쟁인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월저 교수는 미군의 아프간 개입은 처음에는 정당했다고 본다. 그렇지만 그는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됐다면서 그 이유를 낱낱이 열거했다. 우선 미군 병력을 충분히 보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프간 일반 국민과는 동떨어진 세계에 사는 토후들을 통한 대리전을 벌였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군사원조를 처음에는 거부했다는 점을 들었다. 게다가 테러와의 전쟁에서 어느 정도 승리한 뒤에는 즉각 아프간 재건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부시 행정부는 부패하고 무능한 아프간 정부를 지원했고, 당초 승리한 것처럼 보인 전쟁이 그렇지 않았다고 판명나자 지상군보다는 공습 위주로 전쟁을 치러 무고한 아프간 민간인을 희생시켰다는 것이다. 또 이처럼 아프간 전쟁이 수렁에 빠졌지만 부시 행정부가 8년 재임 기간 내내 이라크에만 관심을 둔 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는 게 월저 교수의 주장이다.

지상군보다는 공습 위주의 전쟁을 일삼는 바람에 민간인을 많이 희생시킨 부시의 아프간 전쟁이 정의롭지 못한 전쟁이라면 지상군 3만명을 추가로 파병하겠다는 오바마의 아프간 전쟁은 과연 정의로운 전쟁일까? 이 같은 물음에 대해 월저 교수는 다소 흥미로운 화두를 제시했다. 부시 대통령이 망쳐놓은 아프간 전쟁을 바로잡기 위해 오바마 대통령이 노력하지만 ‘승리’의 대가가 너무 클지 모른다는 분석이다. 탈레반 세력을 현저히 약화시키고, 아프간 군을 육성하고 파키스탄과 협력해 국경지대의 알 카에다 세력을 근절한다면 ‘승리’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런 목표를 이루려면 3만명 증파로는 어림없다는 것이다.

설령 3만명으로 충분하더라도 앞으로도 전쟁이 지속된다면 이런 전쟁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왜냐하면 그가 제시한 ‘정의로운 전쟁’의 핵심 요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정당한 평화를 확보할 수 있는 현실적인 가능성인데, 지금의 아프간 전쟁은 그럴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월저 교수는 오바마의 아프간 전쟁도 ‘정의로운 전쟁’으로 보지 않는 것 같다.

오바마가 아프간 전쟁을 정의로운 전쟁으로 만들려면 철군 예정일인 2011년 8월까지 아프간에 평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위는 정찰 중인 미군과 아프간 소년들.
그렇지만 월저 교수는 지금 이 상황에서 미군 철수를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미군이 개입해 전쟁이 벌어진 이상 미국은 사태를 잘 수습해야 할 ‘정치적·도덕적 의무’를 진다고 강조한다. 아프간 사회에 학교가 다시 세워져 문맹인 학생들이 글을 깨우치고, 공중 보건시설이 재건되고 서양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이런저런 단체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미군이 개입한 덕분인 만큼 이런 제도가 자리 잡도록 미국은 아프간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 같은 노력이 대다수 아프간 국민의 지지를 받는다면 이런 미군의 노력은 현실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만약 미군이 아프간 전쟁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않은 채 철수한다면 오히려 아프간 국민이 큰 피해를 보게 된다고 경고한다. 적어도 이런 인도주의 면에서 미군의 아프간 전쟁은 ‘정의’를 띤다는 게 월저 교수의 주장이다.

문제는 오바마 대통령이 내년에 3만명 증파를 공언하면서도 앞으로 18개월 안에 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약속한 점이다. 오바마의 공약대로라면 2011년 8월께부터는 아프간에서 미군 철수가 시작돼야 하는데 과연 그때까지 월저 교수가 지적한 대로 아프간 전후 수습이 제대로 마무리될 것이냐 하는 점이다. 따라서 오바마가 오슬로 연설에서 시사한 대로 아프간 전쟁이 과연 정의로운 전쟁이냐에 대한 판가름도 2011년 가을께에야 나올 것 같다.

기자명 워싱턴·권웅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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